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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7/02 제25호

브렉시트 이후 영국 좌파의 과제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지난해 6월 영국인들은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통해 자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과 세계에 거대한 불안정성을 선사했다. 우리는 이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지칭하는 합성어)라 부른다. 브렉시트는 트럼프 당선만큼이나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알던 세계’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세계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들도 브렉시트에 놀라워하며 이것의 여파를 가늠하고 우려를 표해왔다. 브렉시트 직후 일어난 인종주의적 혐오와 다툼들이 선정적으로 보도됐고, ‘의회정치의 어머니’ 영국에 왜 이런 미련한 일이 벌어졌는지 호들갑 떨기 바빴다. 영국의 금융서비스부문 EU 이사 조나단 힐은 “런던시티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다”며 애통해 했다. 국제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투기세력은 부자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는 훨씬 가난해질 것”이며, “스코틀랜드는 다시 독립을 시도할 것이고, 북아일랜드도 아일랜드와의 통합론이 제기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유럽연합을 위한 거래

애초 유럽연합의 구상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평화를 이루자는 이상은 ‘사회적 유럽’으로 표출됐고, 여기에 유럽 자본의 요구가 더해졌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향상 △경제적 보호주의에서의 탈피 △사회주의의 억제 △독일 팽창주의의 차단이 유럽통합을 추진하는 요인이었다.

실제 EU 형성의 과정은 지배계급의 프로젝트였고, 전후 유럽의 노동자운동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휩쓸려갔다. 게다가 1992년 소련 붕괴와 냉전시대의 해체는 유럽 통합에 새로운 자극이 됐다.

하지만 영국은 EU와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선호했고, 자신을 유럽 국가로 여기지 않았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영연방이라는 정치적 동맹관계를 통해 구축된 정서적 유대가 전쟁까지 거쳤던 유럽대륙의 국가들보다 더 강했다. 대서양 건너 미국의 존재도 유럽에 대한 거리두기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당 정부가 꺼리던 ‘사회적 유럽’의 색깔이 옅어졌다. 1992년 마스트리트조약이 체결되면서 경제통합과 유로화 도입 등 금융자본의 이해를 떠받드는 방향이 더 명확해졌다. 대처는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EU 가입이 유리할 것이라 여겼고, 유럽연합 회원국으로는 가입하되 유로화는 쓰지 않는 걸 택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파운드화의 위상과 영향력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캐머런의 위험한 도박

2008년 세계를 뒤덮은 금융위기 이래 영국 경제 역시 걷잡을 수 없이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지역과 세대 갈등이 고조됐고, 런던 도심의 중산층과 외곽의 백인 노동자 간 격차가 벌어졌다. 부유한 금융 엘리트들은 빈곤과 실업의 늪에 빠진 빈곤층을 조롱했고, 빈곤층은 동유럽과 중동에서 온 이주민들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강한 긴축 정책에 대한 분노가 엉뚱한 과녁을 가리킨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이 부상했다. 이들은 ‘EU 탈퇴’를 주장하며 정치 판도를 흔들었다. 제조업 몰락으로 실업난과 빈곤에 시달리던 북부의 노동자 표심을 움직였고, 이보다 광범위하게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잠식했다. 캐머런 전 총리로선 이를 막아야 했고, 유럽연합 잔류·탈퇴 국민투표를 통해 정치적 내기를 걸었던 셈이다.

