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기획
  • 2016/09 제20호

재벌을 포위하는 노동운동

한국에서 공급사슬 원청대기업의 책임 묻기

  • 진행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 참여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 전 지회장
  •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위원
  • 오기형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총무위원
  • 정리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류미경(이하 ‘류’) 《오늘보다》 5월호 특집 주제는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한 국제 노동자운동의 대응’이었습니다. 글로벌 공급사슬 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공급사슬 꼭대기 초국적 기업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시도를 다뤘는데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사업장이나 일국 단위 교섭과 투쟁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거였죠.
오늘 좌담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국내 노동운동에 갖는 의미를 점검하고 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우선 글로벌 공급사슬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위원

조건준(이하 ‘조’) 어려운 말로 얘기하면 ‘세계화 시대 자본의 축적체계 변화’일 텐데, 저는 요즘 ‘얼굴 없는 노동, 마음 없는 노동’이라는 말로 표현해요.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데 2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 2만 개의 부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현대차에 직접 고용되어 있지 않죠. 현대차를 내가 만들었다는 게 드러나지 않아요. 내가 취직한 기업의 브랜드, 유성이나 SJM 같은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굴 없는 노동이라고 표현했고요. 
마음 없는 노동이란, 제조업이 아닌 유통서비스직의 경우 내 감정과 무관하게 고객에게 잘 해야 하는 상황, 그러니까 감정노동을 해요. 그것도 원청-하청-재하청에서 대부분 가장 밑에 있는 노동자들이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데, 굉장히 열악한 처우 속에서 일하는 이들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죠. 얼굴도 없고 마음도 없는 존재. 이들이 중층화된 노동시장의 저 밑바닥에서, 권리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합니다.
공단의 조그만 부품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시로 개새끼 소새끼 욕 듣고 불량 하나 나면 잔소리 듣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근무를 끝내고 가야 한다든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다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 속에 살고 있어요. 
공급사슬이란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삭제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주범은 공급사슬 최상위에 있는 기업, 먹이사슬로 비유하자면 그 꼭대기에 위치한 포식자인데. 그 포식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드는 개념인 거죠. 
 
국제노총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공급사슬 노동자들을 ‘보이지 않는 노동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제노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50대 초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 중 94퍼센트는 그 기업과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노동자들이라고 해요. 
공급사슬 원청 책임 논의가 처음 제기된 배경은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공장 붕괴로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공급사슬 제일 위의, H&M이나 ZARA같은 의류브랜드들이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었고요. 소비자운동도 함께 힘을 보태는 식으로 투쟁해 왔는데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나 전자산업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원청을 압박하는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동차산업부터 얘기해보죠. 최근에 현대차의 주요 부품사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현대차가 직접 개입한 사례가 이슈가 되었는데요. 현대차는 왜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했을까요?
 
홍종인(이하 ‘홍’) 현대차가 왜 부품사 노조 파괴에까지 개입하는가 생각해보면, 부품사 공동 파업이라든지 이런 힘들이 합쳐졌을 때 완성차의 생산 통제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특히나 앞장서는 사업장의 노조를 선별하고, 그것을 깨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공개된 문건에 보면 부품사 노조의 활동이나 성향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더라고요. 
 
힘의 관계를 보면 완성차 대기업이 생산과정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또 거꾸로 보면 완성차 기업은 부품사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부품사를 통제하지 못하면 이윤 극대화를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이란 책에 보면 현대차가 소비자의 기호, 자동차 사양 같은 게 바뀌면 부품사까지 즉각적으로 생산 체계를 바꾸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와요. 생산이 넓어진 만큼 그에 맞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거겠죠.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공급사슬이 원활히 작동해야 하는데, 유성지회 같은 노조는 그 유기체가 굴러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암적 존재처럼 생각되는 거예요.
 
전자산업의 경우는 어떤가요?
 
오기형(이하 ‘오’) 의류산업과 전자산업이 비슷한 면은 생산 거점을 분산해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거죠. 삼성을 보면 국내 공장에서 만드는 부품을 베트남 공장에서도 똑같이 만들고 있어요. 그게 단지 저임금을 찾아서 가는 거라기보다는 국내적인 위험을 분산하는 거예요. 그런데 유연하게 물량을 배정하려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죠. 문제가 생기면 납품 관계를 끊는다든지 물량을 확 줄인다든지 대응하는 건 산업에 관계없이 비슷한 것 같아요.
오기형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총무위원
른 면은, 윤리적 소비 운동이 전자산업보다 의류산업에서 좀 더 쉬워요. 의류산업은 노동집약적이라 열악한 노동이 눈에 띄지만 자동차·전자는 기술집약적인 부분이 있어서 열악한 노동이 쉽게 가시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노조를 파괴하거나 생산을 극단적으로 유연화하는 게 ‘비윤리적’이라고 인식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의류산업처럼 윤리적 소비 운동이 벌어지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이 글로벌 공급사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뭘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밑바닥에 있는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공급사슬 포식자들을 우러러 숭상하고 있다는 게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가면 뒤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정규직만 있는 부품사 공장이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직장폐쇄되고, 노조가 깨졌어요. 공급사슬 속에서 정규직의 임금, 조직력, 투쟁, 이런 것들이 제거해야 하는 목록의 우선순위에 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안정적인 공급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공급사슬이 생산을 유연화하는 체계라고 하면, 정규직만의 공장은 걸림돌인 셈이죠. 안정적인 고용에 대한 권리, 노동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방법이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엔 비교적 노사관계가 자율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산업구조에선 아무리 작은 밑바닥의 하청업체 노동자라도 자기 권리를 찾고자 하는 순간, 운명적으로 거대한 시스템에 부딪혀요. 그래서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걸 뒤집고 넘어섰던 게 화물연대나 건설노조의 사례라고 봐요.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고, 건설은 단일한 고용주에 고용된 게 아닌데도 실질적으로 교섭을 하잖아요. 그런데 금속노조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전략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국제 노동계의 논의에서 원청 대기업의 책임은 사용자로서의 책임에 방점이 있어요. 공급사슬 전체에서의 노동권 침해, 안전 문제 등에 원청 대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서 재벌 책임이라고 했을 때 재벌 갑질, 부도덕함, 부패, 부의 집중 같은 문제들이 먼저 떠오르죠. 재벌 책임을 묻는 투쟁에서 어떻게 사용자 책임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요?
유성기업의 사례에서도 현대차는 직접적 고용관계가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재벌사 간접고용 노동자들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경험에서 얘기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누가 노동자를 직접 통제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봐요. 저임금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죽고 다치고 있는데, 산업구조 전반의 비윤리성에 대해 영향력·지배력·통제력이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예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조 하면서 느끼는 건, 무슨 얘기를 해도 우리 하청 사장들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 에어컨 수리기사 사망 사고가 있었는데요. 짧은 시간에 이렇게 빨리 바뀌는 건 처음 봤어요. 고공 작업 스카이차는 한 번 부르는 데에 15만원이 드는 건데, 삼성전자서비스가 스카이차 업체랑 계약해서 언제든 부를 수 있도록 됐어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문제였는데도 이슈가 되고 원청이 움직이니까 바로 해결되는 거죠. 
 
