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할 권리
- 2017/01 제24호
전쟁을 매뉴얼대로 하는 데가 어딨습니까?
공공운수노조연맹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이의용 위원장 인터뷰
입사한지 8년, 노동조합에 가입한지는 6년밖에 안 됐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을 싫어했다. 그랬던 이의용 씨가 ‘내가 노조 위원장 함 해볼랍니다’하고 나섰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명쾌하다. “노조에 바꾸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란다.
“전쟁을 매뉴얼대로 하는 데가 어딨습니까? 요새 여기저기서 회사가 노조 파괴하려고 컨설팅업체에 의뢰해서 시나리오까지 만든다는데, 노조가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면 당연히 깨집니다. 그런데 지금의 노조는 딱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요. 백전백패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노조 할 권리’ 주인공을 잘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1988년에 결성되어 3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노조일수록 큰 변화를 만들지 않고 현상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초기에 만들어 놓은 체계와 운영 방식, 사업이 대물림 되고, 이런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들은 노조에 들어오지 않으니 관성은 더 커진다. 악순환이다.
하지만 2013년 이의용 위원장이 당선된 이후 부산지하철노조는 눈에 띄게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그에게 ‘노조의 무엇을 바꾸고 싶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자율성, 전략, 프레임 전쟁, 미디어 활용 그리고 집회 문화 변화다.
자율성
많은 노동조합은 조합원이나 기층 단위의 자발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해 왔다. 투쟁과 사업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공문 없이는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고질적 문제였다. 이 위원장이 보기에 부산지하철노조도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현장 간부가 너무 적었고, 오래된 간부일수록 교육받고 토론하기 싫어했다.
현장 간부는 조합원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소통하면서 노조를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2013년 노조 대의원 정원이 106명인데 실제 인원은 68명에 불과했다. 대의원, 지회장을 맡았다가 금방 관두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회의나 토론할 때 선배들은 원칙 얘기만 했어요. 그 원칙이 뭔지도 말 안 하면서 ‘노조가 원칙대로 해야지’, ‘그건 우리의 원칙에 맞지 않고’, 이런 식이었죠. 그러니 이제 막 들어온 신입 간부들은 토론을 하고 싶어도 말문이 막히고, 어려워하고 불편해 하고 그랬죠.”
이의용 위원장은 현장 간부를 키워내기 위해 교육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임기 첫해 1년 간의 노조 간부 교육 커리큘럼을 전부 새로 짰다. 교육 내용과 방식, 토론 문화도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그중 하나가 시민단체들에서 진행하는 교육사업을 벤치마킹해 만든 ‘모떠꿈’(모여서 떠들고 꿈꾸자)다. 2박 3일간 100여 명의 간부들이 교육받고 토론했다. 굳이 노조 전용 강사를 고집하지 않았고, 토론시간 확보를 위해 강의 시간도 30분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첫날은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참가자들이 쉴 새 없이 강연과 토론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모떠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눠졌다.
“교육 마치고 평가서를 받았는데요. 노조 간부 10년 이상 한 사람들은 전부 다 엑스, 처음 한 사람들은 전부 다 동그라미였어요.”
교육사업이 노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궁금했다. “대의원이 계속 늘어나 지금은 100명입니다. 신입간부들이 ‘아, 간부가 큰 게 아니네요. 저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계속 하게 된 거죠.”
전략
그가 생각하기에 위원장은 조직의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원장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위원장이 되고 나서 문제를 더욱 절감했다고 한다.
“처음에 위원장 되고 왜 현장에 얼굴 안 비추냐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내가 얼마나 바쁜데! 그러면서 매일 무슨 활동을 하는지 다 보여주며 납득시켰어요. 운영위원, 지회장, 지부장, 위원장이 있는 이유가 있는데, 모든 일에 위원장이 와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죠.
위원장은 전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노조 내의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조직의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사람인거죠. 기업의 사장은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그런 건 파악 못 하면서 밖에서 발언만 하고 다녀요.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그는 위원장이나 상급노조가 할 일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짧은 위원장 임기 내에 투쟁으로 성과를 따내는 것은 회사로 치면 단기수익에 집중하느라 중장기 발전전략을 놓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노조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떤 시스템을 갖추게 할 것인가? 이런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노조의 많은 리더들이 파업 얘기밖에 안 해요. 하루짜리 파업, 1년짜리 투쟁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부산에서 서울 가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아십니까? 한 번 올라가면 수 천만 원이 깨져요. 노조가 돈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해야 해요. 예를 들면 변호사, 학자들이 우리 문제에 관심 없다고만 투정부릴 게 아니라 상경집회 돈을 아껴 매년 연구비로 수억 원을 낸다면 우리 얘기 안 듣겠어요?”
프레임 전쟁
정부나 언론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귀족노조’, ‘시민불편’을 강조한다. 부산지하철노조의 평균연봉은 6000만 원으로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공공기관에는 임금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실제 투쟁으로 임금을 올릴 수도 없다. 파업을 해도 요즘은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많으니 사측에게 그다지 위협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임금 문제보다는 시민의 안전이나 이해관계와 맞닿은 의제를 제기하며 지지와 연대를 얻는 것이 “적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 노조의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전략은 프레임과 여론전입니다. 여론이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해요. 부산은 지하철 1호선 노후화로 화재도 많이 일어나서 시민들의 경각심이 커요. 또 부산이 청년실업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 시민 안전을 위한 인력 확보 요구, 그 인력을 청년 신규채용으로 해결하라는 것을 핵심 프레임으로 설정한 겁니다.”
