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할 권리
- 2016/05 제16호
겉만 보면 모르는 우체국 요지경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배정필 수석부지부장 인터뷰
“배달하다보면 사람들이 저보고 ‘좋겠네요!’ 그래요. 공무원이니까 대우도 괜찮을 거고, 연금도 받게 되니까 좋겠다면서요. 우정사업본부 안에 최저시급만 받는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배정필 수석부지부장(이하 배 수석)은 재택집배원이다. 집배원은 다 공무원 아니냐고? 아니다. 우정사업본부의 집배인력은 정규집배원, 별정우체국집배원, 상시집배원, 특수지집배원, 재택집배원, 소포위탁배달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정규집배원을 빼고는 모두 비공무원이며, 어떤 이름을 달고 있느냐에 따라 노동조건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사람들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은 ‘집배원’이며, 실제로 하는 일도 집배원과 다르지 않다.
복잡한 우체국 체계
우체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계는 굉장히 복잡하다. (우체국금융업무, 알뜰폰 판매 등은 제외한 우편업무 중심으로) 편지를 부치고 받는 경로를 따라가며 누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 ‘우정사업본부’의 체계를 들여다보자.
우선 우체국의 종류부터 다양하다. 일반 우체국 외에 동네 곳곳에 위치한 우편취급소, 면 단위 몇 곳에는 별정우체국도 있다. 우편취급소와 별정우체국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우편업무를 위탁받아 민간이 운영하는 우체국이다.
각 우체국에 모인 편지는 전국에 있는 지역 우편집중국(24개)과 우편물류센터(5개)로 운송된다. 도착한 우편물은 우편집중국과 물류센터의 우정실무원들에 의해 분류된 후, 다시 우체국으로 이동된다. 그러면 각 우체국 우정실무원들이 한 번 더 분류를 하고 집배원들에게 넘긴다. 마지막으로 집배원들은 자신이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우편물을 구분하고 배달을 한다. 이렇게 우리 손에 편지가 쥐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우체국이 깨끗하고 신속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청소, 경비, 기계 등을 담당하는 우체국시설관리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이 더해진다.
'헬우정사업본부'의 일등공신, 어용노조
IMF 이후 우정사업본부는 저비용·고효율로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을 증가시켜왔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배달 물량이 많은 신도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배달업무가 일부 위탁되면서 ‘재택집배원’이 생겨났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의 경우에도 우정사업본부에서 직접 담당하던 시설관리업무를 위탁받아 98퍼센트 비정규직으로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웃소싱과 함께 구조조정을 줄기차게 시도하고 있다. 택배, 국제우편(EMS)은 늘리고 통상우편 부분은 줄이거나 더 많은 부분을 아웃소싱하여 우편사업 적자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구조조정의 칼날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향한다. 본래 우편사업이란 게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사실, 그럼에도 우정사업본부는 금융사업을 통해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강조되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이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2015년 우정사업본부는 ‘최악의 살인기업 4위’로 선정된 바 있다. 집배원의 경우 정규직일지라도 월급을 조금 더 받을 뿐 하루 평균 10~15시간 장시간 중노동에 내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열에 아홉은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을 안고 있고, 근골격계질환과 오토바이 사고 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75명이나 되는 집배원이 세상을 뜰 정도로 이들에게 죽음은 ‘흔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이 지경이 되도록 노동조합은 뭘 했을까? 우정사업본부에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우정노동조합(이하 우정노조)이 존재한다. 우정사업에 관련된 노동자가 전체 약 4만8천 명, 이 중에서 일반직공무원을 제외한 2만 7천 여 명이 우정노조에 소속되어 있다.
배 수석은, ‘문제는 우정노조’라고 지적한다. “조합원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면 그건 노조가 아니잖아요. 작년에 우정사업본부에서 토요근무제를 부활시키겠다고 했거든요. 당연히 현장조합원들은 반대했죠. 누가 토요일에 근무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우정노조 위원장이 직권조인 했어요. 얼마 전 대의원대회에서는 위원장 직선제를 실시하자는 안건이 또 부결됐죠. 조합원 90퍼센트 이상이 찬성하고 심지어 위원장 공약이었는데도 말이죠.”
우정노조에 대한 강한 불신이 느껴졌다. 우정노조는 ‘59년의 역사동안 한 것이 없는 노조’, ‘현장 문제에 침묵하는 노조’, ‘조합원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조’였다. 우정노조의 ‘노조답지 못한’ 행동은 결국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눈 앞에서 빼앗기는 사태로 이어졌다.
