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01 제24호

촛불 시즌2, 일터와 삶터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박근혜 체제 해체를 위해 어디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11월 19일 4천여 명의 순천시민이 참가한 박근혜 퇴진 순천 촛불집회 ⓒ한겨레 안관옥
 

시즌1 : 촛불의 승리

탄핵소추안 가결로 국면의 첫 막이 내리고 두 번째 막이 올랐다. 광장의 촛불이 탄핵 가결이란 목표에 한정된 건 아니었지만, 버티기로 일관하며 자신의 범죄를 부정한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탄핵을 통한 직무정지를 거세게 요구했다. 그 분노가 야당을 움직이게 했고, 새누리당 비박계를 탄핵 대열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12월 9일, 국회 앞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촛불 민심은 승리의 환호성을 외쳤다.

물론 이번 촛불 시위에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세력이 보수재집권을 위해 추동한 수동혁명적 요소(체제 변혁을 막기 위해 기득권 세력이 벌이는 혁명에 대한 예방조치)도 있다. 하지만 투쟁의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보수언론의 시나리오대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 새누리당 친박·비박 등은 줄기차게 “대통령 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 구성”, “질서 있는 퇴진” 등을 주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 보수재집권의 발판을 만들려는 것이었고,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질 것’으로 보았다.

민주당, 국민의당은 갈팡질팡하다 시민들의 불안감만 키우며 원성을 자초했다. 이들 역시 촛불로 드러난 민심보다는 대선 셈법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100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더욱 불타올라 200만을 훌쩍 넘었다. 즉,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비박, 야당, 보수언론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일관되게 ‘박근혜 정권 퇴진’을 밀고 나간 것이다.

무엇이 원동력이었을까. 우선 박근혜 정권 퇴진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있다.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이게 나라냐”라는 발본적 분노가 작동했다. 보수언론의 느닷없는 개헌론이나, 대선을 염두에 둔 갖가지 퇴진 협상이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처벌해야 한다는 대중의 절박함을 더 키우기도 했다.

나아가 박근혜 게이트 자체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역린을 모두 건드린 것이었다. ‘흙수저’ 청년들을 분노케 한 정유라 입시비리, 재벌의 정경유착, 정치검찰의 봐주기식 수사, 북한 탓으로 정권 위기를 벗어나보려 한 한일협정 밀실추진, “민중은 개돼지”라며 입만 열면 터지는 망언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 침체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정치적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들을 계기로 폭발한 셈이다. 결국 투쟁의 첫 단계에서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끈질기게 싸워서 작지 않은 승리를 쟁취했다.
 

탄핵 국면 :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

박근혜는 탄핵됐지만 직무정지 후 박근혜 정권의 충복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사실상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의 지속인 셈이다.

야당은 황교안에 대한 사퇴 입장을 포기했다. ‘뼛속까지 박근혜’이자 ‘박근혜의 아바타’인 황교안은 박근혜 국정농단 정책을 중단하거나 되돌리기는커녕 충실히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당권을 다시 거머쥐고 ‘친박당’이 되어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고 있다. 비박계 34명은 탈당한 후 야당 코스프레 중이다. 한술 더 떠 박근혜는 탄핵안 가결 후에도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 모든 혐의를 부정하며 헌재 탄핵 심판에 대응하고 있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다.
때 맞춰 보수언론들은 경제와 안보의 위기를 강조하며 촛불을 끄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언제 결론을 낼지 알 수 없고, 전통적으로 정치적 조건에 따라 판단해왔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물론 촛불은 박근혜가 완전히 퇴진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일시적으로 규모가 줄어든 것은 탄핵안 가결, 10차례에 이르는 주말 집회의 피로도, 추운 겨울 날씨, 연말연시 상황 등이 겹쳐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종의 숨고르기 국면이고, 동시에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민주파괴의 주범인 박근혜 퇴진과 구속 처벌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언제든 불타오를 촛불이다.

