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6/07 제18호
전기도 결합상품으로 사면 좋을까?
전력 판매 민영화론의 거짓말
6월 13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는 전력, 가스 등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이 담겨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천연가스 수입과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판매를 민간기업에 허용하고, 한전 발전자회사 주식 20~30퍼센트를 시장에 상장하고, 발전소 정비나 설계에 민간 기업 참여를 확대한다는 것으로, 에너지 공기업 다수를 민영화하는 내용이다. 특히 전력 판매를 민간에게 허용하는 것은 전력산업 완전 민영화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다. 전력 판매 민영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것이 ‘소비자에게 이득’이고 ‘민영화는 아니’라는 정부 측의 핵심 주장 두 가지를 따져보자.
전력 판매의 민영화, 무엇이고 왜 추진되나?
우리가 매달 받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내는 곳은 한국전력공사다. 그런데 정부 계획대로라면 미래에 우리는 SK나 LG, 삼성이 보내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게 된다. 이것을 정부는 “단계적 민간 개방을 통한 경쟁체제 도입”과 “다양한 사업모델 창출”로 포장하고 있다.
전력산업은 생산-유통-판매로 나뉜다. 석탄·천연가스·핵연료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부문은 한전의 6개 자회사와 민간기업들이 경쟁하는 상황이다. 생산된 전기를 가정이나 공장 등 소비처로 보내는 송·배전과 이를 판매하는 일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다. 즉 생산은 6개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경쟁하지만,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의 도매 구매와 유통, 소매 판매는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전력산업이 이런 형태를 띠게 된 것은 IMF 경제위기 당시 추진된 민영화가 2003년 발전노조 파업을 거치면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계획한 4단계 민영화가 2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도 우회적 민영화는 계속 추진되었다. 재벌기업의 발전소 건설을 허가해 민간 발전의 비중이 15퍼센트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고, 공공기관인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을 인위적으로 경쟁시키고 민간 기업의 경영방식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전력의 유통과 판매를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는 전력산업의 완전 민영화를 막는 굳게 닫힌 철문과도 같았다. 그래서 민영화론자들과 자본은 지속적으로 이 부문의 개방을 요구해왔다.
그중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쉬운 게 전력 판매 부문이다. 송·배전망은 한전 독점하에 이미 전국적인 망이 관리되고 있고, 민간기업들은 사업경험이 없기 때문에 송·배전망을 분할 매각하는 방식의 민영화가 아니라면 진출하기가 어렵다. 반면 산업체나 가구를 대상으로 전력을 판매하는 소매 시장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민간기업이 비교적 손쉽게 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IT 기술과 전력 공급·판매를 연계하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가 개발되고 있는 것도 민간기업에게는 유리한 기회이다. 이러한 이유로 1999년 민영화 계획에서는 가장 마지막 단계였던 전력 판매의 민영화가 우선순위로 꼽히게 되었다.
요금인하는 꽝! 재벌의 독과점과 통제력 강화
정부는 전력 판매 민영화의 구체적 로드맵을 올 하반기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로드맵이 2014년 산업자원부의 용역보고서 《전력산업 발전방안》에 담긴 내용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보고서에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공장 및 상업시설부터 용량별로 3단계 정도로 나누어 민영화를 진행해, 최종적으로는 주택용 전력 판매까지 민영화하는 안을 담았다.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의식해, 그 기대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경쟁으로 원가절감이 이루어져 효율성이 높아지고 사회적 편익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둘째,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되고 신규서비스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일본에서는 최근 전력 판매가 완전 민영화되면서 통신과 전력을 결합한 신규 상품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전력 판매 민영화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의 통신재벌들이다. 통신재벌들은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다. 2005년 4조 6800억 원에 달했던 통신재벌들의 영업이익 합계는 2014년 2조 900억 원으로 반토막 났다. 이들은 스마트그리드 시범사업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정부와 통신재벌들은 전력 판매가 허용되면 다양한 결합상품을 출시해 요금을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합상품은 요금을 낮추었을까?