확실히 보수당 입장에서는 전선을 EU에 놓는 게 유리했다. 마치 우리나라 지배계급이 양극화나 빈곤, 비정규직 등 쟁점을 ‘산업 구조조정’이나 ‘강성노조’로 쟁점을 옮기듯이 말이다. EU를 악마로 삼으면 적어도 긴축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이 확산되는 걸 무마시킬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게다가 캐머런은 유럽연합 분담금에 대한 비판 여론 역시 고려해야 했다. 캐머런은 △이민자 복지 혜택 제한 △영국 의회의 자주권 강화 △EU 규제에 대한 선택권 부여 △비유로존 국가의 유로존 시장 접근 보장을 조건으로 걸고, 국내의 반대 여론과 국민투표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EU와 협상을 거친 영국은 4대 조건을 거머쥔 후 약속대로 국민투표에 들어갔다. 협상에서 승리했으니 ‘잔류’를 낙관했고, 영국독립당의 위협과 사회적 갈등도 봉합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도박이었음이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래 영국 사회의 극심한 모순은 지역, 계층, 세대를 분기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갈등과 불만은 캐머런 등 지배 엘리트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고, 결과는 탈퇴 52퍼센트, 잔류 48퍼센트였다. 영국의 엘리트들에게 플랜B가 있었을까? 눈곱만큼도 없었고, 이내 패닉에 빠졌다.
 

영국인들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

엘리트 지식인들은 탈퇴를 택한 영국 노년층과 노동자들의 무지와 인종주의를 원망했다. 대처리즘의 파고에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은 모른 척한 채 말이다. 그들은 그간 민주주의와 삶을 공격했던 기득권들의 과오에 대해선 돌아보지 않는다. 극우세력의 준동에 놀아난 민중의 무지가 문제라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 당시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국민들이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비난한 이들이 있었다. 몰염치하기론 대동소이하다.

이미 런던에선 청년들의 무차별한 폭동이 빈번할 정도로 사회적 분노와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선 좌파 민족주의의 기치를 건 스코틀랜드민족당을 중심으로 독립 여론이 거세졌고, 리버풀 등 몰락한 제조업 도시에선 일자리와 복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라고 해서 죄다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쇠락 지역 노동자들은 브렉시트를 택하는 경향이 높았지만, 대도시에선 잔류가 그나마 합리적 희망이라 믿으며 주위의 부유한 사람들과 함께 잔류를 택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른바 ‘공간의 양극화’가 남과 북,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경계로 과잉결정된 것이다.

이는 대처 시기 영국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 중심으로 옮기면서 생긴 변화다. 영국은 레이건의 미국과 함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이 되어 스스로 복지국가 체계를 와해시키고 있었다. 금융이 중심이 된 런던의 중산층과 서비스업 노동자들과 지방의 배제당한 사람들의 격차가 커진 것이다. 오늘날 영국은 금융업에 있어서는 외환거래, 장외파생상품, 국제 채권시장 등의 메카다. 하지만 국가의료체계(NHS)로 대표되던 복지국가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대해 극우파는 이주민을 내쫓아 과거의 국민국가를 재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보수당과 노동당 블레어주의 주류정치인들은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관성을 통해 과거의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 더 많은 긴축과 배제를 통해서 말이다. 이처럼 보수당의 유럽연합 잔류 캠페인엔 어떤 반성도 없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유럽이 영국인들의 삶을 파괴해왔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극우파들의 인종주의적 선동에 의해 굴절되긴 했지만, 진정한 표적은 긴축 정책이었다. 직업과 주택의 부족, 저임금, 공공서비스의 하락,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같은 현실은 분노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한 것은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과 영국독립당의 나이젤 패라지였다. 이들은 일관되게 인종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며 이주민 혐오를 부추겼고, “EU에서 탈퇴해야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떠들었다.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한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불행히도 좌파, 특히 만년 비주류에서 노동당의 새로운 기수로 등극한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유럽연합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며 미국보다 노골적으로 금융자본의 이해를 관철시켰다. 코빈은 이런 EU의 신자유주의적 노선에 비판적이지만, 대놓고 잔류를 주장하기도, 극우적 선동이 지배하는 탈퇴를 택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공식적으론 잔류를 당론으로 했으나, 영국의 전통적 좌파들 내 입장은 상당히 분할돼 있었고, 이런 조건 때문에 노동당 좌파는 입장을 과감하게 재기하지 않았다. 이는 블레어주의부터 코빈까지 다양하게 분열된 노동당 내부와 런던의 사무직 노동자부터 리버풀의 실업자까지 잔류-탈퇴로 양분된 지지층을 어느 한쪽도 버리지 못해서였다.
 

