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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 제16호

뜻밖의 여소야대 국면, 사회운동이 주도해야

4.13 총선 평가와 이후 사회운동의 대응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4월 13일 총선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새누리당은 출구조사 예상의 최소치를,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최대치를 획득했다. 총선 직후 <한겨레> 정치팀 좌담을 보면 한 기자가 새누리당 149석을 예상한 게 가장 근사치였다고 말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할 수 있다는 예상만도 대단한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여론조사와 투표결과의 거대한 괴리는 다양한 함의를 품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예상치 못한 새누리당의 참패, 새누리당이 의석수조차 더민주에 뒤진 결과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사회운동은 현 국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새누리당의 참패, 그 원인은?

전반적 여론 추세를 보면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이 극에 달한 시점에 새누리당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했다. 새누리당의 비상식적, 퇴행적 행태가 표심의 ‘역린’을 건드린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원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여러 가능성이 회자되었다.

첫째, 청년층 ‘앵그리 보터’(분노한 투표자)가 판세를 바꿨다는 분석이 있다. 사전투표에 참여한 20대는 전체 20대 유권자의 17.9퍼센트로 평균보다 5.7퍼센트포인트 높았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투표율도 49.4퍼센트로, 19대 총선의 41.5퍼센트에 비해 7.9퍼센트포인트 높았다. 또한 출구조사 결과, 19대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선 20대의 59.8퍼센트가 야권(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에 투표했으나, 이번 총선에선 76퍼센트가 야권(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에 쏠렸다. 

이른바 ‘흙수저론’이 상징하는 것처럼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청년층의 좌절감을 표현하는 담론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거듭된 인사청문회 파동에 드러난 것처럼 새로운 세대의 좌절감에 무감각한 특권층으로 보였을 것이다. 청년정책이라는 것을 발표하긴 했으나 대부분 별로 성과가 없던 정책을 다시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새누리당이 새로 제기한 쟁점이 있다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었다. 고령층 고용을 축소하거나 그들의 임금을 삭감하면 청년고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강변일 뿐, 세계 어디를 보아도 경험적 근거가 없다. 

둘째, 2016년 기업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공업도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우려가 컸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조선, 해운,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5대 기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채권은행단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할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4월 11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지원 유세에서 “현대중공업 가족들이 구조조정 없이 일하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조선업과 울산을 특별고용업종 지원 및 특별고용지역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 역시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이나 쉬운 해고는 더 이상 없다”며 노동개혁 법안 반대를 주장했다. 그만큼 구조조정, 인력감축에 대한 주민의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노동사회교육원이 최근 발표한 <창원공단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과 노조의 대응>을 보면, 경남에서는 조선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신아, 성동, STX조선, 대우조선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으며, 공단 내 영세사업장은 임금체불이 구조화되다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셋째, 수도권에서 전월세난으로 대표되는 주택난, 생활고가 정부와 여권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회고해 보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서울에서 뉴타운사업, 아파트재건축 규제완화와 같은 재개발사업과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같은 부동산정책이 선거 쟁점을 지배했고, 한나라당이 서울에서 대승을 거두었다(한나라당 40석, 통합민주당 7석).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값은 큰 변동이 없었고, 반면 전셋값이 30~40퍼센트 상승했다. 그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서는 오히려 ‘하우스 푸어’(대출로 집을 샀으나 집값 하락으로 이자도 부담하기 어려운 집단) 문제와 전월세 대책이 핵심적인 부동산 이슈로 떠올랐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행복주택’ 20만 호 공약을, 문재인 후보는 공공임대주택 거주 가구비율을 10~15퍼센트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월세 상승은 박근혜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져 강남 11개 구 전셋값은 2011년 6월 2.9억 원에서 2016년 3월 4.7억 원으로, 강북 14개 구 전셋값은 같은 기간 2.0억 원에서 3.2억 원으로 상승했다. 또한 수도권의 월세전환가(보증금과 2년간의 월세를 합산한 가격)도 2011년부터 2015년까지 60퍼센트 상승했다. 반면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제시한 주거공약은 매우 소극적, 미온적이었다.
 
 

새누리당, 무반응의 정치

어찌 보면 청년실업과 고용불안, 주택난과 같은 경제현상은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왜 민심에 대해 아무런 ‘반응성(정치학에서 반응성이란 정책이 대중의 욕구, 선호, 가치를 만족시키는지 여부를 뜻하는 개념이다)’을 보이지 않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라는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 신년담화문에서 과거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평등사회 추구’(차별없는 사회), ‘경제민주화’, ‘사회적 약자 보호’(나눔사회)와 관련된 키워드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유승민 원내대표가 증세와 복지, 비정규직 보호, 사드도입 여부 공론화를 내세우자 이를 ‘배신의 정치’로 규정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당의 마비, 또 한편으로는 관료집단의 부동주의를 초래했다. 

