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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 제22호

진상조사로 드러난 구의역 참사의 이면

사회적 사고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열아홉 생일 하루 전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은 구의역 승강장
 
지난 5월 28일 구의역 승강장안전문을 고치다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열아홉 하청노동자의 참사는 많은 이들을 ‘노동안전’ 문제에 귀 기울이게 했다.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고, 슬퍼했으며, 추모의 발걸음으로 연대했다.

승강장안전문을 수리하던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구의역 사고에서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분노가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사고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까지 도출했다.

합의에 따라 노동조합,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 그리고 서울시가 참여하는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출범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노·사·민·정이 모두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의 구성은 국내에선 첫 사례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는 기본으로 하고, 서울시 지하철 안전 전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지하철 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서울시와 운영기관에 권고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은 지난 8월 25일, ‘서울시 지하철 승강장안전문에 관한 진상조사결과’와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안전은 사회적으로 구축된다

전통적인 안전 패러다임은 기계 설비의 자동화를 통해 인적 오류와 사고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안전 시스템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작업장 내에서 노동과정을 둘러싸고 형성된 규칙과 문화만이 아니라, 해당 산업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행정 및 법령 등의 사회적 요소 등 다양한 것들이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 대다수 산업은 기술적 영역과 사회적 요소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진상조사단은 ‘안전은 사회적으로 구축된다’는 것을 안전에 대한 기본 전제로 두었다. 심층적 원인(배후 요인)과 표면적 원인 등 사고 원인을 전체 조직 시스템 내에서 단계별로 구별하고, 입체적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제임스 리즌의 ‘조직 사고’라는 개념을 토대로 진상 규명을 진행했다.
 
리즌의 '조직 사고' 개념도
 

비용 줄이려 제거한 마지막 비상구

지하철 승강장안전문 설치와 운영과정에서 안전과 관련된 기술은 승객과 작업자 안전 모두를 포괄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관제에서 승강장안전문 상태를 인지할 수 없고 열차 자동멈춤 기능을 가진 시스템도 없는’ 상태로 설계되어 근본적인 안전의 한계를 가진 채 승강장안전문 설치가 진행됐다. 심지어 기술표준도 없었다.

이처럼 무리한 안전문 설치 결정으로 인해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를 합쳐 거의 1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승인됐다. 민간 사업자에게 독점적 광고 이윤을 확보해주는 대신, 기술 개발의 책임을 떠넘기고, 공공성도 포기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광고판 설치를 위한 승강장안전문의 고정문은 정비 작업자를 고려한 인간공학적 설계를 포기하고, 안전문 안쪽에서 작업하던 정비원이 열차가 진입하는 위험한 순간에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마저 없앴다. 

이처럼 최저가 낙찰은 부실시공을 초래하였고, 이를 무마시키고 출혈을 줄이기 위해 전동차 출입문과 승강장안전문 사이 10센티미터 이상 공간 두는 규정 등 규제들을 임의로 삭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설치 후 시운전 중 현차시험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운전 절차를 누락했다. 이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9년 말까지 전 역사에 승강장안전문 설치를 완료하겠다’는 공약 이행을 위해 완공 시점을 무리하게 1년 앞당긴 결과였다. 비용 절감과 민간자본 이윤 보장이라는 이해관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마저 얽혀 승강장안전문의 위험성을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장치마저 무시한 셈이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승강장안전문 설치 완료 후 4개월 간 발생한 사고 및 장애건수가 1812건에 이르렀고, 744건의 부실시공이 확인됐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승강장안전문에선 한 해 3000~4000건에 이르는 장애가 발생하고 있고, 승객과 작업자의 사망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위령표 ⓒ구의역 시민대책위


위험을 조장하는 운영

서울메트로가 2008년과 2011년 단행한 외주화는 인력 감축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외주화와 인력 감축은 당시 중앙정부, 서울시장, 서울메트로 사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공기업 선전화 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비용 절감이 공기업의 1순위 목표가 되면서, 인력 감축 및 외주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분사화 과정에서 승강장안전문의 유지·보수를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 바로 고인이 일하던 은성PSD다.

2011년 서울메트로는 인력 감축을 위해 직원들에게 은성PSD로의 자발적 전직을 유도했다. 전적자들에게 일정 수준의 임금과 고용을 보장해 주는 조건을 전제해버리니 은성PSD가 자체 채용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또, 승강장안전문의 유지·보수 인력은 승강장안전문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지하철 시스템 전반에 걸쳐 학습이 되어 있어야 했지만, 은성PSD는 그와 같은 종합적 교육·훈련을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도시철도공사는 이런 외주화를 진행하진 않았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신호사업소 노동자가 승강장안전문 유지보수 업무까지 겸하게 했다. 기존 업무에 새 업무가 추가되니, 신호사업소 노동자들의 피로도는 극심한 상태에 다다랐다. 게다가 안전문 업무로 인해 신호기 점검 업무가 소홀해지는 결과를 가져와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킬 수 없는 안전수칙

외주화로 운영되는 승강장안전문 업무는 필연적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외주화 자체가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초기 인력 산정도 휴무나 장애 발생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2인1조 작업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승강장안전문 장애 처리 과정에서 하청노동자가 관제에 직접 연락을 못하고 전자운영실을 통해 몇 단계를 거쳐서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불법파견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선로 측 작업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최대 9단계의 보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승인 없이 작업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작업자들은 장애 통보 후 1시간 이내 미도착시 지연배상금, 동일 장애 3회 발생시 배상금 지급 등 온갖 독소조항 및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한 채 선로 측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구의역 시민대책위
 

대책을 당장 이행하라

지난 10월 19일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났다. 김포공항역 승강장안전문에 승객이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부실시공, 승강장안전문과 열차 진입 및 출발 시스템, 안전인력 및 1인 승무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 중론이다.

참담하게도 이런 문제는 진상조사단이 부실시공 승강장안전문 전면 교체, 고정문 철거, 안전인력 보강 등의 대책으로 제시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여러 대책들이 ‘예산확보가 어렵다’라는 이유로 중장기 대책으로 미루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노·사·민·정이 모두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의 구성에 합의하는 등 구의역 사고에 대해 발 빠른 대응과 전향적인 횡보를 보인 바 있다. 이것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관료적이고 미흡하기 짝이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서울시는 더 이상의 승강장안전문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안전을 위한 예산 확보와 집행을 최우선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물론 이는 현재 박근혜 정부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노동조합의 투쟁과 시민들의 연대가 결정적이다. 하청노동자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과정에서 확인했듯, 안전을 위한 시민들의 요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열아홉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진정으로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고가 반복되는 지하철을 안전한 일터이자 대중교통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안전·시민안전’을 위한 사회운동이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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