제가 우스갯소리로 그래요. ‘당신 부모님이 진짜 부모인지 유전자 검사 해봤냐.’ 안 했겠죠. 원청 책임 문제도 비슷해요. 지금까지 원청 사용자성을 제기하는 방식이 대부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걸어서 불법 하청·파견을 증명하는 식으로, 문제가 굉장히 사법화되었어요. 그런 접근이 재벌의 사용자 책임이라는 걸 제한적 의미로 축소시킨 건 아닌가, 반성적인 평가도 필요할 것 같아요. 
부품사들이 현대차가 노조 파괴를 같이 기획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죠. 문건 하나 발견되면 폭로하고. 근데 굳이 증명 안 해도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이라는 책을 보면 다 나와 있어요. 현대차가 실시간으로 부품사를 관리·감독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재벌 곳간에 750조 원이 쌓여 있는데 그걸 나눠주자는 식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어마어마한 돈이 일단 비현실적이고, 홍길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곳간을 누가 어떻게 털 것인지도 막연하죠. 그렇게 접근해선 어렵지 않을까요. 공급사슬 포식자의 책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이번에 캐나다에 다녀왔는데, 캐나다 민간부문 산별노조(UNIFOR)의 주요 사업장은 GM, 크라이슬러, 포드 빅3 자동차 업체의 공장이에요. 반면 부품사 노동자들은 전미철강노조에 가입되어 있어서 상급 노조도 다르고 교섭 단위도 달라요.
그런데도 빅3 자동차업체가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파업에 돌입할 때, 생산 라인만 멈추는 게 아니라 부품사 노조와 연대해 부품 공급을 멈추고, 부품을 운반하는 물류까지 멈추는 공동 투쟁으로 사용자를 압박하더라고요. 그런 게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산별노조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연대의 대상을 찾아낸 거죠. 마찬가지로 공급사슬을 따라가는 투쟁은 산별 질서의 투쟁과는 투쟁의 경로가 전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성지회 투쟁에 노조 파괴 시도가 있던 현대차 주요 부품사들이 모여 연대한다든지 하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같은 금속노조 소속이기는 하지만 이건 민주노총이 기존에 연대 투쟁을 만들던 질서와는 좀 다른 접근이거든요.
공급사슬 내 연대 투쟁의 해외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한국에서도 시도되면 좋겠어요. 공급사슬 노동권을 가지고 국제협약 만들고 어쩌고 하는데 그런 거 잘 만들어 놔봤자 우리한테 적용이 안 되면 꽝이니까요. 한국에서 ILO 권고 지금도 다 안 지키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공급사슬을 따라가면 필연적으로 산별 질서를 넘는 투쟁의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신규 조직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특정 기업의 주요 부품사를 동시에 조직한다든가, 제조업뿐 아니라 공급사슬 내 유통서비스업도 함께 조직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자연히 글로벌 공급사슬 내 조직화, 연대 투쟁 전략도 고민하게 되고요. 
 
현대자동차가 해외에 나가면 부품사들도 따라가는 시스템이에요. 유성도 중국 공장이 있는데 현대가 나가면서 나간 거예요. 그런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 전 지회장
해외 공급사슬 내에서의 처우나 노조 탄압 사례들을 알고 이어서 투쟁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유성지회도 이번에 현대차의 노조파괴 개입에 대응하는 투쟁을 하면서 국제연대사업을 했거든요.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IndustriALL)과 함께 현대차의 책임을 묻는 온라인 항의서한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짧은 시간 동안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했습니다. 직접 고용관계가 있건 없건 공급사슬 꼭대기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노동권 보장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국제적인 인식이더라고요. 
 
이번에 국제노총이 ‘기업의 탐욕을 멈춰라’라는 캠페인의 첫 타깃 기업을 삼성으로 정했는데요. 삼성 무노조 경영을 부각시키는 식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는데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외국에서 삼성전자 AS시스템이 어떤지 파악해보려는 생각이 있어요. 공동대응할 수 있는 쟁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한국 재벌기업과 관련해서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예상되는 약점들을 정리하고, 특정 쟁점에 집중해 함께 대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긴 시간 좋은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급사슬을 통한 조직화와 투쟁을 한국의 자동차산업과 전자산업, 또는 재벌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전략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로 끝내지 않고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활동하도록 서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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