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여성
- 2016/11 제22호
여성억압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2세대 페미니즘의 급진적인 실천과 질문들
여성억압을 쓰레기통에
광장 가운데 드럼통이 하나 놓여 있다. 드럼통에는 ‘자유를 위한 쓰레기통’이라는 이름이 휘갈겨 쓰여 있다. 여성들은 브래지어, 거들, 하이힐, 붙이는 속눈썹 등을 드럼통에 집어 던지며 환호했다.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열리던 날, 대회장 앞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회를 가축 품평회에 비유하며 미스 아메리카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여성 이미지에 맞설 것을 선언했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이다. 당시 여성들은 사적인 문제라 여겨지던 것들을 탁 트인 광장으로 끄집어내어 마음껏 뒤집고 조롱했다. 페미니스트 모임들은 여성의 성욕, 육체, 자위에 대해 탐구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 했다. 동시에 여성의 성적 해방을 억압하는 힘에 맞서 싸웠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광고를 문제시하거나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캠페인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과 서유럽,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곳곳에서 진행됐다.
신좌파 단체 뛰쳐나온 여성들
1950년대는 풍요의 시대였고 미국은 그 풍요의 중심에 있었다. 교외의 주택에 사는 행복한 핵가족의 이미지가 미국을 지배했다. 풍요와 함께 여성에 대한 대학교육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학생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으며, 핵가족을 완성하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해내기를 요구받았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이러한 여성들, 즉 백인 중산층 가정주부들이 느끼는 공허감을 조명했다. 1963년에 출간된 이 책은 300만 부가 넘게 팔릴 정도로 큰 호응을 얻으며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물결을 예고했다. “남편을 찾아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 이외에 아무런 출구를 갖지 못한 여성들이 “이름 없는 문제들”을 겪고 있으며, 여성의 신비를 칭송하는 문화가 여성들을 전통적인 성 역할에 묶여있게 만든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었다.
1960년대에 대학에 다니거나 대도시에서 독신으로 생활하던 젊은 여성들은 《여성의 신비》에 등장하는 윗세대 여성들과는 다르게 살기를 원했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도 직업적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나, 젊은 여성들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을 가지고 행동에 나섰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운동, 반전운동이 한창이었고 대학생을 구성원으로 하는 신좌파 단체들이 실천을 주도했다.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신좌파 학생운동 단체에서 지도자는 항상 남성이었으며, 여성들에게는 집회 계획 작성, 음식 준비, 청소 등의 업무만이 주어졌다. 주요 민권운동 단체인 비폭력학생위원회 소속의 여성들은 단체 내 여성의 보조적 지위를 문제 삼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단체의 의장은 민권운동 단체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엎드려 있는 것”이라는 답변을 농담이랍시고 해서 여성들을 분노하게 했다. 또 다른 신좌파 학생 단체의 지도부는 “여성차별 문제는 흑인, 소수민족, 제3세계 인민들의 문제보다는 덜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여성들은 1967년에 ‘뉴욕급진주의여성(NYRW)’이라는 단체를 독자적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반대 시위를 기획하고, 공동육아센터 ‘보육 해방’을 설립했다.
1969년에 NYRW는 이념 논쟁을 겪으며 사라졌고 ‛위치(WITCH)’와 ‛레드스타킹즈’라는 두 단체가 그 뒤를 이었다. 로빈 모건 등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했던 위치는 여성억압을 구조적 문제라 보고 정치적인 투쟁에 보다 주안점을 두었다. 반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캐롤 하니쉬 등이 주도한 레드스타킹즈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의 개선을 중시했다.
자기해방 통한 사회변혁의 꿈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은 신좌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신좌파의 급진주의적 이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의 경험이 사회 구조를 드러낸다고 보고 자기해방을 강조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들 대부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보았는데, 공동체와 가족 내에서 대안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여성의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실천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회 변혁이 가능하리라 인식했다. 이들이 보기에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제도권 내 로비 활동에만 치중하며 여성들의 현실에는 무관심했다.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에는 급진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여성억압이 몇몇 법제도를 바꾸어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 체제 전반의 문제이며, 인류 역사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해 온 뿌리 깊은 모순이라고 인식했다. 여성 문제를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 또는 자본주의를 변혁하면 자연히 사라질 문제로 보는 것에 저항한 것이다. 이로부터 남성중심의 체제를 일컫는 가부장제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기준의 성에 대한 통념을 거부하고 여성의 성욕을 긍정하는 성적 해방을 모색했다.
낙태 문제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분할에 도전하는 새로운 이슈였다. 1960년대에 안전한 낙태 기술과 피임약이 개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법은 낙태 수술을 금지했으며, 피임약도 결혼한 여성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불법 낙태를 감행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69년 레드스타킹즈는 뉴욕에서 ‘낙태 공개발언’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 참여한 300여 명의 여성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불법 낙태를 했던 경험, 출산 후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던 경험 등을 증언했다. 이날 이후 미국 전역에서 유사한 행사가 이어졌고, 이는 1973년 미국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배경이 되었다.
남성 성욕의 폭력성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억압의 생물학적·심리학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이성애에 기반을 둔 사랑·결혼·출산이 여성억압의 중요한 제도이므로 인공자궁에서 태아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남성이 여성을 희생시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한다고 주장한 타이-그레이스 아트킨슨이 대표적이다.
여성억압이 작동하는 방식이 출산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 정치·경제적인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상과 심리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은 2세대 페미니즘의 중요한 통찰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자 이러한 주장은 더 발전되어 여성해방만이 유일한 혁명이라 주장하고, 남성의 성욕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 간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외부 조건의 변화보다는 여성들만의 대안적 공동체와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문화주의적 페미니즘이 주류가 되었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레즈비언이 남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고, 그래서 창조적인 여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주의적 페미니즘을 이끌었다.
이제 페미니즘 운동은 성적 해방의 가능성보다는 이성애적 관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성폭력이나 포르노그래피에 반대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 시기에는 신보수주의자들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본격화되기도 했는데, 그들의 반포르노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 내에 존재하던 차이를 부각시켰다.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포르노그래피를 법적으로 금지할 것인지, 여성의 성욕과 환상을 개발할 것인지 입장이 갈렸기 때문이다.
남은 질문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전복적인 분석과 실천으로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이들의 요구는 남성과 동등한 공적 권리를 갖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기존의 법·제도·학문에서는 포착되지 않던,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여성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사회를 바꾸고자 했다는 점에서 1세대 페미니즘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문제를 건드렸다.
그러나 당시의 실천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그것은 성폭력·포르노그래피와 같은 폭력적인 양태의 성적 욕망이 현실 속의 이성애적 관계와 명확히 단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 욕망, 가족 등의 문제를 계급적인 갈등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정치적 행동보다는 문화주의적인 해법이 강조되었다. 이성애 관계에서 철수하고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거나, 사회구조의 변화가 아닌 여성 스스로의 의식의 변화만을 강조하면서, 2세대 페미니즘은 대다수 여성의 삶과 멀어져갔다.
그러나 2세대 페미니즘이 제기했던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수주의의 득세와 함께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시 힘을 얻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나 성폭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늘어나는 것 같다. 그렇기에 2세대 페미니즘의 고민을 되짚어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여성해방과 사회변혁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자유롭고 평등한 이성애적 관계란 가능한가? 여성의 일상 구석구석을 위협하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환멸에 빠지지 않고, 나와 우리를 바꾸어 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은 여전히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여성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