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6/10 제21호

당당하게 싸워 반드시 돌아간다

케이블 비정규직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

  • 황수진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상황실장
노동조합 가입하고 많은 일을 겪어보았는데 
이번 싸움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꼭 이겨야 노조도 더 
튼튼해지고 저희 같은 해고자도 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센터, 동료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 9월 1일 투쟁문화제에서, 광명시흥지역 해고자 권석천 발언
 
노숙농성장의 ‘필수템’이 있다. 파렛트나 스티로폼은 밤마다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하기 위한 기본 아이템이다. 여기에 뜨거운 햇빛과 비바람을 막아줄 천막, 포근한 침낭과 갖가지 보온 용품을 더하면 그런대로 아늑한 농성장이 완성된다. 

티브로드 해고자들의 국회 앞 농성장에는 이런 게 없다. 집회 신고가 불가한 구역(집시법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반경 100미터 이내에서는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이라는 이유로 사소한 물품도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기 때문이다. 담요마저 ‘불법 시위 용품’이라고 뺏어가는 통에 조촐한 살림살이만 갖춘 채 국회의사당역 출구의 자그마한 처마를 지붕 삼아 생활하고 있다. 한낮의 땡볕도, 몰아치는 비바람도 온 몸으로 받아내고 한반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지진도 맨땅에서 느끼면서.

티브로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2013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꿔냈다. 튼튼한 조직력과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 회사 측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파기하며 싸움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이번 해고 사태가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본격적 공격이라고 보고 있다.

티브로드는 전국 50여 개의 업체와 매년 도급 계약을 맺는다. 해고는 올해 초 계약 만료 시점에 발생했다. 한빛북부센터(광명시흥지역)가 폐업을 했고, 인근 센터들에 지역을 분할하여 채용 공고를 냈다. 조합원들이 모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업체는 노동조합 핵심 간부들을 배제하고 선별 채용했다. 전주기술센터는 업체 교체 과정에서 비조합원과 신규 인력만 채용하고 조합원들을 고용에서 배제했다. 두 센터는 전국에서 노조 조직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굴지의 대기업 마크를 달고 일하는 케이블방송통신, 삼성전자서비스 외주·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투쟁한지 4년여가 흘렀다. ‘진짜 사용자’인 원청은 조직률이 높은 업체를 골라 폐업하거나 교체하면서 손쉽게 노조를 탄압해왔다. 찍히면 쫓아낸다는 무언의 협박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위협한다. 

노동조합이 쫓겨난 자리엔 사용자들의 탐욕만 남는다. 전주센터에서 신규채용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고 초단기 기간제, 개인하도급 계약이 판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해고된 조합원들이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하청사장은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원청 티브로드는 ‘우리 직원 아니다’라고 외면하는 사이 200일이 흘렀다. 절박한 마음으로 국회 앞에서 단식과 노숙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장기화된 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발 벗고 나섰다. 진보정당들과 그전까지는 손을 놓고 있던 야당 정치인들도 찾아와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전방위 압박에 티브로드도 움찔한 모양새다. 

농성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해고노동자들의 지친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 추석 연휴에도 차례음식이며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농성장은 외롭지 않았다. 비록 노숙농성 ‘필수템’들은 없어도, 따뜻한 연대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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