- 오늘사회운동
- 2017/02 제25호
이재용 구속과 삼성그룹 해체가 국민경제에 주는 이득
재벌 총수의 불법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부와 사법기관의 태도는 언제나 “불법은 맞지만 나라 경제를 고려해 용서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 삼성 특검이 그랬고, 수많은 재벌 총수들의 비자금에 대한 처벌이 그랬다. 지금까지 불법 탈법 경영권 승계로 승계 자체가 무산된 재벌이 없다.
재벌 가문이 경영권을 세습하고, 족벌 경영을 위해 기업집단이 재생산되는 게 나라 경제에 정말 이득인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를 이어 ‘회장님’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낫게 하는가? 이렇게까지 헌정을 유린한 재벌 총수를 용서해야 할 만한 다른 대의가 있는가?
삼성, 따져보면 애당초 국민기업
기업집단으로서의 삼성그룹은 탄생부터 정경유착의 산물이었다. 초대 회장인 이병철은 정경유착을 통해 미국의 원조물자 분배(삼성물산), 일제기업 불하(제일모직)에 특혜를 받아 삼성그룹의 모태를 만들었다. 또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자금과 외자유치 정책을 배경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시켰다. 만약 과거의 불법이라도 불법을 통해 얻은 이익 전체를 환수할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삼성그룹은 당장 ‘국유화’되어야 한다.
정경유착을 뒷배로 삼성그룹 확장에 효과적 역할을 한 건 은행이었다. 삼성이 오늘날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1950년대 흥업은행과 조흥은행을 불하받은 덕분이었는데, 삼성은 두 은행을 이용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을 손쉽게 사냥했다. 그룹 계열사 절반 가까이는 이렇게 인수·합병한 기업들이다.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도 은행의 역할이 컸다. 결국 삼성은 국민 저축을 제멋대로 이용한 덕분에 오늘날의 거대 기업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국민연금 농단은 삼성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민기업이어야 할 삼성을 사유화한 이씨 가문이, 족벌 경영을 재생산하기 위해 국민과 국가의 재산을 제멋대로 주무르려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족벌 경영, 삼성과 국민경제 모두에 손해
“이건희 회장의 의지는 대부분 그룹 본사의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을 통해 각 계열사에 전달된다. 미래전략실은 계열사 간의 시너지 창출, 그룹 차원의 역량축적 등에서 종합적인 조정역할을 한다. 계열사 간의 이해상충을 조정하면서 그룹 차원에서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각 계열사들의 전문경영자들은 소유 경영자가 제시한 비전을 계열사에서 실행하기 위해 자율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해나간다.” (송재용 외, 《삼성웨이》, 2013)
요컨대 삼성그룹이 ‘족벌 경영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세습 정당화의 근거다. 하지만 계열사 간 시너지란 계열사 기업사냥이나 다름없었다. 삼성은 인수합병을 위해, 금융 계열사 자금을 이용할 때, 총수가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순환출자에서 계열사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재산 증식을 최우선으로 해 최순실의 딸을 지원했고, 미르K재단에 거액을 헌납한, 총수 개인만을 위한 비서실이었을 뿐이다.
의도가 불순하더라도 총수 의지를 지렛대로 그룹 전체가 합심하면 계열사들이 각개 약진하는 것보다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삼성이 자랑하는 반도체, LCD, 휴대폰은 대규모 투자와 자원을 집중하는데 그룹 차원의 판단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공유해 시장 신뢰를 높이고, 계열사 인재를 신사업으로 집중시키며, 그 신뢰를 밑거름 삼아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원활하게 동원하는 것에 총수의 의지가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백보 양보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삼성그룹의 60퍼센트(매출기준)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보면, 다른 계열사와의 거래는 매출의 5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시너지를 위한 기업 간 협조 대부분은 삼성전자가 해외생산, 판매, 서비스 등을 위해 직접 세운 종속회사 사이에서 발생한다. 즉, 현재 삼성전자가 그룹 내부의 시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전략실의 지원이나, 총수의 의지도 필요 없다.
