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6/05 제16호

월급만큼 중요한 것

  • 이청아 노동자
나는 딱 최저임금만 받고 일한다.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었다. 돈이 필요했기에 일이 많은 다른 공장을 가고 싶었다. 불경기라 그런 곳에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이다. 일단 조금이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나는 다른 공장에선 으레 강제로 시킨다는 평일 잔업도, 주말 특근도 없이 일한다. 잔업과 특근이 없으니 나의 삶에는 ‘저녁’이 있지만, 저녁에 쓸 돈은 별로 없다. 언니들과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저녁은 있지만 돈은 없는, 안빈낙도형 인간’으로 서로를 호칭한다.

언니들은 언제나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으로 여기를 떠나라고 한다. 젊으니까, 기술이 없어도 잔업도 특근도 더 많은 곳에서 일하면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도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다.

언니들과 나의 월급은 평균 125만원. 그나마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들어온 ‘아웃소싱 직원’이기 때문에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세금을 떼지 않으니 이 정도다. 아마 파견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훨씬 적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언니들 말대로 남의 돈 따먹기는 참 힘들다. 이 직장은 돈 따먹기가 진짜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아웃소싱 언니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그래도 재촉하지 않잖아”, “여긴 그래도 사람들이 젠틀하잖아.”

“우리 공장 옆 휴대폰 조립회사 있잖아. 불량 나오면 글쎄 관리자가 한 시간씩 혼을 낸대. 라인까지 멈추고! 그 회사는 일부러 나이 많은 언니들 갈구려고 젊은 남자애들만 그렇게 승진 시킨다더라. 라인 옆에 세워놓고 벌까지 세운다던데? 그러다 어떤 아줌마는 펑펑 울었대. 나이 먹어가지고 벌서고 있으면 서럽지. 휴대폰 회사 그런 거 너무 심해. 내가 다니던 데는 저녁 타임에 잔업 못 빠지게 하려고 문도 걸어 잠궜어. 대리가 문을 지키고 서 있고. 물량 많을 때는 정말 막차시간까지 잔업 시킨 적도 많아.” … “어휴~ 언니, 여기서 유명한 그 화장품 용기 만드는 회사 있잖아요. 거기서 일하는 친구가 관리자한테 할머니가 오늘내일하고 계서서 특근 빼고 주말에 집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깐 아직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난리냐고 그랬대요. 진짜 대박이야….”

옆 공장, 옆옆 공장, 유수지 앞 공장, 공단 끄트머리 공장까지. 이런 저런 일화를 듣고 있노라면 덜컥 겁부터 난다. 빨리 돈 잘 버는 회사로 옮겨서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언제나 그 시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그래, 요번 월급날까지만 일하고 딴 데 가자’라며 차일피일 퇴사를 미루곤 한다. 이 공장 저 공장 떠돌다온 언니들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이 곳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이 회사에 다니는 한, 돈 때문에 서러울 일은 있어도 사람 때문에 서러울 일은 없으니까.

어딜 가나 최저임금 밖에 받을 수 없는 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인격을 포기하는 대신 돈을 조금이라도 많이 쥘 것인가, 돈을 포기하는 대신 ‘저녁이 있는’ 가난한 삶을 더 연장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답답하다. 악취 가득한 공단 유수지를 덮은 저 안개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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