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7/01 제24호

우리의 권리를 누구의 손으로 작성할 것인가

인터뷰 : 직장 내 민주주의 외치는 '노동자의 미래'

  • 박준도 <노동자의미래> 정책기획팀장
오늘보다 : <노동자의미래>가 주관이 돼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실태조사, 상담사업, 근기법 준수 캠페인을 해왔던 것으로 아는데, 느닷없이 정치집회를 열었다. 왜인가?
 
박준도 : 서울남부 노동자 조직화 사업단 <노동자의미래>는 매월 상담사업, 근로기준법 준수 캠페인을 한다. 10월 마지막 주(10/27)에도 그럴 계획이었다. 그 주 월요일엔 JTBC가 최순실 테블릿PC를 처음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질 때였다. 그래서 토요일 광화문광장의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규탄 집회를 알리는 피켓도 하나 들고 있었다. 근데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우리 피켓을 관심 있게 쳐다봤고,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는 걸 느꼈다. 주말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다는 걸 직감했다.
게다가 그날 상담도 유난히 많았다. 1시간 동안 7~8명이 노동법 상담을 받겠다고 왔다. 박근혜-최순실 규탄 집회 홍보 피켓을 보고는, 노동법 상담하러 들어온 거다. 직감했다. 민주노총을 자기 편으로 생각한다는 걸.
 
오늘보다 : 민주노총이 자기 편으로 여긴다는 게 무슨 소린가?
 
박준도 : 보통 민주노총을 ‘대공장 정규직 노조’로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서울디지털단지에는 2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여성이 좀 더 많고, 20~30대가 대부분이다. 헌데 여기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500명도 채 안 된다. 그런데 이분들이 “민주노총입니다” 하면서 유인물을 나눠주면 다들 받는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 입장이 어떤지는 시민들이 안다. 정의당 모르는 사람은 있지만 민주노총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민주노총이 해당 사안에 대해 입장을 내면 받아본다. 동의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이번 게이트에 대해 민주노총과 <노동자의미래>가 자신과 동일한 입장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수준으로 분노한다는 걸 안 것이다.
 
오늘보다 : 그래서 촛불집회를 기획하고, 신문을 급히 제작했나?
 
박준도 : 맞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과 같은 정치적 입장임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고, 그래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도 된다고 판단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시민이자, 주권자로서 인식하게 한 사건인 만큼, 민주노총이 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고 하는지, 노동자 손에 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노동자들이 “그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야”라고 느끼도록 신문을 만들어서 뿌리기로 한 거다. 그래서 ‘12월 1일 구로에서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하니 우리가 왜 분노하는지 말해보자’, ‘너무 억울하지 않냐? 언제까지 이렇게 굴종적으로 살아야 하냐’는 취지로 작은 신문을 만들었다. 매주 논조를 다르게, 정세 흐름을 따라가며 만들었다.
 
오늘보다 : 발 빠른 기획이었던 것 같다. 결과는 어땠나?
 
박준도 : 그 전과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이었다. 호외신문처럼 뿌렸다. 너도 나도 <바지락 신문>을 받아갔다. 박카스나 따뜻한 커피 건네는 시민도 많았다.
사실 첫 집회는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 춥기도 했고. ‘성공적인 집회’라 할 순 없었지만,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총총 걸음으로 퇴근하며 박수치고 응원하는 노동자도 많았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도 느껴졌다. 잠깐이라도 머무르다 간 사람들, 끝날 무렵 택시타고 온 노동자도 있었다.
 
 
오늘보다 : 일터 현장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박준도 :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에는 개별 조합원들이 있다. 직장 조합원으로서 이해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민주노조의 대의에 동감하고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노동조합이라는 지역공동체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전언하길, 유인물이 사업장 안으로 들어온 날,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더라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이 미쳤지?”, “구로에서도 촛불집회 한데. 가볼까?”, “퇴근 시간 안 맞아. 나중에 가자.”, “토요일 광화문에 가지 뭐.”, “꿈 깨! 이번 주말도 특근이란다.” 잔업까지 빼고 참여할 만큼의 열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 건 맞았다.
더 재미있는 건, 사업주들 반응이다. 우리 유인물을 보면서 관리자들은 현장 단속에 나섰다. “정치문제 관심 갖지 마라. 이 유인물은 우리 회사 망하게 하려는 거니 일이나 똑바로 해라” 이렇게 말이다. 사흘째 선전전엔 경찰의 주의를 듣기도 했다. 사업주들이 시끄럽다고 우리를 신고했다는 거다.
황당하지 않나? 사업주들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노동자들 가슴에 불을 댕길 거라는 걸, 불의를 참지 못하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오늘보다 : 12월 22일엔 이랜드파크 본사 앞에서 애슐리 알바 임금 임금체불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고, 12월 29일에는 규탄 선전전도 예정돼 있다. 당일 기자회견 제목이 재밌다. “박근혜·최순실은 국정농단, 박형식은 이랜드파크 직장농단” 
 
