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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 제21호

활동가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담심리 전문가 라다 인터뷰

  • 인터뷰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 만난이 라다 한국성폭력상담 소 책임상담원
심리적 문제나 정신질환의 근원 중 하나는 우리의 감정을 회피하고 억압하는 것이라 한다. 특히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힘듦’은 오래 곪다 터지는 경우가 많다. 엄격한 정치적·도덕적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힘들다는 얘기를 할 곳도 마땅치 않다. 비슷한 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동료 활동가에게 투정부리는 것도 내키지 않고, 가족에게 내색이라도 했다가는 ‘그러니까 때려 치고 돈이나 벌어 오라’는 잔소리가 돌아오기 십상이다. 직장인 친구들이 토로하는 악질 상사, 실적 강요, 무의미한 업 무의 반복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지만, 그게 뭔지 명확히 규명 되지도 않는다.
 
8월 23일, 활동가의 정신장애 와 심리적 문제를 다룬 집담회가 열렸다. ‘마음 아파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이 행사는 1부 전문가 강연, 2부 당사자와 주변인의 증언, 3부 자유토론 순서로 진행됐다.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라는 단체에서 주최했지만, 참가자는 몇몇 단체로 한정되지 않고 다양했다. 행사에서 1부 강연을 진행했던 라다 씨는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 책임상담원이자 여성주의상담연구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활동가의 심리적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활동가 상담을 주로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 노동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고, 활동가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상담심리 공부를 하게 됐다.
 
몇 주 뒤 인터뷰를 위해 라다 씨를 만났다. 강연 때 들었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딱 떨어지는 해법 같은 게 없는 문제라면, 문제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을 나누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유미   이런 주제로 인터뷰 기사를 써보겠다고 하니까 다른 활동가들이 걱정하더라고요.
 
라다   그래요? 어떤 걱정이 있던가요?
 
유미   활동가들이 힘든 데엔 우리 시대 변혁운동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 깔려 있는 건데 뾰족한 해법을 낼 수 있겠냐, 이런 게 하나 있고요. 심리학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을 텐데 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가 되지 않겠냐는 거였어요.
 
라다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유미   그런데 저는 그날 ‘마음 아파도 괜찮아’ 행사에 참가하고 좋았거든요. 활동가들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좀 위안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강연자가 활동가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계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본인이 노동현장에서 10년, 산별노조 활동가로 10년 정도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력을 조금 소개해주시겠어요?
 
라다   상업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8년도에 증권회사에 취업했어요. 원래 노조가 있던 회사였는데, 제가 스물일곱 살에 노조위원장이 됐어요. 당시에 고졸, 여자, 20대 사원이 위원장이 된 경우는 거의 없었죠. 그만큼 노동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이라고 지금은 없어진 비합법조직 활동도 같이 하고 있었거든요. 김영삼 정권 말기에 여러 조직이 털리면서 저도 구속이 됐어요.
 
구속되었다 나와서는 사무금융노조 내 증권산별노조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어요. 그러다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과 교섭을 맡게 됐어요. 용역·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굉장히 공포스러운 상황을 많이 겪은 투쟁이었어요.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있기도 했고요. 처음엔 정규직도 연대했지만 시간이 길어지며 비관론인 의견이 많이 나왔죠.
 
 
그러면서 투쟁의 책임자이던 증권 노조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이 모두 우울증을 겪었어요. 조합원들도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많이 안 좋았고요. 그때 처음으로 활동가들의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목표를 쟁취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우리 내의 갈등이나 비방으로 겪는 고통이 커지면서 회의감도 들었고요.
 
개인적으론 제가 코스콤 투쟁 1년 반 동안 한 달에 한 번만 집에 가는 식으로 살았는데, 우리 아이가 심리 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유미   아이가 그때 몇 살이었나요?
 
라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우리 아이도 그렇고, 나의 가장 소중했던 동지들,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 모두가 불안하고 우울한 채로 1년 반을 지낸 거예요. 그 당시 투쟁의 목표는 정규직이 되는거였잖아요. 이렇게 해서 목표를 달성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게 있지 않나?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활동가들은 노동운동판을 읽는다든지 논리적으로 뭘 주장한다든지 하는 건 잘 해요. 그런데 그게 동지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어떤지,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세심하게 성찰하지 않고 지속되는 투쟁이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거죠.
 
코스콤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서른아홉 살에 노동운동을 그만뒀어요. 그리고 내가 부딪힌 어려움을 심리상담을 공부해서 풀어보고 싶었어요.
 
 
유미   사회운동, 노동운동 활동가의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이 10년 전과 비교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으시나요?
 
라다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심리상담센터인 ‘와락’, 조계종 ‘도반’, 향린교회 ‘길목’처럼 활동가의 심리적 문제를 인지하고 치유 공간이 생기는 건 반가운 일이죠. 민주노총 교육문화원에도 노동자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생겼더라고요. 그렇지만 치유 프로그램이 생기는 것에 비해, 활동가들이 왜 심리적 문제를 겪는가에 대한 토론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미   전업활동가의 저임금이나 장시간 노동에 대한 얘기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되는 것 같아요. 치열한 투쟁을 했을 때 남는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도 생겼고요.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일상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었죠.
 
라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미   활동가 집단이 실제로 일반 노동자 집단에 비해 정신질환의 고위험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동조합 활동가의 정신건강>이라는 박진욱 씨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 인구의 우울증 평생유병률이 남성 1.2퍼센트, 여성 6.0퍼센트인 것에 비해, 노동조합 활동가는 남성 19.1퍼센트, 여성 27.9퍼센 트로 놀랄 만큼 높은데요. 어떻게 보면 이건 비슷한 경제적 조건의 집단과 비교한 게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변수 말고 다른 변수가 작용했다고 말할 근거는 아닐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수치를 비교한 연구가 또 있나요?
 
