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사회운동
  • 2016/11 제22호

낙태는 죄가 아닌 여성의 권리

정부의 낙태 단속 강화에 분노한 여성들 거리에 서다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지금 여기 페미니즘》 저자
10월 15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낙태 단속 강화에 항의하는 집회의 참가자들
 
정부가 의료인의 비도덕적 의료 행위에 임신 중절 수술을 포함시키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 의료법은 비도덕적 의료 행위를 한 의료인에게 1개월의 자격 정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그 유형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개정령은 비도덕적 의료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처벌 수준을 12개월 자격 정지까지 강화했다. 최근 빈번히 이슈가 된 환자 성추행, 무허가 의료인 수술, 1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C형 간염 발발 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을 위반하여 임신 중절 수술을 한 경우”를 포함시켰다.

보건복지부가 임신 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의료 행위에 은근슬쩍 끼워 넣으면서 드러난 사실은 두 가지다. 정부가 여성의 몸을 도구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과, 낙태 단속이 강화되더라도 여성들이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점이다. 

국가는 여성의 출산을 줄이거나 늘리라고 강요해 왔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가족계획 사업 시기에는 인구 억제를 위해 낙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출산이 심화되자 태도를 바꿔 경제성장을 위해 출산을 해야 한다는 담론을 퍼뜨리고 호시탐탐 낙태 단속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낙태 단속의 명분으로 생명윤리를 운운하는데, 스스로가 정책에 따라 여성의 몸이나 생명에 관한 윤리를 동원하고 취사 선택해왔을 뿐이라는 측면에서 기만적이다. 또한 정부는 여성들을 얕잡아 봤다. 여성들이 자신의 성경험이나 낙태 경험을 드러내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입법 예고 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의 자궁은 여성의 것!’을 외치며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의 삶, 여성의 권리

낙태 처벌은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다.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누군가 아이를 길러야 한다. 아이를 누구와 함께 키울 것인지, 양육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여성은 일생일대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의 낙태라는 선택을 임신 상태를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으로 국한해 봐서는 안 된다. 성관계에서부터 임신·출산과 그 이후의 양육 과정 전반을 여성의 재생산 과정으로 보고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낙태가 있는 것이다. 성관계에서 평등하고 여성이 원하는 피임 방식을 요구할 수 있는지, 학업이나 직업 활동이 임신·출산으로 중단되지 않을 수 있는지, 비혼 여성의 출산이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지,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충분한지 등의 고려가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표가 될 것이다.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요건들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을 강요하는 것이다. 
 

낙태죄? 낙태권리!

한국에서 낙태는 형법상의 죄로 처벌되고, 모자보건법에서 허용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인구 조절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허용해온 역사가 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낙태를 단속해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법으로는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낙태 시술 의료인 처벌 시도처럼 단속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함께 낙태 단속을 강화해 낙태시술비가 급등하고 낙태약의 음성적 거래가 증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낙태죄 자체를 폐기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에 따라 언제든지 단속 강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출산 선택권보다 우선한다는 이유다. 이러한 관점은 태아와 여성을 대립적인 관계라 설정하고,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를 출산결정권으로 축소시키고 있어 문제가 있다. 

정부를 포함한 낙태죄 옹호론자들은 낙태를 비범죄화하면 낙태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낙태가 합법적인 네덜란드보다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아일랜드가 낙태율이 높다. 또한 낙태를 규제하던 통일 전 독일의 낙태율은 1987년에 23.2퍼센트였으나, 통일 후 낙태가 비범죄화되고는 7.6퍼센트로 낮아졌다. 이처럼 비범죄화가 낙태율을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뿐만 아니라 낙태 처벌은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출산을 택하지 않는 여성들은 낙태 시술을 하기 위해 더욱 음성화된 경로를 찾아 위험한 시술을 감수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술 비용 마련이 어려운 계층의 여성인 경우 불법 시술과 약물 오용으로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루마니아에서는 낙태가 불법화되기 시작한 1965년부터 1984년까지 출산 10만 건 당 모성사망률이 21건에서 128건으로 증가했다. 한편 미국에선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1970~76년 사이 낙태 5000건당 사망이 30건에서 5건으로 줄었다.
 


통제와 비난은 이제 그만!

저출산은 ‘출산을 기피하는 여자들’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에 아이를 낳고 기를 여건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충분한 보육시설 마련 및 지원, 경력단절을 축소시키고 여성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노력, 청년들이 안정적 수입과 고용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방안 모색 등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정부에게 손쉬운 방패막이가 낙태 단속이다. 낙태가 쟁점이 되는 순간 국가의 책임과 여성의 현실은 지워지고 오로지 생명윤리를 저버린 매정한 여자들, 몸을 함부로 굴리려는 뻔뻔한 여자들이자 잘난 척 하느라 애도 안 낳는 이기적인 여자들이라는 비난만 부각된다.

하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동네북’이 되는 것은 사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일부 남성들이 사회적 좌절감을 여성에 대한 원망으로 쏟아내는 여성혐오에 대해 번지수를 잘못 찾았음을 일깨워줬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기를 사회적 여건 마련에는 무능하면서 애 안 낳는 여자들을 다잡겠다는 정부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혐오와 여성 대상 범죄에 맞섰던 여성들은 정부의 임신 중절 처벌 강화에 반대하여 즉각적인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또한 멀리 ‘검은 시위’로 낙태금지 법안에 저항하는 폴란드 여성들의 운동이 한국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여세를 몰아 낙태 단속을 강화하려는 정부를 저지하자. 그리고 낙태를 죄로 간주하는 것에 반대하고 여성의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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