좌파의 분열과 영국 노동당의 한계

영국의 좌파들은 브렉시트를 두고 갈라졌다. 코빈으로 대표되는 노동당 좌파, 신생 좌파정당인 레프트유니티(Left Unity), 영국노총(TUC)과 유나이트(Unite) 등 노조 다수는 잔류를 택했다. 반면 노동당 외곽의 급진좌파들은 좌파적 탈퇴(LEXIT; Left Exit)를 주장했다. 사회주의노동자당, 사회주의당 등 트로츠키주의 계열 극좌파와 철도항만운송노조(RMT) 등이 그들이었다.
좌파적 탈퇴(LEXIT) 유인물

좌파적 탈퇴론자들은 브렉시트가 이뤄지더라도 지배계급이 잔류와 탈퇴로 갈렸기 때문에 좌파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 기대했고, 능동적으로 탈퇴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EU, WTO 등) 자본주의 기구들을 약화시키고, 보수당 안에서 점증하고 있는 갈등을 이용”하자며,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밝히지 못했고, 뚜렷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극우 선동에 이끌린 브렉시트 여론을 휘어잡기엔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면 잔류를 주장한 좌파들은 ‘다른 유럽은 가능하다’ 슬로건으로 공동행동을 조직했다. 코빈은 “EU를 유럽 시민들에게 더 책임감 있게 민주적으로 개혁하자”며, “자기파괴적 긴축의 중단, 일자리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럽 정책의 중심에 두고,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개혁”을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노동당은 한계에 갇혀있었다.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하기 보단 정치엘리트 면모가 강했고, 기존 질서의 틀을 벗어나려들지 않았다. 또, 노동당 중심의 단결을 강조하는 노동당주의도 문제였다. 사회 저변에서 불만이 일고 변화의 열망이 커지더라도, 당권파 리더들은 귀를 닫고 현실에만 안주해왔다. 노동조합 역시 사업장별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바 없다. 이것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집권 노동당의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위시한 역사적 퇴행을 낳은 것이다.

최근의 코빈 현상은 ‘블레어 노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절망과 비주류 좌파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한동안 지방자치를 통해 사회주의적 대안과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고자 했던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 다시 무대에 섰다. 하지만 코빈 역시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서 있고, 이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브렉시트 이후 블레어파가 브렉시트를 빌미로 코빈에게 사퇴를 제기했던 것은 이런 불안정한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블레어파야말로 이 상황을 유발한 진짜 원인이지만, 몰염치하게도 그들은 코빈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노동당의 진짜 곤경은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들이 정서적, 정치적으로 갈라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코빈은 브렉시트 후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재선되며 블레어파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긴 했지만, 여전히 해결책과 장기적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유럽은 가능하다’ 토론회
 

대안 유럽을 위한 노력들

지난 1월 17일 보수당 메이 총리는 이주 문제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영국만의 독자 노선을 천명하고, EU와의 결별을 뜻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언급했다. 영국은 이제 EU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와의 관세 및 무역 협상을 새롭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알 수 없지만, 민중들에겐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혹독한 겨울이 지속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좌파들은 판도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이 아닌 ‘다른 유럽’을 만들자던 정치적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다. 제도화된 사회적 유럽의 한계는 명백하고,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중도좌파는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급진좌파와 대안세계화운동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경제위기로 인해 유럽연합의 비민주성과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유럽 내부의 사회, 경제적 격차는 더욱 부각되었다.
 
국민투표 과정에서도 대안세계화운동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10여 년간 대안세계화운동이 겪어온 침체 때문이다. 좌파적 잔류 주장의 설득력은 인종주의적으로 이끌린 브렉시트를 우선은 저지해야 한다는 데 있었는데, 대안 유럽의 경로와 비전은 아직 보증된 바도 없다.