그러나 즉각 퇴진, 조기 탄핵 요구만으로 매번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촛불을 확대하고 변화에 대한 열망을 사회변화 추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각 퇴진과 조기 탄핵 구호에 갇히지 말고, ‘박근혜 체제 해체’란 목표로 구체적 전술을 세워야 한다.
 

박근혜 체제 해체를 위해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 우리의 촛불은 다음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박근혜 구속이다. 박근혜가 구속 처벌되는 것은 고위 관료와 재벌에 퍼진 광범위한 공범들까지 처벌할 근거가 될 것이다. 몸통이자 주범인 박근혜 처벌은 박근혜를 만들고 그 체제를 유지시켜 온 친박·비박 정치인들, 재벌과 보수언론 및 정치검찰 등의 공범들을 청산하는 과정이다. 탈당한 비박계가 친박을 도려내고 중도보수로 재편한다 한들, 박근혜와 함께 권력을 누린 그들의 죄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박근혜 없이도 추진되고 있는 ‘박근혜 정책’들을 모두 폐기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적폐 청산 대상으로 언급하는 정책들은 시민들의 절망만 낳아왔다. 세월호 진상규명, 위안부 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사드배치,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 등 노동개악,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살인, 국정교과서, 언론장악 등은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 정책이고, 수 년간 사회적 논란거리였다.

셋째, 게이트의 꼭대기에서 물주 노릇을 한 재벌 총수에 대한 처벌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삼성 이재용 구속일 것이다. 이씨는 청문회에서 자신은 이런 거래가 이뤄지는지 몰랐으며, 박근혜로부터 별 다른 청탁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최근 특검 수사로 이것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뇌물죄 적용이 분명해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아가 박근혜 체제의 경제적 토대는 삼성을 위시로 한 재벌 체제다. 정경유착을 끊어 재벌의 탐욕을 멈추지 않고서는 해결될 문제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뇌물을 이용해 재벌에게 유리하도록 국정을 주무르고, 경영세습을 위해 국민연금에까지 피해를 입힌 이재용은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특검의 정당성 역시 거기서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시민들 
 

시즌2 : 광장에선 기동전, 일터에선 유격전

12월 27일 새누리당 분당으로 제1당이 뒤바뀌었다. 이제 친박계는 새누리당으로, 비박계는 가칭 ‘개혁 보수신당’으로 갈라서게 됐다. 정치권은 촛불로 분출한 민주주의 요구, 불평등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 요구 등을 대선 판짜기와 개헌을 비롯한 제도정치권 내의 이슈로 바꿔치기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합집산은 꼼수에 불과하다. 퇴진운동을 사회 곳곳으로, 촛불을 일터와 삶터로 스며들게 하면서 촛불의 힘을 더욱 키우고 사회변화를 위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사태 초기와 달리 보수언론은 비난의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 그들은 일터를 비롯한 생활 저변에서 지배자들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경계한다. 광장의 전면전만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박근혜 체제에 집단적으로 맞서는 유격전이 동시에 필요하다.

얼마 전 이랜드계열 외식업체 애슐리에서 알바 노동자 임금 84억 원을 떼먹어왔다는 사실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알려졌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민생과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면, 자본은 ‘직장농단’을 자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삶의 농단, 노동 농단에 맞선 싸움이 확산되어야 한다.

“내 직장의 박근혜-최순실은 누구인지” 묻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집단적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는 이런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전례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이번 게이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서창석 병원장에 맞서고, 철도노조가 홍순만 사장 같은 공공기관 낙하산 퇴출을 위해 투쟁하는 것, 노동자 조직화 사업단 노동자의미래와 알바노조 등이 이랜드 임금체불 등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 발언을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우리는 “이게 나라냐”, “주권자의 명령이다”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2017년 새해와 함께 촛불 시즌2도 시작했다. 이제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모든 삶의 터전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나설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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