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09 제20호
고되지만 괜찮아유
촬영은 고되고 편집은 고독하다. 어차피 인생은 ‘고(苦)’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고생 끝에 가끔씩 낙이 온다는 사실이다. 4주간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에 반응이 좋으면, 월급날도 아닌데 밥을 사고 싶어진다.
농촌을 누비며 방송을 만드는 낙이 하나 더 있다. 마을회관에서 마을 분들과 지어먹는 밥이 그것이다. 농촌에선 어느 마을이나 농번기를 빼고는 점심, 저녁밥을 같이 차려 먹는데, 밭에서 가져온 푸성귀로 금세 차려진 소박한 밥상. 반주로 소주 한잔 곁들이면 노래 한 자락이 뒤따르고 살아온 이야기가 흐른다.
섭외도 즐겁다. 지역밀착형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우리 프로그램은 섭외 과정부터 주민밀착형이다. 가장 지역방송다운 방송을 해보자며, 지난 2월 13일 첫 전파를 탄 청주·충주MBC 공동제작 프로그램 <마을공동체 활력프로젝트 ‘괜찮아유’>. 어느덧 30번째 마을 섭외를 다녀왔다. 영하 12도, 꽁꽁 언 대청호 위에서 첫 회를 찍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숨 막히는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마을은 추석 대목에 내보낼 사과 수확 준비로 분주하다.
지역방송다운 방송? 그게 뭘까?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선배 피디들과 마주한 고민이었다. 부족한 인력, 더 부족한 제작비. 그래도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우리가 응당 해야만 하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었다.
미디어에 비친 농촌은 어떤 모습일까. 특산물, 체험거리, 먹방. 도시민이 소비하는 농촌의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하는 방송. 제작진의 각종 요구와 주문 때문에 주민들은 지치고 때로 상처도 입는다. 우린 그러지 말자. 주민들을 동원하지 말고, 들러리로 세우지 말고, 마을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방송.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야기를 담자.
그저 당신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기울였을 뿐인데, 거듭 고맙다고 하시는 어르신들. 그럴 때면, 내가 더 감사하고 또 죄스런 마음이 든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 수난과 고통의 역사가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더욱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 수난과 고통이 개인사를 넘어 역사로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방송이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오롯이 나의 근력과 땀으로 정직하게 땅을 일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 ‘정년 없는 평생직장’을 가진 이의 자부심 이면엔 내 뒤를 이을 사람에 대한 아쉬움, 자신이 ‘마지막 농부’일지 모른다는 착잡함이 배어난다. “농업은 사라지지 않겠죠. 대기업이 들어오든, 대규모 농장을 만들든, 어떤 방식으로든 농축산물은 생산할 테니까. 그런데 농부는 결국 사라지지 않을까요?”
농부가 사라지면 농촌은 없다. 농업은 있어도 그건 농촌이 아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마을도 없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서로를 돌보고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 돌봄과 살림의 마을공동체가 무너진다면, 그 빈자리를 어떤 복지, 어떤 정책이 대신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제목 <괜찮아유> 앞에 붙은 ‘마을공동체 활력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묵직하게 다가와서 버거울 때도 있지만, 마을공동체에서 활력과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를 자꾸만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썩 괜찮은 제목이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