‘80만원 월급 받는 사장님’의 노동조합 결성기
2011년 동서울우편집중국의 비정규직 우정실무원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 해에는 고양우편집중국 우정실무원들이 가세했다. 이들은 함께 민주노총 가입을 택했고,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2013년에는 재택집배원지회, 이어서 2015년에는 우체국시설관리단지회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배 수석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그는 원래 자신이 일하던 양천우체국만 알았지 다른 곳의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을까?
2013년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명목으로 재택집배원을 위탁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로 분류해 사업소득세를 내도록 했다.
“기존에 위탁계약서를 썼는데 저도 그렇고 주부들이라 잘 몰랐죠. 어차피 대부분 6시간으로 계약해서 10년 넘게 일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사업소득세를 징수당하니까, ‘어? 왜 내가 개인사업자야?’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배정필 수석부지부장은 사업소득세 강제징수가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노동청에 진정도 내봤다고 한다. 그 즈음 전국우편지부가 그녀의 삶에 문을 두드렸고, ‘월 80만 원짜리 사장님’은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노조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날이 2013년 5월 18일이었어요. 인터넷 검색하다 전국우편지부의 성명서를 본거죠. 우리도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재택집배원들을 지지한다고 응원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누군지 몰라도 우체국에 비정규직이 많이 일하고 있고 노동조합이 있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 생각을 하니까 엄청 고맙고 큰 힘이 되었거든요. 이렇게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서 무작정 전국우편지부의 1박2일 워크숍에 찾아갔어요. 그 때 처음 만났죠. 거기서 비정규직의 실상을 배웠고,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뭐든지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어요.”
배정필 수석은 일터를 새롭게 보게 됐다. 그리고 2013년 9월, 재택집배원지회 설립에 앞장섰다.
변화의 중심에 선 전국우편지부
확실히 ‘민주노조’ 전국우편지부는 달랐다. 깜깜한 밤 같았던 비정규직의 삶에도 해뜰날이 찾아왔다.
우편집중국과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분류하는 우정실무원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조근(07-16시)/중근(15-24시)/야근(23-08시)으로 24시간 풀가동하는 체계인데, 최저시급을 받기 때문에 언제나 박봉이었다. “야근하는 사람들 중에 수면장애, 알코올중독이 많아요. 생활패턴이 무너져서 잠이 안 오니까 술을 마시거든요. 야근은 2급 발암물질이라죠? 그런데도 야근을 선호해요. 낮에 일하는 것에 비해 시급이 1.5배니까.”
수당이나 보너스는 꿈도 못 꾸던 이들이 겁도 없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확 바뀌었다. 곧바로 다음 해, 정규직만의 특권이었던 경영평가성과금을 기본급 대비 70퍼센트(정규직은 140퍼센트)로 얻어냈고, 올해 110퍼센트까지 올랐다. 전국우편지부는 명절보로금(보너스), 복지포인트, 유급공휴일, 직무수당까지 연달아 따냈다. 올해는 근속수당(연1만원 상승)과 유급병가(1개월)까지 신설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배 수석은 성남우편집중국에서의 투쟁을 꼽았다. 지난해 성남에서는 통상우편물 업무를 안양으로 이관하고, 소포업무만 남기는 조치가 있었다. 그러자 우정실무원들에게는 큰 문제가 생겼다. 특히 4시간 근무자들에게는 더욱 문제였다. 4시간 일하기 위해 4시간을 출퇴근에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그래도 고용승계는 해주지 않았냐며 생색내기에 바빴다. 이를 부당하다고 여긴 3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투쟁을 시작했다. 경인우정청, 성남우편집중국 앞에서 연일 1인시위를 하고, 기자회견, 국회토론회, 의원실 방문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우정사업본부는 계속 ‘어떻게 당신들만 원하는 데 보내줄 수 있냐’며 거부했지만, 끝까지 맞섰어요. 결국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집 근처 우체국으로 다 배정받았어요. 업무도 똑같은 우편물 분류업무로요.”
투쟁의 성과는 조합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지역까지 소문이 퍼지면서 부당하다고 생각만 했지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의 인식까지 바꿨다. “소문이 쫙 나는 거예요. ‘보내줄 수 있는데 안 보내준 거네?’, ‘그러면 우린 왜 안 보내줘?’ 이렇게요. 투쟁이라는 것이 열심히 싸운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게 노동조합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만큼 우편지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감은 증폭되었다.
