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6/11 제22호

세계와 불화하는 것들, 이명과 소음의 SF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

  • 유지완 인디밴드 악어들 보컬
 
<칠드런 오브 맨>을 처음 본 것은 2011년 겨울, 홍대 청소노동자 농성장에서였다.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해 농성장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상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과 노래 소리, 차가운 공기와 바닥, 그리고 노동자와 학생들이 밤을 지새우는 열기와 함께 그 영화를 기억한다. 농성장의 차갑고 따뜻한 기운은 <칠드런 오브 맨>이 담은 황량한 세계에 대한 기억에 섞여있다. 이 영화엔 카메라, 스토리, 사운드 등 말할 거리가 다양하다. 이 글에서 나는 영화의 사운드에 주목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는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6년간 불임 상태에 빠져있던 인류의 희망, ‘가장 어린 사람’이 테러에 의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절망감에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누군가 아기를 임신한다. 불법 이주자 ‘키’다. 영화는 인류에게 사라진 생명의 기운이 왜 ‘키’에게서 부활했는지 말해주진 않는다. 다만 불법으로 규정되고 쫓겨나야하는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런 이주 정책으로 인해 가려진 삶의 고통에 대해 묻는다.

<칠드런 오브 맨>은 질문이 가득한 영화지만, 의미를 적시하진 않는다. 대신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소음들이 화면 가득 채워질 뿐이다. 영화 속 소음은 디스토피아 세계의 주된 구성물이다. 영화의 첫머리에 런던 도심 어느 카페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데, 폭발음에서 이어진 귀의 이명은 다른 소음들로 변주된다. 난민 수용소의 절규,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는 이주민들의 외국어가 뒤섞인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디스토피아를 구성하는 소음과 그런 세계와 불화하는 존재들을 드러낸다.
 
 

‘불임’의 시대

주인공 테오는 젊은 시절엔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했지만, 이제는 냉소주의에 빠진 공무원이다. 그의 일터 산업자원부 사무실 앞에는 ‘일자리는 영국인에게’라는 포스터가 보인다. 테러로 인한 이명은 인류의 가장 어린 출생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흐느끼는 소리와 뒤섞인다.

테오가 고통스러운 소음들로부터 피신하듯 향하는 곳은 아버지처럼 대하는 재스퍼의 숲속 별장이다. 1960년대의 생기 있는 음악이 들리는 재스퍼의 공간은 영화 속 소음의 유일한 피난처다. 롤링스톤즈의 ‘루비 투즈데이(Ruby Tuesday)’가 흐르는 동안의 풍경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충돌한다.

테이블 위엔 영국-프랑스 간 터널을 폐쇄하고 모든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한다는 기사와 식물인간이 된 재스퍼의 부인이 기자로 활동 중 고문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사가 보인다. 책상 위에 진열된 세계의 참상을 천천히 따라가던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침묵 속에 살고 있는 재스퍼 부인의 모습이다. 소음으로부터 피신한 음악의 세계가 끔찍한 침묵을 견디기 위한 것임을 영화는 음악과 침묵, 기사 헤드라인을 통해 보여주고 들려준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명은 계속 된다. 자살약을 권장하는 정부 광고 소리도 들린다. 이른 아침 침대에서 시작한 이명은 외국인 강제 이송 현장의 소음으로 이어진다. 곤봉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들이 벽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테오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주민들이 철창에 갇혀 저마다의 언어로 울부짖는 거리를 지나간다. 바로 그 거리에서 테오는 납치를 당한다.
 

백조의 노래

“귀에서 들리는 이명은 청각 세포가 죽어가는 소리야. 백조의 노래 같은 거지. 세포가 죽으면 음역대는 두 번 다시 못 들어. 그러니 들을 수 있을 때 들어.” 

무너지는 세계, 폭력의 잔상이 고통스럽게 남아있는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테오를 납치한 저항그룹의 리더 줄리엔은 세계가 붕괴하고 있으니 그 세계의 잔상과 소음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래 ‘백조의 노래’는 평생 울지 않는 백조가 죽기 직전 단 한번만 울고, 그만큼 그 소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에서 나온 얘기다. 창고에 울려 퍼지고 있는 이명은 테오에게만 들리는데, 스크린 안에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영화는 이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절망의 세계를 넘어

이민자 격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군대가 불법 이주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전까지 사용된 적 없는 롱테이크(긴 시간 쇼트를 끊지 않고 촬영하는 기법)는 소음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영화 초반부 들렸던 고음의 이명이 이민자들의 처참한 삶의 풍경과 함께 테오를 따라다닌다.

카메라가 아기와 엄마를 찾아 이민자 격리구역의 건물을 올라가는 동안 기침 소리와 폭발음, 총격이 섞인 소음이 들린다. 소음으로부터 이어진 이명이 아기의 울음에 도달하고, 잦아드는 소음과 함께 카메라는 움직인다. 울음소리가 영화와 같이 움직이는 순간, 흔들리고 무너지는 세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바로 전까지 굉음과 먼지 속에서 전투를 벌이던 이민자와 군대, 반군은 아기의 울음에 놀라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아기를 본다. 마치 절망의 세계 끝에 일어난 기적을 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아기와 키, 그리고 테오는 도시의 하수구를 지나 작은 배를 타고 안개로 덮인 바다를 향해 떠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절망과 폭력이 장악한 사회에서 희박한 가능성을 찾아가는 위태로운 과정에 대한 감각적 체험의 영화다. 그 세계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2016년 오늘 우리는 국가의 정책에서, 공장과 일터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이루어지는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귀를 기울이면, 지금도 절망의 세계에서 격리된 소음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가능성을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지속되던 소음이 멈추고, 다른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이다. 혁명이 “달리는 폭주 기관차를 멈추는 일”(W. 벤야민)이라면, 폭주하는 세계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것들의 소리를 듣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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