실제 시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이 위원장은 “휴(休)메트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부산교통공사 취업카페가 있어요. 이 사람들은 노사교섭요구안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신규채용을 몇 명 할지 아는 게 무지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올해 다대선(부산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의 경우만 봐도 1조 원이나 들여서 만드는 노선인데 부산교통공사는 고작 6명만 신규 채용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노조는? 200명이나 뽑으라고 요구하며 파업까지 하고 있어요. 자신들이 누구를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지가 아주 명확하죠.”라고 답했다.
프레임은 입으로 깨지지 않는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지역 연대사업, 청년단체 지원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10월말 한창 파업 투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지하철에서 일하고 싶다는 고등학생이 파업을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됐다. 부산교통공사가 파업을 폄훼하는 게시글을 역사에 붙이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이 사장 욕도 적고, 사측이 잘못했다고 낙서도 한다고 한다.
미디어 활용
부산지하철노조는 2009년부터 블로그 ‘땅아래’를 운영해왔다.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권 문제와 노조의 인력 확충 요구를 시민들에게 알려내기 위해 인기 블로거 8명을 초청해 동행취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찍부터 미디어 활용에 적극적이었던 노조였다.
이의용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빠르게 변한 최신 흐름에 맞춰 미디어 전략을 업그레이드 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하고, 텍스트만이 아니라 카드뉴스와 동영상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함께 ‘시사팸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시사팸투어는 유명 블로거와 인터넷매체 관계자들을 불러 부산 지역 현안들을 취재하고 기사, 만화로 제작해 SNS에 배포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말한다. “이제는 두 개의 세계가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온라인에 강한 노조를 만들자는 거죠.”
특히 부산지하철노조의 미디어 전략은 공공운수노조 공동파업 시기에 강한 힘을 발휘했다. 파업을 앞둔 9월부터 미디어 홍보전략을 철두철미하게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파워블로거인 조합원과 함께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부산공감’(4만 명 가입), ‘부산노동자’(3000명 가입)를 통해 쉴 새 없이 홍보물을 올렸다. 조합원들은 지침에 따라 모두가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지인들에게 홍보물을 퍼날랐다. 그중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 ‘파업썰전’ 영상은 3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파업 동안 성과연봉제 문제를 제대로 알렸고, 이를 접한 시민들과 가족들 사이에선 ‘공공기관에는 성과연봉제 필요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여론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집회 문화 변화
집회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이의용 위원장은 임기 시작부터 집회에 대한 규칙을 만들었다. ‘집회는 약속된 시간에 무조건 시작하고 마친다’, ‘제한시간을 넘긴 발언자는 다음에 절대 부르지 않는다’.
“집회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발언자가 많을 경우엔 내용이 겹치니까 미리 분야와 구호를 나눠서 제안을 드려요. 제 발언은 중복되거나 강조되어야 할 것 빼고 더해서 마지막에 짧고 굵게 말하는 식이죠. 그리고 정말 중요한 시기에는 공연 같은 요소를 섞어서 집중할 수 있게 구성해요. ‘이거 진짜 위급한 상황이구나’, ‘집중해야겠다’ 느낄 수 있게 말이죠. 예전에 밤무대 뛴 적 있는 조합원이 있어서 공연에 올린 적도 있어요. 조합의 자원을 최대한 발굴하려는 거죠.”
노동조합의 집회에는 오랜 습관이 있다. 참가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대표자 혼자 격앙되어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그러다보면 예정된 집회 시간보다 훨씬 늘어지고, 발언자들은 비슷한 얘기를 중복해서 말한다. 참가자들은 매년 비슷한 얘기를 듣기 때문에 따분해 한다. 그러던 노동조합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총 232만 촛불이 밝혀진 12월 3일 부산에서도 2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여기에서도 부산지하철노조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즐겁게 같이 흥을 돋우는 것이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저랑 조직부장이 ‘빡빡이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부르기) 공연만 했어요. 시민들이 파란 조끼 입은 부산지하철노조가 매일 와서 열심히 한다고 느껴요. 오늘 왜 안 왔어요? 오늘 옵니까? 이렇게 댓글이 달리거든요.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옳은 말 하는 게 다가 아니라 우리가 거기 함께 하고 있고 그 시간과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당신이 꿈꾸는 노조
그에게 남은 임기 1년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의 답은 예상을 벗어났다. “내가 이루고 싶은 성과는 이거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력이 무너지지 않고 이번 투쟁을 잘 마무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노조의 단체교섭과 투쟁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위원장 한 명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있고, 회사의 상황도 있는 거죠. 아무리 열심히 투쟁한다고 해도 정부가 강경하게 나와서 성과연봉제 못 막아낼 수도 있는 겁니다. 노조 내부에 분란이 없이, 우리 싸울 만큼 싸웠고, 정말 잘 싸웠다는 합의와 자부심. 그런 걸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이 위원장은 ‘깨뜨리다’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썼다.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배경에는 부산지하철노조의 건강한 풍토, 선배 활동가들의 지지와 지원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는 노동조합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작심한 것 같았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존의 체계와 관행을 ‘주어진 것’, ‘무조건 따라야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끊임없이 더 나아지기 위한 전략과 방안을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해왔던 대로 하면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우리 모두의 고민과 실천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묻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이 꿈꾸는 노조는 어떤 모습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