“조합원이 자꾸 늘어 셀 수가 없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은 우체국, 우편집중국 및 물류센터, 수련원에서 근무하는 미화원, 기술원, 경비원, 안내원으로 구성된다. 임원 및 정규직 직원의 수는 40여 명에 불과한데 비정규직은 50배가 넘는 약 2500명에 이르는 비정상적 구조를 지닌 공공기관이다.
우체국시설관리단지회는 2015년 1월 60여 명으로 설립하자마자 갖은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대표교섭노조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급성장하여 ‘비정상을 정상화’시키고 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지회는 현장소장들이 만들었어요. 현장소장도 비정규직 월급에 수당 몇 푼 더 받고 관리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처우개선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람 늘려달라, 물품 사달라 요구하는데 사측에선 들은 척도 안 한 거죠. 그러니까 현장소장 몇명이 이건 아니지 않나 해서 찾아온 게 우리 전국우편지부예요.”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끝나자마자 탄압이 시작됐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은 노조결성을 주도했던 이들에게 ‘업무시간 중에 휴대폰을 만졌다’는 시답잖은 이유로 ‘독방 인사대기’를 시켰다. 노조는 매일 피켓팅, 선전전을하며 부당함을 알렸다. 결국 인사조치에서 풀려났지만 현장소장 자리는 내놓아야 했다. 이 때문에 잠시 현장 분위기가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우편지부는 우체국시설관리단의 특수한 위치를 투쟁의 디딤돌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일대다 구도의 원청-시설관리업체와 달리, 우체국시설관리단은 우정사업본부의 시설관리 업무를 일대일로 위탁받으므로 대체할 수 있는 경쟁상대가 없다고 판단했다.
“노동조합 가입해서 시끄럽게 하면 위탁계약 자체를 못 할 수 있다는 소문을 사측에서 돌렸어요. 하지만 전국 모든 시설관리유지 업무를 맡고 있는 조직을 함부로 할 수가 없죠. 우체국시설관리단도 공공기관이거든요. 그래서 더 자신감 있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지회의 투쟁이 승리할 때마다 현장에는 ‘우리 요구가 정당하면 이길 수 있구나’라는 희망이 확산됐다. 백전백승, 희망이 커질수록 조합원들의 헌신적 활동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만큼 노동조합 가입률도 높아져갔다. 현재 전국우편지부의 조합원 수를 묻자 배 수석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요. 750명이 넘는데, 매일 조합원이 늘고 있거든요.”
좋은 소식들
올해 들어 전국우편지부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일이 많다.
첫 번째 소식은 지난 2월, 법원에서 들려왔다. 법원은 재택집배원이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위탁계약’의 부당함에 맞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고자 2014년 3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시작한 지 근 2년 만에 들려온 승전보다.
“아직 끝이 아니에요. 우정사업본부가 항소했거든요. 그래도 1심에서 승소하니까 방관하던 재택집배원들이 굉장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다들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거든요. 꼭 이겨서,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진실이 승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전국우편지부는 항상 부당함에 맞서왔고, 그러면서 이만큼 성취해온 조직이거든요.”
두 번째 소식으로 4월 13일 ‘전국집배노동조합’이 출범을 알렸다. 우정사업본부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국우편지부가 담당해왔다면, 정규직들 내에서도 오랜기간 우정노조의 ‘노조답지 못함’을 폭로하며 우정노조를 민주화시키고자 했던 현장조직 체신민주노동자회가 있었다. 우체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민주노조인 전국집배노동조합의 출범으로 전국우편지부로서는 더욱 든든한 아군을 얻은 셈이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은 다양한 직종·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의 요구를 포괄하고 우정사업본부의 비정규직 차별, 구조조정 전략에 맞서겠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자기 조합원에게도 무관심했던 우정노조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전국우편지부와 전국집배노동조합이 전국공공운수라는 지붕 아래 모이면서 ‘우정노조의 대안세력’의 결집이라는 목표를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차이를 넘어 함께 싸워야”
배 수석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민주노조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고 모두 함께 괜찮아야 된다는 거. 약자들은 뭉쳐야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현장조합원의 요구와 우편서비스의 공공성을 지켜내려면 뭉쳐서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직종의 차이를 넘어,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를 넘어 우리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거예요. 거기다가 집배원이라면 택배노동자와, 비정규직이라면 다른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도 연대하며 함께 힘을 모아야겠죠.”
회사 눈치보랴, 어용노조 눈치보랴 웅크리던 시절은 이제는 지나간 얘기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비정규직부터 정규직까지, 우체국에 민주노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 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칠 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