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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 제25호

세월호 진상규명,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왔나

  • 박상은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경험한 그 어떤 사건보다 많은 의문점이 제기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의문점에 하나하나 답하는 것으로 진상이 규명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총체적 진실’이고, 진상규명은 이에 맞게 주요 쟁점과 파생된 쟁점, 부차적인 쟁점 등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최근 관심이 집중된 세월호 참사의 급변침 원인과 세월호 7시간에 대해 ①세월호의 침몰 원인 ②구조실패의 책임이라는 분류로 살펴보고자 한다. 
 

침몰원인의 세 가지 가능성

세월호는 증축과 과적으로 인해 복원성(배가 기울어졌을 때 원위치로 되돌아오려는 성질)이 악화된 배였다. 선장은 항해사들에게 변침할 때 한 번에 타 각도를 크게 돌리지 못하도록 주의시켰고, 제주도에서 바람 때문에 균형을 잡지 못해 예인선의 도움을 받고도 출항을 하지 못한 적도 있다. 화물칸에 지게차가 오른쪽으로 다닌 것만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적도 있다. 세월호의 정식 선장이 했다는 말처럼 세월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 즉 다른 배는 넘어지지 않을 상황에서도 넘어질 수 있는 위험한 배였다. 배를 운항시킨 선사와 선박검사기관, 감독기관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처벌을 받은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침몰원인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복원성이 나쁜 배를 넘어뜨린 결정적 자극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직접적’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설은 크게 세 가지로, 선원의 조타 미숙, 조타기 고장 등의 기계 결함, 외력의 작용이다. 

‘조타 미숙’은 검찰이 유력하게 제기한 가설이다. 조타수가 실수로 조타기를 너무 많이 돌려 급변침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조타수 실력이 떨어진다는 증언이 부각되었고, 1심 재판부 역시 검찰의 수사결과를 받아들여 조타 미숙을 인정했다. 

기계 결함 가능성은 2심에서 대두되었다. 사고 당시 키를 잡았던 조타수는 타(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해 왔는데, 복수의 선박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조타 실수가 아니라 기계적 결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여 조타수와 항해사는 감형되었다. 

외력의 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 가장 문제적인 가설은 잠수함 충돌설이다. 잠수함 충돌설은 ①사고 해역이 수심이 낮고 폐어망 등이 많아 잠수함이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 ②뒤집힌 세월호에 충돌 흔적이 없다는 점 ③레이더에 수면 아래 있는 잠수함이 잡힐 수 없다는 점 ④세월호를 침몰시킬 만한 거대한 충돌이 있었다면 잠수함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인데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해역을 빠져나가거나, 수리 내역조차 없을 수는 없다는 점 등으로 인해 신빙성이 낮은 가설로 여겨져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세월X’라는 다큐멘터리에 이 가설의 가능성을 높게 본 모 대학교수의 인터뷰가 포함되어 다시 주목을 받긴 했으나 여전히 위의 비판을 뒤집을 만한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류나 파도의 영향, 프로펠러나 스테빌라이저(선박 양 측면에 날개 형태로 설치돼 좌우 균형을 잡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장치)에 장애물이 걸렸을 가능성 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를 외력의 작용이라 보고 가능성을 열어둘 수는 있다. 
 

기계결함 가능성과 침수지점

위 세 가능성 중 ‘기계 결함’ 가능성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설이다. 일단 타가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조타기는 솔레노이드 밸브라는 작은 밸브에 먼저 전기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신호에 맞게 유압(油壓)을 주게 되고, 유압으로 타가 서서히 돌아간다. 그런데 이 밸브가 기름 협착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경우, 조타기에서 준 전기신호와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계 결함 여부는 재판부도 인정한 대로 결국 “세월호를 해저에서 인양해 관련 부품들을 정밀히 조사”해야 밝혀질 수 있겠지만, 인양이 늦어져 침몰 원인을 온전히 밝히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수리 기록 검토, 조타기 고장 사례에 대한 추가 조사, 여러 사례를 경험한 경력 있는 선원들에 대한 면담 등을 통해 가설을 더 좁힐 수는 있을 것이다. 

