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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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 제25호

어떤 적자들

  • 홍명교 편집실
문재인은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다. 촛불 초기엔 어정쩡하고 답답한 태도를 보였지만, “하루라도 빨리 박근혜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대중의 정서가 자연스레 문재인에 대한 지지세로 이어졌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은 패인으로 △안철수와의 후보단일화 맹신 △충청·강원 지역에 대한 대책 소홀 △메가 공약의 부재 △5~60대 유권자에 대한 고려 미비 등을 꼽았다. 민주당의 ‘메가 공약’이 무언지 여전히 알 수 없으나, 나머지 셋을 보완하기에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포지셔닝은 꽤 유효해 보인다. 시끌벅적한 경쟁을 통한 흥행을 도모할 수 있고, 경선을 거쳐 합력을 만들면 충청 표심까지 수렴한다는 계산이다. 안희정의 패기 넘치는 이미지와 문재인의 중후한 인상이 더해졌고, 문재인은 노년층을 공략하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럴 듯한 선거공학인 셈이다.

문재인이 친노의 왼쪽 날개라면 안희정은 오른쪽 날개다. ‘사실상 페이스메이커 아니냐’는 시선을 받아온 그는 지난 장장 5시간에 걸쳐 즉문즉답 형식의 출정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괴이한 멘트를 날렸다. 이는 안희정 혹은 그를 대표로 하는 정치적 경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복지정책 노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방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제시된 복지 위기 해결책은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국영기업이나 복지서비스를 사유화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시장이 ‘해방’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담보된다고 봤다. 이는 오늘날 복지 사각지대와 노동권의 추락, ‘워킹푸어’를 낳았다.

‘근로가 불가능할 때만 국가가 지원하며, 수급자들도 근로가능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근로능력 유무의 판정 권한은 언제나 정부에게 있었고, 그것을 증명해야 할 의무는 가난한 개인의 고군분투를 요구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근로능력평가에서 조건부 수급자로 판정받아 강제로 노동시장에 떠밀렸다가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안희정은 “지난 여섯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이어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로 준비되지 않은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노태우 정권 이래 점증해온 신자유주의 노선을 ‘합리적으로’ 재추진한다는 게 그의 정책 이념이다. 영국 노동당을 신자유주의로 투항시킨 토니 블레어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마주한 오늘 다시 나타난 걸까? 시대착오적 후진에 어안이 벙벙하다. 안희정을 위시한 민주당에겐 참여정부 시기 불평등 확대와 비정규직 양산 등 노동권 후퇴에 대해 어떤 반성도 없어 보인다. “중도보수층 표를 끌어오겠단 노골적인 욕망만 읽힐 뿐”(박권일)이다.

이번 대선은 선거공학의 승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 심상정이 말하는 ‘야권 연립정치’는 터무니없는 몽상, 미련한 환상이다. 지금 시기 민중운동진영이 할 일은 오로지 성찰을 통해 운동의 토대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어찌해야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에 맞선 대안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을지 숙고하고, 이념적·실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있다. 낭떠러지를 향한 행군에 가담할 순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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