라다   활동가 정신질환 유병률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는 박진욱 씨의 연구 밖에는 없어요. 통계 자료가 그 이상으로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 고위험군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실제로 활동가들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해요. 활동가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는 동기가 전혀 다르잖아요. 경제적이거나 외부적인 보상 때문에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적인 동인, 선의,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 속에 활동가의 길을 가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내면적인 보상이 충족되지 않거나 그와 관련한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겪을 때 더욱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건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실존심리학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실존심리학에서는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고, 지적으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 이 겪는 ‘실존적 좌절’로 인한 신경증은 심리적인 신경증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 공격성, 중독증 등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인데, 저는 이 ‘실존적 좌절’, ‘의미에의 좌절’이 활동가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미   ‘의미에의 좌절’이라는 개념은, 전업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이후 운동의 좌절을 겪으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요.
 
상담심리 전문가 라다 씨
 
라다   운동의 성과라는 건 일반 기업에서처럼 물건이 얼마나 팔렸다는 식으로 수치화되지 않아요. 추상적이고, 끝이 잘 안 보이는 일인데다 업무 영역도 광범위하잖아요. 이런 업무를 수행하려면 자기 통제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게 심리적으로 굉장한 긴장과 압박을 주는 노동의 형태예요. 그로 인한 고통이 있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죠. 자기 통제의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감정을 억압하는 거예요. 투쟁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내가 뭘 해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돼요. 어찌 보면 우울이나 무기력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기보다는 강인하게 견뎌내는 사람이 훌륭한 활동가라고 여겨지잖아요.
 
유미   강연에서 활동가들이 많이 겪는 심리적 문제를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알코올 관련 문제,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로 설명해주셨잖아요. 왜 그렇게 다섯 가지를 꼽게 되었나요?
 
라다   우울증은 지금까지 얘기한 대로,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되기 어려운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 에 활동가들이 우울감을 많이 경험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른 것들은 기본적으로 자기통제, 자기감정에 대한 억압이라는 측면과 관련이 있어요. 활동가들은 일반인들보다 공포에 많이 노출돼요. 격한 충돌이 있는 집회에 참가할 때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지만, 그럴 때도 되게 씩씩해야 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누적되었다가 심리적인 문제로 이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억눌린 감정을 술에 의존해서 풀려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쉽고요.
 
 
유미   질의응답 시간에, 알코올 관련 문제 나 분노조절 장애 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이 괴로운데, 활동가 본인이 자기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고 바뀌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경우엔 어떡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라다   어려운 문제죠. 어쨌든 좀 활동을 쉬고, 자기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권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억지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이 본인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얘길 솔직하게 해야겠죠. 암에 걸렸다거나 다리가 부러졌다든가 하는 상황에 일을 쉬어야 하는 것처럼, 심리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야겠죠.
 
유미   말씀하신 여러 측면에서 활동가와 비견할만한 집단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마찬가지로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가는 서비스직 노동자들과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라다   란 논문이 재밌 었던 게,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감정과 행동을 억압하잖아요. 속으로는 기분 상해 도 고객에겐 친절을 유지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비영리조직 활동가들은 어떤 도덕적인 판단에 따라 올바른 태도뿐 아니라 올바른 감정을 가지기 위한 ‘감정노동의 내면 행위’를 스스로 한다는 거예요. 감정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에 차이가 있다는 거죠.
 
활동가들은 자기 업무에 대한 주도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주도성이 스스로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여 소진되도록하는 측면도 있어요. 감정이나 욕망, 사적인 생활을 스스로 억압하고,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심한 자책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 연구의 결론은, 자신의 감정 상태나 욕구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일에 반영하여 활동하는 사람일수록 소진되지 않고 오래 활동을 한다는 거예요. 뭔가에 헌신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경험이고 나를 넘어서는 행위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관계를 잘 맺고, 챙기면서 활동하지 않으면 지속성을 가지기 힘들어요.
 
 
유미   나를 잘 챙긴다는 게 뭔가요? 내 욕구와 감정을 파악하고, 동료들과 얘기 나누는 것인가요?
 
라다   그렇죠. 
 
유미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부담감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짜증이 난다거나, 우울하고 쉬고 싶다 거나, 그런 감정들을 표현해서 기분이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더 심해 질 때도 있고요. 얘기한다고 해서 문제 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라다   우선, 감정은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감정일 뿐이에요. 가치판단은 우리가 나중에 덧붙이는 거죠. 그리고 감정을 성찰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어떤 감정이든 나에게 있다는 것을 허용하라는 거예요. 화가 난다고 무조건 화를 폭발시키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화가 난다는 것을 느끼고 머무르면서,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충분히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대부분 화가 나면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하는 데, 내 욕구가 좌절되었다든지, 내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괴롭다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세밀한 결로 자기를 만나는 게 필요한 거죠.
 
불안 같은 경우도 그래요. 불안이 없으면 우린 생존할 수 없잖아요. 불안을 떨치려 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해요. 외부의 대상이나 목표에 집중하듯이, 그만한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로 자기에게 머물러야 해요. 이것이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자기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거든요.
 
유미   심리상담의 기본적 원리가 그런 건가요?
 
라다   네. 하지만 자기감정을 알기 위해 꼭 심리상담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활동가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운동조직이나 운동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문화를 바꾸는 과정이 있어야 활동가들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방지하거나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 아파도 괜찮아’ 행사의 참가자 중에 젊은 활동가들이 되게 많아서 놀랐거든요. 젊은 활동가들이 활동에 헌신하고 성취하는 것뿐 아니라 내면의 심리나 주변 사람이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에 관심을 갖는 게 긍정적이라고 느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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