한국 통신요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통신비(유선전화, 이동통신, 인터넷 등)는 월평균 148달러로 일본과 미국에 이어 3위였다. 특히 이동통신비는 115.5달러로 가장 높았다. 2012년 당시에도 유선전화, 이동통신, 인터넷 등 결합상품 가입자가 약 1400만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합상품이 통신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최근에는 특히 통신사들이 유료방송시장에 참여해 IPTV와 연계한 결합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결합상품 가입자는 1533만(2014년)으로 증가했다.
결합상품은 속임수
결합상품이 요금을 낮추었다는 증거는 없다. 통신재벌들은 “뭉치면 올레”, “온가족 무료”, “한방에 홈” 등으로 유혹하며 결합상품이 엄청난 요금 절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애초 높은 가격을 책정해놓고 할인율을 과장하는 눈속임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50퍼센트 할인해서 판매되는 동네 슈퍼마켓의 아이스크림을 생각해보라. 특히 시장이 소수의 기업에게 독과점되어 있고, 대체재가 없는 필수적인 상품일 경우 소비자들은 가격이 어떻든 그 상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크다. 이동통신, 인터넷, 방송이 바로 그런 상품들이고, 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결합상품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 할인을 미끼로 여러 개의 상품을 2~3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에, 높은 위약금과 해지 시 겪어야 하는 여러 차례의 전화 통화와 같은 ‘피곤함’ 때문에 다른 상품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결합상품 방식은 각각의 상품에 소비자가 얼마를 지출하는지 알 수 없어, 그 가격이 적당한지 아니면 과다한지를 판단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결국 결합상품은 가격 결정과 판매에 대한 기업의 힘을 키워주는 반면, 가격 인하나 소비자 선택권은 더 제약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결합상품은 한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재벌기업이 다른 시장을 장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동통신 시장의 50퍼센트를 장악한 SK텔레콤이 결합상품을 통해 4년 만에 초고속인터넷 시장 11퍼센트를 점유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통신사들의 IPTV 상품 판매로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이 고사하고 있다. 전력 판매가 통신재벌들에게 개방된다면 이런 방식으로 가정용 전력 판매 시장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눈속임 식 가격할인 정책이 동원됨은 물론이다.
완전 민영화의 방아쇠
정부는 전력 판매 민영화가 전력산업 전반의 민영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에서 소매 판매시장이 민영화되면 요금의 자유화, 도매시장의 완성, 발전산업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업자원부의 2014년 보고서는 “소매부문의 실질적 경쟁도입을 통해 발전부문까지 경쟁효과가 미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전력 판매 민영화의 꼼수를 정직하게 드러냈다(그림 참고). 현재 전력거래소가 관장하는 도매 전력시장은 판매자는 다수의 발전회사들인데, 구매자는 한전이 독점하는 형태다. 그런데 전력 판매가 개방되면 소매 전력 판매를 위해 전력을 구매해야 하는 민간기업들도 도매 전력시장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소매 판매 경쟁을 위해 도매 전력 가격이 자유화되고, 발전회사들은 더 싼 가격에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각종 원가 절감 및 효율성 압박에 놓이게 된다. 즉, 소매 부문 민영화가 발전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번 정부 발표에서 한전 발전자회사 주식 20~30퍼센트를 시장에 상장하겠다는 것도 발전부문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방안 중 하나다. 생산과 판매에서 민간 자본의 참여를 통해, 양측에서 경쟁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또 발전부문의 경쟁은 저렴한 연료원 확보에 대한 압력을 강화시킨다. 특히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 의사를 밝힌 천연가스 부문의 직도입(민영화) 요구가 거세질 것이고, 현재 발전용-산업용-가정용 간의 가스요금 교차보조가 폐지되어 가정용 가스요금이 대폭 인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즉 전력부문의 민영화로 끝나지 않고 천연가스를 포함한 에너지산업 전반의 민영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제 저성장과 지구 환경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에너지산업의 변화를 민영화로 달성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통해 전력산업 민영화의 폐해는 널리 알려졌다. 대규모 단전, 요금 상승,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지체는 ‘자유시장’에 맡겨진 현 에너지 체제의 필연적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욱 민주적으로 관리되고, 지구 생태계를 고려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전력 판매 민영화는 이러한 변화와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