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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 제17호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몇 년 전 나는 오래되고 유명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배들을 본 적 있다.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폐쇄 직전의 놀이공원 같은 모습이었다. 이우성 작가의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속 오리배의 이름은 ‘29 아리랑’. 표정도 없고, 생물도 아니다. 그런데 어두운 밤, 호수 위에서 홀로 불타고 있는 모습에는 고독이나 절망 따위의 심상이 드러난다. 외로움과 자기애는 거울쌍이라고 했던가? 불에 휩싸인 오리배의 이미지는 나르시시즘적인 제목과 기이한 충돌을 일으킨다. 마치 단절된 관계에서 긴 시간 고독을 체험하다 기어이 사회에 대한 공격, 파괴성(불)을 드러내는 오늘날의 개인들, 해방의 이념과 단결의 구심을 갖지 못한 무수한 개별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쉽게 불타오르고 이내 사그라드는 분노는 해방이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간을 돌아보고 어떤 감각과 결별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