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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 제15호
절망과 애도 사이
세월호 참사 같은 거대한 재난 앞에서 예술은 불능일 수밖에 없을까? 나는 예술이 어그러진 사회의 구조와 규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사회 구축과 같은 조율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거대한 절망에서 사회적 애도를 조금씩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절망 앞에 선 예술은 무엇으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열린 흑표범 작가의 전시 <VEGA>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체육관에 계셨던 어머니들을 그린 삼베천,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가 평소 수집했던 아들의 물건들과 그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업 몇 개가 어우러져 있었고, 전시 기간 중 진행된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팽목항에서 가져 온 이불을 덮고 앉아 한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그저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 동안 타인의 절망을 미력하게나마 기꺼이 품에 안아보는 예술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순환을 염원하고 요청하는 것 같았다. 어떤 예술은 절망에 빠진 삶 곁에 더불어 존재하면서, 사회적 애도가 흘려버린 수많은 개인의 고유한 삶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 큰 힘을 보탠다.
(시각문화 리뷰 <두쪽>의 '흑표범 개인전 VEGA리뷰 : 절망과 애도 사이'에서 발췌)
원문 http://twopage.kr/wordpress/archives/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