삼성이 최근 계열사 시너지 효과의 예로 든 것은 헬스케어 사업이다. 삼성의료원이 의료서비스를, 삼성SDS가 원격의료 플랫폼을,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과 각종 전자칩 기술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맞춤형 의약품 생산을, 삼성생명이 보험을 담당해 그야말로 보건의료 전 분야에 계열사들이 협력하며 함께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산업에 이렇게 계열사가 함께 진출하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첫째, 전쟁 폐허에서 산업을 일구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이미 각 분야에 여러 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삼성이 모든 걸 다 할 필요가 없다. 굳이 이걸 다 하겠다는 경영 전략은 사실상 독식과 독점의 논리다. 둘째, 헬스케어나 21세기 지식기반산업 등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삼성이 의료민영화를 통해 ‘국민 건강’을 담보로 떼돈을 벌어보겠다는 속내다. 이번 게이트에서도 드러났듯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의료 관련 규제 해제를 위해 전방위적 로비를 벌였을 뿐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거짓인 근거는 이재용의 청문회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두 계열사의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이뤄졌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룹의 존재가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보여주는 역설적 사례다.
작년 제일모직과 합병된 삼성물산의 사업구조는 상사, 건설, 패션, 리조트, 식품유통, 바이오다. 상사와 건설은 구 삼성물산의 사업이었고, 패션과 건설 일부는 구 제일모직, 리조트와 식품유통은 구 에버랜드 사업이었다.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는 설립 때부터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는 논란을 일으키며 아무 사업 관련이 없던 에버랜드(이재용이 대주주) 계열사로 출발했다.
도대체 6개 사업이 하나의 회사로 통합돼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가 뭘까? 과연 건설과 식품유통이, 패션과 바이오가 하나의 회사에서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삼성물산 2016년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6개 사업은 사업부 간 매출도 거의 없고, 공통 사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하나 찾자면 물산과 모직의 건설부문을 통합한 것이 전부인데, 모직의 건설사업 매출은 1.6조원으로 통합된 삼성물산 매출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 그거 하나 하자고 두 기업을 통합하는 건 비상식적이다.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확보 목적 외에는 두 계열사의 통합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요컨대 삼성이 그룹 유지의 명분으로 삼는 계열사 간 시너지는 보잘 것 없거나,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순환출자를 유지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건희-이재용 가족의 족벌 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가 불법이라면, 굳이 삼성그룹을 지금처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이재용과 투기자본의 대결?
이재용 경영권 승계의 또 다른 근거는 초국적 투기 자본으로부터 삼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초국적 투기 자본은 막대한 배당액 혹은 경영권 일부를 삼성에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엘리엇 뜻대로 된다면 말 그대로 심각한 국부유출일 것이다. 족벌 경영이 문제가 있어도 투기자본보다는 낫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재용 경영권 승계 지지의 근거다.
당연히 국부유출은 최악이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국부유출을 막는 방법이 이재용 경영권 승계밖에 없다고 전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재용의 직접적인 삼성전자 지분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이건희 지분을 상속하면 4퍼센트, 합병된 삼성물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우호 지분 4.2퍼센트가 전부다. 여기에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7.8퍼센트의 지분은 금융부문이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될 경우 삼성물산 지분수준에 따라 정리가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분석과 전망》, 경제개혁연대, 2016). 즉, 현 상황에서 이재용이 경영권을 승계한다면, 직접적 지분은 고작 4퍼센트 내외, 계열사 우호 지분이 4~9퍼센트 정도다.
만약 국민연금이 국민 이해를 대변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의 단일 최대주주다. 이재용 부회장 가족 지분을 모두 합친 것보다 2배 많다.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 역시 이씨 일가보다 많고, 물산, SDI, 엔지니어링 등 7개 계열사에서 5퍼센트 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다. 그리고 이들 계열사가 삼성전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은 5.5퍼센트다.
생각하기에 따라 국민연금이 이재용을 대신해 삼성전자를 경영하고, 이씨 일가가 2대 주주로서 경영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늠해볼만 하다. 엘리엇 등 투기자본이 삼성전자를 ‘먹튀’하기 위해 덤벼드는 것 역시 막을 수 있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삼성을 만들자
알려져 있다시피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삼성의 위기는 국민경제의 위기일 수 있다. 이재용이 헌정을 유린한 죄는 매우 크다. 그리고 현재 삼성은 굳이 총수 지배구조를 위해 그룹(기업집단)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재용을 처벌하는 데 경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주저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법 경영권 승계를 막고, 국민이 직접 삼성을 국민경제 친화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재용 없는 삼성, 국민이 통제하는 삼성, 총수가 아닌 국민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삼성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다. 이재용 처벌과 함께 삼성에 대한 현실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