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건강과 사회
  • 2016/11 제22호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백남기 농민 진단서 논란을 돌아보며

  • 김진현 의사 ·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검찰과 경찰이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재신청을 포기했다. 백남기투쟁본부의 표현대로 상식의 승리이자, 고인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함께 싸운 국민들의 승리다. 사필귀정이라지만, 정말 어렵게 역사가 제대로 된 길로 한 걸음 내딛었다.
 

물대포의 위험성

물대포의 위험성, 즉 물대포가 살인까지 가능한 무기라는 사실을 다시 정리해보자. 영국은 물대포가 의학적으로 인체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국가다. 2000년대 초 북아일랜드에서 물대포를 사용하기 위해 내무부가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 물대포의 의학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맡겨 2004년에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그 후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강한 보고서가 2013년에 제출되었다. 2013년 보고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물대포 사용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2013년 보고서는 물대포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BBC에 의하면, 2012년 탄자니아에서 한 명이 물대포에 의해 사망하고 2013년 터키에서도 물대포를 맞고 넘어진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물대포의 위력에 대해서 경찰을 비롯해 각종 언론사, 극우단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완전히 상반되게 나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실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경찰이 백남기 농민을 향해 분사했다고 이야기한 수압 14~15바(bar)라는 조건만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물대포의 위력은 수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2004년 보고서에 의하면 물대포가 야기하는 부상의 정도는 운동량에 비례한다. 고압수의 운동량을 뜻하는 단위인 세정력(Cleaning Units)은 수압과 토출된 물의 양을 곱한 값에 비례한다. 즉, 같은 수압이라도 물이 얼마나 쏟아지느냐에 따라 그 충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2013년 보고서에 의하면 상용화된 물대포의 토출량은 초당 20리터다. 15바에 맞춰서 세정력을 구해보면 셀프세차장 고압수의 10배에 해당하는 위력이다. 결국 실제 시위진압용으로 사용되는 물대포는 수압과 토출되는 물의 양을 모두 고려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은 과연 자율적인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은 진단서 논란이었다. 백선하 교수의 것은 명백히 의사협회의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을 어겼다. 서울대 의대생과 동문, 전국의 의대생이 이를 지적하는 성명서를 냈고, 결국 의사협회까지 사망진단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권력의 편에 서지 말고, 오직 환자의 편에 서라고 요구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는 현대의학이 멈춰선 곳, 현대의학의 모순을 보여준다. 평소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의학적 판단과 의료행위에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동한다고 체감하기는 어렵다.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해 환자들의 개인적 질병을 해결한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분석의 틀을 개별적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복수의 신체들, 그리고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차원까지 확장해보자. 그러면 의학은 지배계급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고 재구성해온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정당화 기능

모든 질병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생겨난다. 예컨대 결핵균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발병하는 것은 그중 10퍼센트에 불과한데, 발병에 가장 중요한 인자는 영양부족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결핵에 잘 걸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핵에 걸렸을 때는 약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도 해결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결핵을 치료할 때 가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는 자신의 질병이 가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학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분명히 질병의 사회적 요인을 말하던 의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체제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되었다. 지배계급은 질병의 책임을 전부 병원체(예컨대 결핵균)에만 돌리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학교육을 개혁한 플렉스너는 당시 과학적이지 않다고 간주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과학적 의학 교육만을 남겼다. 배제당한 것들 중에는 질병의 사회적 요인도 있었다.

결국 오늘날의 현대의학은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 학문이다. 자체의 고유한 논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논리의 형성조차 의학을 둘러싼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미국의 광부들은 탄광에서 일하면 폐가 망가진다고 오래 전부터 말해왔지만, 의학계는 1960년대까지 탄광 노동으로 인한 진폐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의사들은 의학적 증거가 은폐되었거나 나중에 드러날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균학이나 약리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거나 질병 치료에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핵약을 제대로 복용한다면 결핵은 분명 낫는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병이 가난이 아니라 결핵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환자의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결핵이 재발하거나 다른 형태의 감염성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반쪽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치료 중심·생물학적 설명 중심의 현대의학은 질병을 발생시킨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병에 걸린 개인의 고통을 해결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민중과 함께 한걸음 더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사망진단서가 틀렸다’라는 자신의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출발했지만, 한 가지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숨 막힐 듯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인 의료 사회에서 당당히 발언하기 위한 용기다.

그렇게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부검은 중단되었으나, 역사는 더욱 전진하길 요구하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는 자본과 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의학적 합리성과 양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자. 지금 여기의 대중운동과 함께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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