침몰 원인을 조사할 때 급변침의 원인과는 구분되지만 중요한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침수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다. 세월호가 예상보다 일찍 침몰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복원성이 나빠 배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더라도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채로 떠 있는 것이 정상이다. 또한 침수가 일어나더라도 6000톤급의 배인 만큼 완전 침몰까지 3~4시간은 걸릴 것이라 예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가 기울어진 시간부터 완전 침몰까지 걸린 시간은 101분으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최초 침수 지점에 대해 선미램프, 도선사 문 등 몇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으나, 최근 화물칸인 C데크의 위쪽이 철판이 아니라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곳으로 침수가 시작되었다면 빠르게 배가 침몰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왜 화물칸의 일부를 철판이 아니라 천막으로 가렸는지는 앞으로의 조사 과제다.
 
1월 7일 촛불집회 현장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BSTODAY

구조 실패의 책임

왜 구하지 못했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침몰 원인 이상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의 기존 여객선 사고와 세월호 참사가 명확히 구분되는 바가 있다면, 바로 골든타임이 상당히 길었다는 점이다. 특히 선장과 선원 대부분은 살아남았으나 승객의 상당수가 사망했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으로 인해 승객들이 스스로 탈출할 의지조차 꺾었다는 점, 또한 구조 세력(헬기 및 함정)이 골든타임 내에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승객을 구조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구조 실패의 책임은 누가 어떻게 졌을까. 일단 살아 돌아온 기관부·갑판부 선원들은 모두 처벌받았다. 선장은 대형 참사에서는 유례없는 살인죄를 적용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경에 대해서는 법무부에서 아무도 기소하지 말라는 압박이 있었고, 결국은 직접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만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를 파악하여 현장에 출동한 함정과 헬기에 지시할 의무가 있었고 실제로 할 수 있었던 해경 지휘부는 그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컨트롤타워로서의 청와대의 책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했다. ‘세월호 7시간’이 초기에는 정윤회와의 밀회 등 선정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면서(최근에는 미용시술이라는 또 다른 가십성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그 의미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지나온 것이다. 
 

‘세월호 7시간’의 의미

‘세월호 7시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재난컨트롤타워로서 청와대라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4월 16일,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은 대통령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해 보고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비서실이 어떤 정보를 수합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은 10시 이전에 이미 배가 아주 빠르게 기울고 있으며, 그 기울기가 침몰 위험이 있을 정도라는 점(40도→60도)을 파악했다. 또한 11시 이전에 선내에 대다수의 승객이 남아있다는 점을 보고받았으며 이를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나타난 대통령은 그 정보를 듣지 못한 것처럼 발언하고, 그 사이 언론의 오보는 전혀 정정되거나 통제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대통령이 공백이었단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청와대라는 시스템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이 당연한가?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해명되지 않고, 상당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문제이다. 

‘세월호 7시간’은 국가가 재난대응 실패의 책임을 어떻게 회피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에어포켓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숨기고, 공기 주입이 성공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해경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를 통제하려고 하는 등 일련의 책임 회피와 은폐 작업은 4월 16일 당일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일례로 4월 16일 오전 10시경, 배가 침몰 중인 긴급한 상황에서도 해경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여 세월호의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되었는지 알아보라는 통화를 은밀히 주고받았다. 이미 청와대의 해명 중 대통령에게 보고한 횟수, 내용, 대통령의 통화 기록 등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조사가 더 진행된다면, 청와대의 책임 회피·은폐 작업의 구체적인 정황이 더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1년 남짓 존재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여러 한계에 부딪혔다. 침몰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소수의 대학교수를 제외하고는 협조를 얻기가 어려웠다. 한국의 협소한 해양선박분야 여건상 해양안전심판원이나 한국선급 등에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위 기관을 신뢰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한국선급은 조사 대상이기도 했다.) 조사는 더디고, 현장 경력이 긴 선원에 대한 면담 계획은 세우지도 못했다. 

청와대에 대한 조사는 기초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거대한 반대에 부딪혔다. 특조위 역시 청와대의 자료 확보만 신경 쓴 나머지 청와대 관련자(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이나 해경에서 파견된 사회안전비서관 등)의 진술 조사는 전혀 하지 못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우리는 이 사회의 적폐가 무엇인지, 어떤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그 안에서 세월호 문제를 우회할 수는 없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결국 이 국가가 어떻게 실패하였는지에 대한 답이고, 그 실상을 직시했을 때 새로운 나라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곧 세 번째 봄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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