흔히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만들어진 국민-사회국가는 그 나름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유럽이 마주한 이주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 극우파의 정치적 발호 등으로 표출되는 대혼란이 그 위기를 방증한다. 근본적으로 이는 모든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서의 사회권이 ‘국민이냐 아니냐’의 기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사회국가가 위기에 빠지자 유럽은 심각한 갈등 양상에 빠져들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삶은 추락하고, 빈곤은 확대되며, 이주자들과의 적대는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기존의 사회적 권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만을 목표로 저항할 순 없다. 국민과 비국민 사이의 차이와 불평등을 그대로 방치하고, 그것은 다시 차이와 불평등을 통해 자기 존재의 우월감과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취약계층이 증대되는 사회적 불안감 앞에서 극우파를 지지하는 쪽으로 조장하는 결과만 낳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우리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권리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걸 목표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국민의 차원을 넘어 외연적으로 확장하는 국제주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위기 앞에 유럽 좌파들은 국내에서는 긴축 정책에 맞서 사회적 권리를 확장하고, 국적을 초월한 연대와 단결을 원칙으로 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유럽 좌파들은 파리와 베를린, 마드리드에서 각각 세 번의 회합을 가진 바 있다. 프랑스 좌파당 장 뤽 멜랑숑 등이 주도한 ‘플랜B를 위한 국제주의자 회의’에서는 주변국가들의 능동적인 탈퇴부터 EU 개혁 모색까지 광범위한 입장들이 토론됐다. 그리스 시리자 정권의 첫 재무장관으로 한때 유럽은행과 대결구도를 펼쳤던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주축이 된 DiEM25(Democracy in Europe Movement 2025)의 경우 ‘EU의 민주화 혹은 해체’를 걸고 발족됐다. 이들은 유럽의 5대 위기로 채무, 은행, 빈곤, 낮은 투자와 이민을 꼽고, 대안으로 위기에 대한 보편적 대안을 위해 EU 기구들의 완전한 투명성과 유럽 시민에 대한 책임성 강화를 요구했다. 1500여 명의 활동가가 조직된 ‘유럽을 위한 플랜B’는 시민사회운동의 강력한 개입을 강조했다. 스페인 포데모스와 통합좌파에 의해 공동주최된 이 행사는 부채 이슈와 이를 위한 정치적 대안들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파국 직전의 유럽에 민중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무엇을 ‘플랜B’로 삼아야할 지 토론하고 저항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드 브렉시트’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영국 노동당 안팎의 좌파 역시 보수당의 반노동자, 반민중적 경제 정책을 면밀히 비판하고 장기적으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당이 역사적 관성을 딛고 인종주의 발호와 국가의료체계 개악을 저지하려면, 영국 내 사회운동의 성장을 지원·독려하고, 대륙에서 시도되는 국경을 초월한 국제연대 노력에 동참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사회국가의 한계 역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혁신해야 산다

영국과 유럽이 안고 있는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노동권에 대한 공격,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빈곤 양산 등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우리 역시 ‘불법체류자’로 규정된 이주민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심각하고, 여성과 장애인, 동성애 혐오까지 겹쳐진 다양한 갈등 양상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일부를 기득권으로 공격하는 시도가 커지고 있다.

요컨대 김대중 정권 이래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를 걸쳐 지속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노선은 단 한 번도 폐기된 바 없으며, 그 기간 동안 불안정노동과 실업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차기 대권이 유력시되는 문재인과 마찬가지로 친노 후보로 주목 받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블레어식 노선과 대동소이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민주-진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다면, 저들과 함께 도매 급으로 처분되고, 대안을 밝힐 기회도 없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는 우익 포퓰리즘의 공세에 대한 수동적 방어와 국내적 운동만으론 한계가 명백함을 보여줬다. 대안 좌파를 세력화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중대한 과제다. 하지만 아시아는커녕 동아시아에서도, 국제연대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유럽이 놓인 처지는 오늘날 세계적 위기의 결정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초유의 광장시위와 탄핵을 거쳐,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있는 지금,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 사회의 상과 국제연대의 실천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만의 대안과 실천을 기획하고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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