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04 제15호
동료 잃은 노동자들의 피끓는 마음
유성기업지회 한광호 열사를 추모하며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뭐랄까, 맘속을 맴도는 여러 말들이 있는데 그 말들이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오늘(3월 24일) 영동공장 결의대회에 앉아 훌쩍 거리면서 그 말들을 끄집어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잘 싸운다”, “그래도 형편이 다른 투쟁사업장에 비해 낫지 않나”는 얘기를 한두 번씩은 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유성기업지회 투쟁에 연대하고 조합원들과 친해져 술 한 잔 나눌 때 그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유성지회는 조합원들 다수가 해고당해서 공장 밖으로 쫓겨나거나 어용노조에 밀려 조합원이 소수만 남은 상황은 아니지 않나’, ‘투쟁이 길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피로가 있지만, 현장에 조합원들의 힘이 남아있으니, 서로 의지하면서 싸워나갈 수 있지 않느냐’고…. 그래.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유성지회 조합원의 가족이 되면서 좀 더 적나라하게 조합원들의 상황을 보게 되고, 나 또한 직접 겪게 되었다. 가정 파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 같이 이미 알려지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을 실제 내 문제로 겪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침 8시 30분, 출근하는 순간부터 겪는 감시와 탄압, 차별적 대우, 교묘하게 자행되는 폭력. 이런 부당함에 항의하는 지회의 투쟁이나 쟁의행위는 회사를 망치고 말아먹는 행위로 매도되고, 뒤이어 회사는 경고와 징계, 고소·고발을 진행한다. 1개월, 3개월 출근 정지는 이제 징계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조합원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일하는 중간에 경찰 조사나 재판을 받으러 나간다.
지옥 같은 회사,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사람이 집에서라고 괜찮을 리가 없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폭발하고, 싸움이 잦아지고, 큰 소리가 나고, 늘 살얼음판을 걷는다.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는 게 이상할 일이다. 우리 집 현관문엔 매주 서너 번씩 검찰 천안지청의 등기가 왔다는 우체부의 쪽지가 붙는다. 퇴근하면서 처음 보는 게 그 쪽지라면,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달을 계속 그렇다면 스트레스가 안 될 리가 없다. 조합원들은 이런 일상을 6년째 살고 있다.
죽을 만큼 가기 싫은 회사. 맞다. 정말 가기 싫어한다. 조합원들은 회사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회사를 나가는 건 흔히 생각하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물론 돈 문제가 사소하거나 쉬운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다면 어용노조에 가거나 그만 두면 될 일이다. 이 사람들이 지옥 같은 회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심으로 민주노조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기 싫어도 자신이 그만두면 조합원 수가 줄고, 싸움이 약해지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회사 정문을 넘는다. 또는 “억울해서”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없고 민주노조가 죄도 아닌데, 죄지은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포기해야 하는가! 이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끔찍한 일상을 매일 겪으면서도, 가정과 관계가 망가짐을 감수하면서도, 우울증에 괴로워하면서도 민주노조를 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광호 열사를 죽인 건 바로 유성기업 사측이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라 강요하며 온갖 괴롭힘과 탄압을 자행했으니 유성기업이 죽인 것이고, 그것을 뒤에서 사주한 현대차가 죽인 것이다.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개소리로 일관하는 그 뻔뻔함과 무례함에 치가 떨린다.
오늘 영동공장에서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정문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던 조합원들을 보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한 뼘은 낮아진 어깨, 떨군 고개…. 이들은 이제 동료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외롭게 보냈다는 죄까지 마음에 얹었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가. 죄 지은 놈들은 따로 있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도 않는데, 왜 이들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이 말들은 유성조합원들이 엄청, 다른 어디보다 더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한광호 열사의 죽음이 노조 탄압으로 인한 타살이라는, 당연하다는 듯 말해지는 그 선언의 속내를, 조합원들이 숨죽이며 삭히고 있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말하고 싶었다. 과연 내가 조합원들의 경험과 마음을 말할 자격이 되느냐는 걱정과, 내 짧은 경험으로 유성동지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게 오히려 누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있지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제발 손을 내밀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자신이 약해지면 옆의 동료들이 걱정하고 약해질까봐, 아프다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 투박한 이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시길 부탁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