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6/08 제19호

노동자는 왜 안전수칙을 지킬 수 없나?

사례로 보는 노동현장 안전 문제

  •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기계는 죄가 없다

공장에서 일하는 A씨는 유압프레스에 손등을 찍혔다. 비명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뼈와 신경이 으스러졌다. 응급차에 실려가 치료를 받았지만 오른손을 이전처럼 쓸 수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입사 4년차, 현장에선 나름 베테랑으로 통하는 직원이었다. 스마트폰 부품들을 압착하는 기계 앞에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기계는 죄가 없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기계에는 작업 중 손이 끼이지 않도록 하는 안전 센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A씨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센서를 ‘가리고’ 작업을 했다. 작업 물량을 맞추려면 그래야 했다. 센서가 작동하면 두 손을 작업대에서 완전히 치운 후에야 기계가 움직인다. 센서 없이 일할 때에 비해 제품 하나를 조립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몇 달에 한 번, 원청에서 현장실사를 나오는 날이면 노동자들은 센서를 가리고 있던 박스 조각이나 청테이프를 치운다. 기계와 바닥의 먼지도 반짝반짝 할 때까지 닦는다. 원청에서 나온 분이 ‘보시기에 참 좋도록’, 그날만큼은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한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할당된 물량의 납기일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물량에 비해 인원은 부족하고, 그마저도 절반 정도의 인원은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입들이다. 회사는 생산직의 대부분을 파견업체를 통해 충원하는데, 파견노동자들을 쉽게 쓰고 자르는 만큼 파견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조건을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만둔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 날 하루 다섯 명의 신입이 들어왔다. 하지만 신입들은 아직 1인분 몫의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불량이나 안 내면 다행이었다. A씨처럼 연차가 있는 노동자들은 물량을 최대한 많이 뽑기 위해 손을 재촉했다. 센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려져 작동하지 않았다. 
 
 

폭우 속을 달릴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하던 집배원 B씨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봉고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장마철, 우산 쓰고 걷는 것도 힘들만큼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체국 업무를 관장하는 우정사업본부에는 ‘장마, 폭설 등 악천후 시 우편물 배달 업무를 자제’하라는 내부 규정이 있다. 2011년에 한 집배원이 폭우로 인한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후에 만든 규정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규정에는 악천후 시에 배달 업무를 자제하도록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우정사업본부는 한 번도 집배원들에게 배달 업무를 자제해도 좋다고 한 적이 없다. 대신 각 우체국에 ‘폭우 예보가 있으니 빗길운전 시 주의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우체국은 집배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일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이다. 

B씨가 일하던 우체국의 집배원은 2014년에 열 명이었지만 지금은 일곱 명이다. 2년 사이 지역의 가구 수는 늘었는데 인력은 오히려 줄었으니 업무량이 가중된 상태였다. 

우체국 전체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발달로 일반우편은 줄었지만 등기나 택배 물량은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택배가 늘면서 민원도 증가하고, 노동 시간과 강도도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우정사업본부는 인력을 충원하기는커녕 정원감축 및 비정규직 채용 계획만 제출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일일평균 노동시간은 비수기에 10.8시간, 폭주기에는 13.1시간이다. 열한 시간을 일해도 빠듯할 정도의 물량이 매일 주어진다. 오늘 할당된 배달 업무가 지연되면 그것은 고스란히 다음날 자신이 배달해야 할 물량에 추가된다.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서 배달을 자제할 수 없는 이유다. 

우정본부는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말로만 안전을 들먹인다.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집배원을 대상으로 매년 안전교육을 진행하니 책임을 다했다는 식이다. 그러는 동안 5년 사이 15명의 집배원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안전벨트를 매달 곳이 없다

빌라 3층 외벽에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 C씨는 실외기가 놓인 철제 난간이 무너지며 추락했다. 회사는 C씨가 회사가 지급한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과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은 회사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다. 저기엔 누가 갔어도 죽었다.’

C씨가 작업하던 빌라 외벽에는 벨트 끝 안전 고리를 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일하게 안전 고리를 걸 수 있는 곳은 그가 올라 작업하던 철제 난간이었다. 그런데 그 철제 난간이 무너졌다.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하더라도 추락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택건설 규정에 따르면 공동주택에는 베란다와 같은 실내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상가건물은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고 있어, 실외기를 수리할 엔지니어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 고리를 걸 수 있는 쐐기도 없다. 

동료들은 고공작업을 위한 특수 차량을 부르는 것이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건물 외벽 고공작업에는 ‘스카이차’라 불리는 차량이 이용된다. 다른 한 방법은 2인 1조 공동작업이다. 안전벨트로 몸과 몸을 연결해 누군가 건물 안에서 C씨를 지탱해주고 있었다면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두 방법 모두 불가능하다. 우선 1시간에 15만 원이 기본인 스카이차 사용료를 고객이 부담하도록 설득하는 일은 온전히 엔지니어의 몫이다. 3만 원짜리 수리를 위해 15만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려는 고객은 거의 없다. 고객을 설득해 스카이차를 부르더라도 수리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수리 시간에 상관없이 수리 한 건당 수수료가 급여가 되는 상황에서, 엔지니어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수리 건수를 올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건물 외벽에 매달린다. 

2인 1조 공동작업 역시 건당 수수료 체계에선 꿈같은 이야기이다. 수리를 두 사람이 했든 한 사람이 했든 원청은 하청업체에게 수리 한 건당 비용만을 지불하며, 하청업체도 마찬가지다. 2인 1조 작업을 위해서는 두 노동자가 모두 급여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엔지니어가 고객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이 상태론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객의 평가가 실적을 좌우하고, 수리 한 건당 수수료가 월급을 좌우하는 조건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추락 사고는 반복된다. 회사는 에어컨 실외기 수리 건당 5000원의 위험수당을 지급하고 있을 뿐이다. 
 

꺼진 신호등을 다시 켜자

작년 가을 TV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웹툰 <송곳>의 주인공은 자기가 일하는 대형마트 현장 곳곳에서 법이나 규정이 너무나 ‘당연하게’ 무시되는 것을 목격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 고장난 신호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신호등은 모두 꺼져 있다. 대체 이 신호등들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정말이지, 지켜지지 않을 안전수칙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안전사고가 났을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앞서 나열한 안전사고들을 돌아보며 모든 일이 매뉴얼대로, 원칙대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무망한 상상을 해 본다. 그렇게 보면 너무나 단순하게 해결될 일들, 누군가 다치고 죽지 않았어도 될 순간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뉴얼대로 일할 수 없을까? 그것은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일이 개인의 ‘안전불감증’ 같은 문제가 아니고, ‘부도덕한’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고, 너무나 분명하게도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극단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이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시간에 쫓기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특히 위험 업무에는 2인 1조 매뉴얼 등 여유 인력을 두는 것이 필요한데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업무 성과가 급여와 직결되는 구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발버둥친다. 

원·하청 관계와 간접고용은 안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으로 업무를 완수하려 하고, 원청업체는 그러한 하청업체에게 업무와 함께 관련한 책임을 떠넘긴다. 하청노동자가 안전 문제를 맞닥뜨려도, 비용이나 작업매뉴얼에 대한 결정권은 원청이 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몬다.

이곳의 신호등은 모두 꺼져 있다. 위험과 책임은 모두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꺼져 있는 신호등을 다시 켜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가 현장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통제할 권리를 위한 집단적인 싸움과 함께 가능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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