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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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 제22호

서울대병원 간호사의 생애 첫 파업기

  • 최원영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대의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진나라 말기 중국 최초의 농민 반란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이 한 말이다. 나라 변방으로 부역을 가던 둘은, 물난리가 나자 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날짜를 어기면 이유불문 사형이었다. 옴짝달싹 못 하게 몰아세우니 이대로는 도착해도 죽고 도망가다 잡혀도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이들은 봉기를 결의했다.

"민중은 개돼지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어찌 내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얼마 전 대한민국 교육부 2급 공무원인 나향욱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열아홉 청년의 죽음에 대해 한 말이다.

믿기지 않는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2000년 전의 외침은 오늘 공공연하게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대병원 간호사다. 9월 27일부터 병원성과급제 반대를 외치며 18일간 파업에 참가했다. 내 생애 첫 파업이었다. 파업을 이렇게 길게 할 줄도 모르고 친구와 스페인 여행 티켓을 끊어놨었는데 정말 극적이게도 출발 나흘 전에 노사 간 합의가 타결됐다. 불법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지 말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자신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정부 지침이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던 서창석 병원장은 내년 말까지 성과연봉제 도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파업이 끝나고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나는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

경유지인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비행기 안. 여행에 함께한 친구가 자기 자리는 모니터가 안 나온다고 했다. 둘 다 ‘덤앤더머’처럼 터치스크린도 아닌 스크린을 여기저기 눌러대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좌석 오른쪽의 리모컨을 가리키며 녹색 버튼을 누르라고 한국말로 친절히 알려주었다.

“한국인이세요?” 통성명을 하게 됐고, 가벼운 대화가 시작됐다. 그녀는 바르셀로나로 일하러 가는 중이었다. 흔한 미국이나 중국도 아니고 무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일하러 가다니!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했다. 얼굴이 앳되어 보여서 ‘학생이어서 방학 때 알바도 하고 여행도 하려나보다’하고 어림짐작했다. 우리 땐 저런 거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도 하는 구나 싶어 완전 부럽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실은 나도 서른한 살 밖에 안 먹었다.)

그녀는 스물네 살로, 학생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스페인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려고 생각 중이고, 사전 정보조사도 할 겸 경험삼아 가는 거라고 했다. 벌써 게스트하우스를 차릴 생각을 하다니! ‘말로만 듣던 금수저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업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며 2~3개월치 월세 정도만 보증금으로 내고, 현지에서 방을 얻을 돈만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영어나 스페인어를 잘 못하니 한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할 계획인데 문제는 이게 불법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웃의 신고만 조심하면 된다고.

그 이야길 하고 나서 괜히 멋쩍었는지 “언니들 같은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여자들은 졸업하고 나서 취직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너무 부러워요”라고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바르셀로나에 실컷 머물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스물넷 청년의 “제일 큰 문제는 불법이라는 거죠”라는 말이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내 생애 첫 파업’ 이야기를 쓰려 했는데 왜 이런 얘기가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 파업 얘기를 쓰려고 하는데 문득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바르셀로나에 일하러 간다는 그녀가 자꾸 떠오른다.
 
 

나, 왜 파업했더라?

나는 왜 파업에 참가한 걸까? 사실 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파업을 불과 며칠 앞두고 노조 사무장과 통화를 했다. 사무장이 “파업 때 어떡하실 거냐”며, 병동에서 몇 명이나 나올 것 같냐고 물었을때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나는 중환자실과 혈액투석실처럼 ‘필수유지업무’(노조법상 철도, 병원, 방위산업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 파업할 경우 반드시 근무를 유지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할당된 부서에서만 일했었기 때문에, 병동에서 누군가 파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2013년부터 매년 파업 투쟁을 했다.) 

앞서 얘기한 진승과 오광도 출발할 때부터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진 않았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람들은 노조 대의원대회 때마다 파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오고 가는 이야기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심정이랄까? 아무튼 정확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파업에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파업 하루 전날 인공신장실 조합원 간담회였던 것 같다. 파업 얘기가 나오자, 나는 “그냥 저 포함해서 2~3명 정도만 나가면…” 하는 소심한 발언을 했었다. 그런데 오래 전 다른 병동에서 파업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신 몇몇 ‘올드’선생님들이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나갈 거면 다 같이 나가야지~” 이렇게 추임새를 넣어주셔서 엉겁결에 일이 커졌다. 그래서 서울대병원 투석실이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다 같이 파업 집회에 나갔다.

우리 병동은 필수유지근무가 70퍼센트로 정해져 있어 파업의 영향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로 파업조를 짰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했던가. 막상 저지르고 나니 별것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한 목소리를 내고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고 토닥여주는 그런 것, 병동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소속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어서 그냥 그 순간들이 좋았다.

매일 아침 파업조 선생님들이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챙겨 오고, 필수유지업무 근무조인 선생님들이 사주는 커피나 간식들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근무 중에는 절대 꿈 꿀 수 없었던 식사 후 산책, 등나무 의자에서 동료들과 도시락 먹기 등 장시간 노동과 무한 교대 근무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이 평소 할 수 없는 그런 사소한 일들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또 파업 기간에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에 대한 강의도 듣고,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스스로 좀 더 확고한 의지가 생겼다.
 

 

사소한 선택이 지닌 작지만 큰 힘

파업을 하면서 내 나름 성과급제에 대한 정리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제도, 성과와 경쟁 같은 단어들을 좋아한다. 그것이 뭔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경쟁이나 효율은 우리를 더 숨차고 바쁘고, 고단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내 옆자리의 동료와 경쟁한다는 것은 노동의 보람 따위와는 거리가 멀뿐더러 그리 유쾌한 일도 아니다.

성과연봉제가 노동자에게 끼칠 영향은 정말 막대하다. 아주아주 큰 일이다! 그냥 단순한 월급 체계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아주 저 바닥부터 쑤석거려서 엉망으로 헤집어 놓을 수밖에 없다. 마치 비정규직 제도가 비행기에서 만난 스물넷 여성으로 하여금 ‘스페인에서의 불법 사업’을 구상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었더라면 그녀가 여행이 아닌 그런 사업을 하러 스페인을 찾았을까?

파업을 하면서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개인의 문제가 좀 더 큰 외부적 요인, 제도나 시스템이 유발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잘못된 제도는 결국 우리 삶마저 비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힘은 없을 게다. 그러나 내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사소한 선택들에서 시작된다.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선택이 모이고, 서울대병원 1층 로비로 흘러들어 우리는 성과급제를 막아냈다. 파업이라는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내가 가진 작은 힘을 발견한 것 같다. 

작은 힘이지만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 진승과 오광이 바로 여기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 파우 병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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