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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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 제15호

파견노동자 빛을 잃다

100년 전 산업재해가 2016년 대한민국을 습격한 까닭

  • 이아림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조직국장
최근 몇 달간 20대 노동자 5명이 공장에서 메탄올을 흡입하여 시력손상을 입었다. 4명은 부천 소재 2개 공장에 다녔고, 나머지 한 명은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휴대전화 부품 공장의 파견 노동자였다. 메탄올로 인한 시력손상은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재해이자, 후진국형 산업재해로 국제적으로도 1960년대 이후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번 사고는 돈 몇 푼 아끼려다가 젊은 노동자들의 시력을 빼앗아 간, 인재다. 메탄올은 보다 안전한 물질이 있음에도, 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유화제, 세척제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메탄올이 이처럼 위험한 것인지,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별로 없다. 감추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끔찍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다단계 하청구조,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법이 만연한 공단, 제조업 불법 파견 노동을 모두 바꿔야 한다. 이런 문제의 중심에는 공단에 위치한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왜 그리도 위험에 쉽사리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까.
 

불법파견이 산재를 부채질한다

사실 제조업은 파견노동 자체가 불법이다. 그런데 파견법에 예외 항목으로 존재하는 “일시 간헐적 사유”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시 간헐적 사유를 들어 6개월간 파견노동을 사용한 후 반복해서 갈아치우는 것이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많은 경우에는 전체 공장 인원 대비 20퍼센트가 넘는 파견 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고용하고, 6개월이라는 파견 기간도 위반하기 일쑤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과 <남동공단 권리찾기 노동자 119>이 작년 10~11월에 진행한 ‘파견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공장 인원 대비 파견 노동자의 비중이 50퍼센트가 넘는 경우가 49퍼센트에 해당했다. 몇 개월 단위로 물갈이 되는 노동자들이 절반에 가까운 회사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천지역 공단에선 둘 중 하나의 공장에서 이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공단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한 충분한 안전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산재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에서 근속년수 1년 미만의 단기 노동자들은 35.9퍼센트(2012년 OECD 평균 17퍼센트)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공단 노동자들은 이보다도 더한 45퍼센트가 근속 1년 미만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꼴찌는 파견 노동자들이다. 인천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의 ‘파견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의 56퍼센트가 자신이 6개월 미만의 초단기 근무자라고 응답했다. 파견노동자의 이력서에 빼곡히 쓰이는 수많은 회사들이 말해주는 웃픈 현실이다. 
 
 

기침 한 번 했다고 해고

누군가에게 해고는 일생일대의 위기일 수 있지만, 공단에서는 아니다. 파견노동자들에게 해고는 밥 먹는 것만큼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5년 메르스가 번졌을 때, 한 여성노동자는 기침 한 번 잘못했다가 “야, 너 메르스야? 당장 나가!”란 소리를 들으며 회사에서 쫓겨났다.

관리자의 눈 밖에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쫓겨나는 건 다반사다. 공단은 법보단 주먹이다.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파견업체에 따졌더니, 다음날 바로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법으로 보장되어있는 연차 휴가를 쓰겠다고 했다가 “그럴 거면 그냥 나오지 말고 푹 쉬던가”라는 협박도 흔하다.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100명이나 되는 부서 전체를 통으로 해고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부서가 복구되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견 노동자를 자르는 것도 쉽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노동자들을 구해오는 것은 더욱 쉽다. 밀물처럼 매일 매일 새로운 파견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썰물처럼 나가는 와중에,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할 필요 없는 수많은 파견 노동자들이 공단을 떠돌고 있다. 
 

물량에 따라 짤리고 취업하고

공단에 불법적인 파견 노동이 횡횡하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같은 짧은 주기의 전자산업 시장의 수요 변화에서 기인한다. 물량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다. 이번 메탄올 사고의 원청업체인 삼성과 LG와 같은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물량 수주를 받기 위해 하청업체들은 노동자들을 파견이나 계약직으로 고용한다. 그리고 물량이 줄어들면 가차 없이 해고한다. 제품 교체기에 따른 위험성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짊어지는 것이다. 

여러 사업장을 전전하는 파견노동자들에게 상세한 업무 정보를 전달하거나, 안전교육을 받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워낙 많은 인원이 들락날락 거리다 보니까 사용 업체도,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파견업체도 파견노동자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하물며 안전이라니. 노동자 입장에서도 위험해 보이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 문제를 제기하여 바꿔보려고 하기보다는 근무지를 변경하는 편이 속 편하다. 실제로 노동부는 메탄올 사고가 났던 회사를 거쳐 간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예견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메탄올 실명 사고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기존에 메탄올을 사용했던 사업장에서 대체 물질인 에탄올로 바꾸고 있다. 노동부에서도 메탄올을 사용하는 사업장 점검을 확대하고, “원청이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협력업체의 유해·위험요인을 자율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불법 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청업체에서는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지게 되면 다시금 비용절감 압박에 굴복할 것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그런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노동부 집중 단속 기간에만 메탄올을 감춰두다가, 단속 기간이 끝난 이후 버젓이 다시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 

결국 “자율적으로 개선”시키겠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관계당국은 메탄올 단속에만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공장마다 제대로 된 보호장비(국소 배기장치, 보호구 등)가 갖춰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메탄올뿐만 아니라, 다른 유해물질이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제도 개선 대책과 감독 계획이 있어야 한다. 

가장 효과 높은 재발 방지 대책은 파견직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줄이고, 안전한 노동환경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파견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란 매일 도사리고 있는 일상 속 재앙이다.

여기에 파견노동을 더욱더 확대시키겠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노동개혁법안’이 통과된다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파견 노동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19세기형 안전 사고를 반복할 것인지 끝낼 것인지, 파견노동을 늘릴 것인지 줄일 것인지를 둘러싼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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