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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 제16호

패스트푸드 노동자, 미국을 움직이다

  • 채려목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TV 광고에서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요. 
저는 일할 때 두세 명 몫의 일을 하지만, 저 하나 살기에도 모자란 돈만 받죠. 
답답하고 절망적이에요. 물건을 살 때 뭘 도로 내려놓을지 고민하지 않고 쇼핑하고 싶어요. 
맥도날드 사측이 우리에게 광고에 나오는 미소를 바란다면, 
시간당 15달러의 임금과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보장해야 해요!”
- 맥도날드 세인트루이스점에서 일하는 라프레샤(Lapresha)의 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는 각각 2018년과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주의회와 합의했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는 2014년 이미 15달러로의 단계적 인상을 약속했다. 인상액엔 차이가 있지만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한 주만 열다섯 곳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미국 대선의 ‘빅이슈’ 중 하나다. 4월 14일에는 40여 개 나라, 300여 개 도시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국제 행동도 있었다. 이 중심에 “Fight for $15(15달러를 위한 투쟁)”가 있다.

마침 지난 3월 24일 “SEIU 전략조직화사업과 최저임금 15달러 운동” 워크숍이 서울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이 워크숍은 전미서비스노동조합(SEIU)에서 활동중인 니콜라스 러디코프의 발표로 진행됐고,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해 활발하게 토론했다.
 

“Fight for $15”의 시작

한국과 달리 미국은 최저임금위원회를 별도로 두지 않고, 법률 개정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전국 공통의 일원화된 체계도 아니다. 공정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연방 최저임금제도와 각 주법에 근거한 주 최저임금제도로 구분되어 있다. 루이지애나처럼 주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았거나, 조지아처럼 최저임금이 연방 최저임금보다 낮은 경우엔 연방 최저임금을 적용한다.(2015년 기준)

미국의 연방최저임금은 2009년 7.25달러로 인상된 후 2016년 현재까지 그대로다. 민주당에서 3년에 걸쳐 10.10달러로 인상하는 법안(그 후로는 매년 소비자물가만큼 인상)을 상정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정체 상태다. 미국 전체 평균임금과 중간임금(전체 중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임금)에 대비한 결과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거나 최하위권이다.

이런 현실에서 투쟁의 포문을 연 것은 뉴욕의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수개월간 모임을 갖고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두고 토론했다. 저임금과 근무시간, 들쑥날쑥 근무일정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 산업엔 전일제 일자리가 거의 없고, 노동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두 세 개의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은 파업을 택했다. 2012년 11월이었다. 파업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미국 외 국가들로도 퍼져나갔다. 이 투쟁을 조직한 것이 전미서비스노동조합(SEIU)이었다.
 

SEIU의 패스트푸드 노동자 조직화 전략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내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새로운 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뿐이었다. 노조 조직률은 하락했다. 새로운 조직화·투쟁의 모델을 만들어내야 했다.

SEIU는 어떤 부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는지, 임금이 얼마나 낮은지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패스트푸드 노동자라는 걸 알게 됐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는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눈에 띄고 이슈가 될 만한 대상도 필요했다. SEIU는 맥도날드를 택했다. 맥도날드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큰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주범이었다.

SEIU는 미국 전역에 흩어진 각 프랜차이즈 지점장들이 아니라, 맥도날드 본사를 상대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맥도날드가 가진 상징성이 크니 시민들과 언론의 관심도 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힘으로 미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본사가 간접관리만 하더라도 하청업체 및 가맹점과 함께 공동사용자에 속한다고 결정했다. 프랜차이즈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욱 힘이 실렸다.

흥미로운 것은 SEIU가 전통적인 노조 설립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노조를 만들기 위한 행정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시간도 오래 걸려 노조 결성 과정 중간에 실패할 위험이 크다.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지점마다 노조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SEIU는 가능성과 실리가 낮은 지점별 노조설립 대신 전국적 조직위원회를 갖췄다. 지역별로 사회운동과 연대를 넓히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노조 만들기를 어렵게 하는 법제도를 비판·폭로하고, 동시에 노조 가입을 위한 다른 경로를 제시했다. 사용자로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임금 지불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드러냈다. 노동조합에 형식적으로 갇히지 않고도, 노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했다.

첫 파업에 20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2013년 5월엔 국제식품연맹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연대했고, 맥도날드 주주총회에 참가해 행동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패스트푸드 노동자들뿐 아니라 다른 최저임금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집단 파업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운동으로 받아들여졌고,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전미고용법프로젝트(NELP)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급 15달러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중 72퍼센트가 노동조합을 지지했다.
 
 

패스트푸드 파업은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

‘15달러를 위한 투쟁’ 성과로 여러 지역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됐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15달러’라는 액수나 ‘파업’이란 전술에만 주목하다보면,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대중운동을 조직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최저임금 투쟁의 부분적인 승리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런 대중운동을 조직할 노조와 전략적인 접근이 있었다. SEIU는 전체 재정의 20퍼센트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인적·물적자원에 투입하며, ‘조직화’를 노동조합 운동의 전략으로 세웠다. 또 저임금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최저임금에 큰 영향을 받는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계획을 도출해냈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만연한 상징적인 산업과 기업을 확인하고, 이 부문과 기업에 속한 노동자를 주체로 세워낸 것이다.

‘15달러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법·제도상 한계로 인해 당장 노동조합에 속해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은 저임금·고용불안에 맞서는 강력한 투쟁을 벌였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만들고 있다. 이미 노동조합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SEIU의 목표는 맥도날드를 노조 사업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노조 설립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사회운동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힘을 키워 맥도날드 사측이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누구를, 무엇으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명확한 목표 하에 꾸준히 사업을 전개한 SEIU의 최저임금투쟁은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이 어때야 하는가, 미조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대중운동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등의 화두를 던진다.

최근 한국 경영계는 상여금, 식대 등 수당을 임금에 포함하고 업종과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없는 곳부터 임금 개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각지대의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로 내 건 민주노총의 사업방향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향해야 하는 이유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사회운동을 조직할 방안이 우리에게 있는지, 단결의 확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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