둘째, 오늘날 일반화된 정당과 대중의 괴리, 그에 따른 정당의 성격변화를 들 수 있다. 이를 묘사하는 하나의 개념이 카르텔(담합) 정당이다. 정당에 대한 대중의 참여와 개입이 쇠퇴하면서 정당은 정치시스템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국가가 제공하는 자원, 한마디로 국고보조금에 점점 더 의존한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반면 당원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전문가, 기술관료가 정당에서 지배적 위치에 오른다. 정당 간의 일반적 관계는 경쟁보다 담합, 협력이 우세해진다. 핵심적인 경제·사회정책에서는 정당 간 협력이 근간이 되고, 정당 간 대립은 종교적·문화적 이슈와 결합된 일종의 ‘문화전쟁’으로 비화되곤 한다. 한국에서는 역사교과서 갈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정당과 정치인이 마치 반응성이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결정된 정책을 실제보다 더욱 여론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교활한’ 이야기를 구사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직자 후보, 당직자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프라이머리나 여론조사를 도입하는 것도 반응성을 가장하는 사례다. 전문가, 관료가 지배하는 정당에서 그러한 기법은 인기투표와 유사한 것이므로 민주적 참여의 확대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제 여론조사는 정책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정책의 포장을 바꾸려는 의도로 수행된다. 4.13총선을 앞두고는 여론조사 결과마저 실제 현실과 괴리된 상태였기에, 아마 새누리당은 어떤 반응성을 가장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운동, 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새누리당 지도력의 내적 붕괴,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은 불가피해 보인다. 새누리당의 주요 대선후보는 모두 낙마했고 살아남은 김무성 대표도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 정치행태를 보면, 집권 후반기 대통령은 여당에서 한 발 물러나 여당에 청와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흐름을 허용함으로써 정권재창출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돕거나 최소한 용인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물론 집권 후반부에 초대형 비리사건이 폭발하거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또는 양자가 맞물리면서 대통령의 레임덕이 발생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통령이 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선을 1년 반 앞둔 총선에서 이와 유사한 어떤 흐름도 없었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동반 추락 가능성이 발생한다. 친박계나 박근혜 대통령 모두 선거패배 가능성을 대비한 ‘플랜B’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 의원 수는 전체적으로 크게 감소했지만 친박계의 비중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그들이 당내 패권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에 따라 새누리당은 최소한 당분간,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공산이 커 보인다. 

반면 야권공조를 통한 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부풀어 오를 것이다. <경향신문>은 ‘야 3당 공통공약 18개, 이것만 지켜도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기사를 냈다. 공통공약은 테러방지법 개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부터, 대기업·중소기업 초과이익공유제, 하도급 갑질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에다가 불법파견 근절, 동일노동·동일임금 법제화까지 광범위하다. 
 

1988년 여소야대 국면을 회고해 보면, 1987년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후 1988년 여소야대 국면이 등장하자 억눌린 대중의 변화 욕구가 폭발했다. 이에 조응해 야당은 노동법 개정이나 농가부채 탕감을 추진했다. 행정부는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야당 중 가장 보수적인 공화당(김종필)이 중재역을 맡거나,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가까스로 이를 저지했다. (그 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삼당합당으로 여소야대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 국면을 1988년 여소야대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는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라는 대중운동의 분출이 여야의 변화를 추동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더민주-국민의당의 상호작용을 통한 보수화 기조 강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종인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시킨 더민주는 원내활동을 보수적 기조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다수파인 친노그룹은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두며 이를 방조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선택적 협조라는 태도를 취하여, 오히려 새누리당과 합작해 더민주를 압박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보수언론은 한 목소리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에 ‘합리적 중재’를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기조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김종인 대표는 4월 20일, “근본적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선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며 “지나치게 과잉 시설을 갖고 있는 분야는 과감하게 털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총선 후 정책추진과제에 대한 그의 첫 번째 목소리가 구조조정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카르텔 정당 모델과 비견해보면, 전문가-관료가 주도하는 정당이 선거가 끝난 후에는 이미 행정부가 결정한 의제를 정당 간 협력을 통해 관철시키려는 모습인 셈이다.

또 하나 예를 들면,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4월 17일 임시국회에서 큰 쟁점이 없는 노동3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근로기준법)을 먼저 처리하고 파견법은 노사정위 합의로 넘기자고 제안했다. 과연 노동3법은 큰 쟁점이 없는지, 노사정위에서 파견법 합의가 가능했다면 문제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즉각 의문이 든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처음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을 보면, 그 효과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여소야대 초기 대응이 중요해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은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분명히 표현되었다는 사실과 야당의 보수기조로의 전환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여소야대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변화의 욕구가 표출된 점을 고려해 대중운동의 주체적 조건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상징성이 큰 쟁점에 역량을 집중하여 여소야대의 초기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대중운동이 침체된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거나, 최소한 더민주-국민의당 야권과 쟁점을 형성함으로써 향후 국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19대 대선에서는 어느 때보다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될 것이다. 하지만 1988년 국면과 비교해 볼 때 대중운동의 역량, 영향력은 여러 계기를 통해 약화되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차기 대선에서 야권후보를 지지하라는 일방적인 압력이 커질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 노동조합을 야권 정당의 종속적 파트너로 포섭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어떻게 여소야대 국면의 초기에 사회운동, 노동조합이 장기적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가. 예상하지 못한 여소야대 국면은 사회운동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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