박준도 : 사전적으로 농단(壟斷)은 ‘부당하게 이익을 혼자 독차지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다. 제가 “국정농단, 헌정유린, 민주주의 파괴, 회사 사장들과 관리자들도 우리를 무시한다. 우리가 욕 처먹으러 회사 다니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임금 떼먹히려고 일하는 거 아니지 않나요?” 이렇게 외치고 있으니까 옆에 있던 분이 “앞으로 근기법 안 지키고 제멋대로 하는 걸 직장농단이라 합시다”라고 했다. 국정농단이든 직장농단이든 입에 잘 붙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들에게 의미는 전달될 것 같았다. “직장농단 악덕관리자 퇴출, 직장 민주주의 바로잡기, 직장 민주주의는 노동조합 건설” 이렇게. 
며칠 뒤 이랜드파크가 알바노동자 임금을 떼먹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4만 4천명에게서 83억 7천만 원의 임금을 체불했다는 거다. 1인당 19만원 꼴인데, 푼돈 떼먹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알바노동자 등쳐먹고 돈 버는 기업이란 생각에 치가 떨렸다. 마침 이랜드파크 본사는 가산역에 있었다. 우리 ‘나와바리’에 있는 건데, 그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오늘보다 : 어디까지 밀고 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박준도 : 무료노동 근절, 직장 내 인권 보장 등 불의를 바로잡을 때까지다. 검찰이나 근로감독관에 의존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힘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불의에 항거하고 바로잡으는 것은, 시민권의 정치로서 민주주의를 향한 출발점이지 않나. 그게 ‘헌정’에서 배제당한 이들이 정치의 무대에 등장하고, 이들의 권리가 헌정에 새롭게 각인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시민공동체가 만들어질 거라 보고, 그게 바로 노동조합이다. 노조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고, 노동자란 존재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 노동자 대의기구가 되어야 한다.
공단사업을 한지 6~7년이 되었다.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느낀 건, 노동자들이 굴종을 내면화해왔다는 사실이다. 라인에서 빠지라는 말, 청소나 하고 있으라는 말처럼 모욕적인 말이 없다. 그런데 동료에게 관리자들이 그런 류의 폭언을 쏟아 부으면, 눈감고 고개 숙이고 외면한다. 심지어 그런 관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음료수를 사다주기도 한다.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라서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모르지 않는다. 주저하는 것이다. 참고 떠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임금을 떼 먹혀도 20~30만원 가지고 얼굴 붉힐 일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임금 요구만으로 되겠는가? 노동자로서 자부심,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권리에 대한 자각, 직장 내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솟구쳐야 노동조합도 가능하다는 거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존엄을 확인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인지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지금 국면에서 <노동자의미래> 활동이 조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보다 : 2016년 광장 시위에 대한 의미부여도 다를 것 같다.
 
박준도 : 부정부패를 도려내는 광장과 민주주의 파괴자를 몰아내는 광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전자는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 있지만, 후자는 오로지 민주주의와 주권자의 이름으로만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지금의 광화문광장과 1987년 광장의 차이다. 87년 6월 항쟁은, 80년 5월 광주에서 억눌린 정치적 권리를 다시 부르는 민주주의 광장이었다. 또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그간 정치에서 배제당한 이들이, 유명무실했던 헌법 33조(노동3권)를 되살리는 광장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결사조직인 민주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듯이 노동조합 위원장을 직접 선출하는 노조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1988년 노동법 개정투쟁을 거쳐 1990년 전노협을 결성함으로써 노동권을 현실에 존재하는 제도로 바꿔놓았다. “조인트 까지 마라”, “욕하지 마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와 같은 권리에 대한 자각이 먼저였던 셈이다.
 
오늘보다 : 이번 광장 시위의 의미가 재구성되기 위해서라도, 공단의 시도들이 성공해야 할 것 같다.
 
박준도 : 그래야 한다. 지금의 ‘박근혜 퇴진’ 함성이 시민의 권리장전으로 나아가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촛불이 지역과 현장으로 확산되고, 그를 통해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 민주주의 쟁취를 통한 자기 조직화로 말이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는 나중 문제다. 결국 우리의 권리장전을 누구의 손으로 작성할 것인가 문제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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