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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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 제17호

건설현장 불법행위 단속, 꿍꿍이가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이름의 노조탄압

  • 소영호 건설노조 조직부장
 

동작 그만, 뭘 단속하겠다고?

정부는 지난 2013년 8월가의 핵심 아젠다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선포한 후 매년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분야별, 부처별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 등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발맞추어 경찰청은 지난 5월 2일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 추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건설현장의 비정상적 관행과 부조리를 모두 잡겠다는 게 그 표면적 의도다.

경찰청은 ‘5대 중점 단속 대상’으로, ①건설공사 계약·입찰·하도급 과정의 금품수수 ②부실시공 등 안전사고 유발행위 ③떼쓰기식 집단 불법행위 ④오염물질 불법배출 등 환경파괴 행위 ⑤사이비 기자 갈취 등을 뽑았다. ‘부정부패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지자체와 상시 합동단속을 통해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고도 했다.

건설현장의 부조리를 바로잡는다는 계획은 늘 있었지만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있다. 세 번째 항목인 “떼쓰기식 집단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특정 노조원이나 장비 우선 사용을 요구하며 떼쓰기식 불법집회시위·업무방해·건조물침입·고공농성 등 집단불법행위’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장비 사용의 주요한 예로 타워크레인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건설현장 ‘비정상’ 바로잡은 건설노조의 투쟁

정부와 경찰이 노리는 대상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임은 분명하다. 특히 타워크레인 조합원들은 매년 타워크레인 임대업체들과 중앙교섭을 벌여 노동조건을 통일한다. 또한 거의 전 현장에서 고용투쟁을 진행해서 교섭에서 합의한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조합원을 우선 채용하는 활동을 한다. 경찰은 작년 11월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주요 간부 5명에게 ‘채용을 목적으로 한 강요, 공갈 등’의 혐의를 물어 구속수사하고 있다. 

건설노조의 고용투쟁은 타워크레인 노동자들만 벌이는 게 아니다. 다양한 직종의 토목건축 노동자, 건설기계 노동자들 역시 거의 매일같이 현장 고용투쟁을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발표를 계기로, 건설노조 전체로 탄압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투쟁은 건설노동자끼리 경쟁하며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받던 것에서 벗어나는 투쟁이었다. 나아가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노동조건을 현장에 적용하고, 조합원들이 우선 고용되도록 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고용투쟁은 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바꾸는 현장 투쟁,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정치 투쟁을 병행한다. 조합원들은 위험한 현장을 바꾸기 위한 채증 및 고발 행위를 하고, 장시간저임금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싸우고 교섭한다.

그로 인해 다단계 하도급에 대한 제재, 유보임금과 체불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활동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건설노조의 투쟁은 오히려 불법적인 건설현장의 비정상을 정상화했고, 무분별한 자본의 이윤 추구에 제재를 가했던 것이다.

건설노조는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조합원들의 투쟁은 다른 직종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투쟁이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주 44시간 노동과 일요휴무를 요구해왔고, 건설기계(덤프트럭, 굴삭기 등)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해왔다. 연계 작업이 많은 건설현장에서 한 직종의 노동자가 일을 멈추면 다른 노동자는 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건설현장의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짧아졌다. 지금은 오후 5시가 되면 작업을 멈추는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다.
 
©건설노조
 

고용, 가장 절박한 문제

건설노동자들의 현장투쟁은 때론 과격한 양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방송차와 확성기를 이용해 하루 종일 집회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행위를 채증하는 과정에서 현장 관리자들과 싸움이 있기도 한다. 때로는 중장비를 이용하여 현장을 인위적으로 폐쇄하거나, 사무실을 점거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건설노동자들에게 그만큼 고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시적인 고용이 없는 건설노동자들은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 일이 없는 시기를 보낼 수 있다. 저번 달에 며칠 일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서로 간의 인사일 때도 많다. 

헌데 건설노동자들이 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제공한 당사자는 정부와 자본이다. IMF 이전인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건설사에는 중장비 부서가 존재했다. 건설사가 건설기계와 타워크레인을 보유하며 비교적 상시적인 고용체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겪으며 건설현장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건설사는 중장비 부서를 해체하고, 타워크레인을 임대업체 소유로, 건설기계는 중기회사 혹은 개인소유로 전환했다.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특수고용으로 전환되어 일상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IMF 위기의 여파로 일감은 떨어지는데 현장에서 책임질 것은 많아지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2001년에 타워크레인과 레미콘 기사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2004년 덤프연대가 조직되어 대규모 투쟁을 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건설노조
 

물러설 수 없다

이번 탄압의 이면에는 민주노총의 예봉을 꺾겠다는 의도가 있다. 건설노조는 최근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투쟁에서도 건설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지역 연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진행된 노동개악 저지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검경에 소환되어 조사 받고, 불법적인 감청을 받았다.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건설노조가 정권과 자본에게 단단히 ‘찍힌’ 것이다.

경찰은 건설현장의 불법행위가 국민에게 부담을 주고, 안전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무시되던 건설현장을 바꾼 것이 누구인가? 바로 건설노동자들이다. 건설노조의 투쟁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적정한 임금과 노동시간 보장으로 ‘국민’의 일원인 건설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었고, 관습적이었던 불법 공정을 막아 건설현장의 안전도 제고되었다.

일을 얻기 위해 현장 관리자들에게 굽실거리고 각종 향응을 제공하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체불이 생겨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하다 다쳐도 내 탓이라 자책하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당당하게 투쟁하여 고용을 쟁취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그나마 바꾸었던 현장은 다시 ‘이판사판 공사판’이 된다. 탄압을 슬기롭게 이겨나가며 건설노조의 더 큰 투쟁을 조직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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