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6/04 제15호
구조조정은 더 쉽게 손실은 나 몰라라
원샷법·기업구조조정촉진법 분석
커튼이 걷히고 드러난 위기
재벌들의 수익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로 추정해보면 30대 재벌의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2014년 현재 4퍼센트에 불과하다. 2000년대 내내 7~10퍼센트를 유지한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다. 그나마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2퍼센트로 더 하락한다.
최근에는 삼성과 현대차마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다른 재벌들은 더 말한 나위도 없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30대 재벌 중 17개 재벌의 핵심계열사가 좀비기업(이자 갚을 여력도 안 되는 기업)이 됐다. 한진그룹의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두산그룹의 두산인프라코아, 두산건설, 한진중공업그룹의 한진중공업, LS그룹의 LS네트웍스, 동부그룹의 동부제철,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코오롱그룹의 코오롱글로벌 등이 대표적이다. 재벌들의 주요 계열사가 많은 조선, 건설, 철강 등에서는 아예 산업 내 30퍼센트 이상의 기업들이 좀비기업으로 분류될 정도다.
원샷법, 삼성과 SK에 적용 가능
재벌들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정부는 상시적 구조조정을 위한 각종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기업매각과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하 ‘원샷법’) 도입, 좀비기업 퇴출시키기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기간 연장, 일상적 해고를 가능케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그것이다.
원샷법은 정상적인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선제적으로 사업부를 합병하거나 분할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원샷법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업의 합병이나 분할 절차가 간소화된다. 합병회사가 피합병회사 주식의 90퍼센트 이상을 보유했을 때 가능하던 ‘간이 합병 기준’을 3분의 2이상 보유로 완화하여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승인으로 합병이 가능해졌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의 지분 72퍼센트를 확보하고 있어 삼성카드를 흡수합병할 때 주주총회를 열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완화로는 지주회사가 증손회사(손자회사의 자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 지분율을 100퍼센트 확보해야하는 기존의 규정을 50퍼센트로 낮췄다. SK그룹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지만 손자회사 지위에 있어 100퍼센트의 지분확보 조항 때문에 인수합병에 나서기 어려웠던 SK하이닉스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그런데 원샷법은 이처럼 재벌그룹사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혜택까지 주는 반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은 빠져있다. 원샷법의 모델인 일본의 산업경쟁력 강화법은 노동조합과 충분하게 협의하고 사업재편에서 고용안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한국의 원샷법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경영진 보호하고 노조는 탄압하고
기촉법은 재무적 위기에 빠진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파산법에 근거하여 법원 주도로 진행되는 기업회생 절차와 달리 기촉법은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에 대한 법적인 근거다. 지난 2월 국회에서 기촉법은 효력이 2년 6개월 연장되었고, 적용대상이 신용공여액 500억 이상 대기업에서 모든 기업으로 확대됐다.
기촉법은 구조조정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 대한 손실보전 관련 규정은 없는 반면, 이해관계자인 노조에겐 백지위임장과 같은 동의서를 제출하게 한다. 기촉법에 근거한 워크아웃 과정에서 노동자에게는 손실부담을 전가하고, 경영진에게는 국책은행 지원으로 부채를 탕감하고 경영권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채권금융기관 워크아웃 기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상반기 사이에 워크아웃이 개시된 기업 중 80퍼센트가 최대주주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주주와 회사의 자구노력은 채권단 지원액의 52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은 부실경영의 책임을 경영진에게 묻거나, 노동자에게 일방적 부담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조치가 없어 과거의 문제를 고스란히 답습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매매 활성화
기촉법과 통합도산법에 근거한 공적인 구조조정과 달리 시장을 통한 사적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즉 기업 매매 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위원회는 유암코(금융기관의 부실자산과 채권을 사들여 처리하는 배드뱅크로 민간은행의 공동출자로 설립)의 기능을 확대하여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운영하고자 한다. 유암코가 민간자본과 공동으로 출자해 기업재무안정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채권은행으로부터 부실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사들여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말 사모펀드 활성화법을 통과시켰다. 투자 기준액을 낮추고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는 등의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분할과 합병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킨 원샷법 역시 사모펀드 시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투자기업을 구조조정하여 기업 가치를 높인 후 매각하여 수익을 올린다. 따라서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사업부문을 여러 개로 분할 매각하거나 구조조정을 자행해 대규모 해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기업 내부의 이익을 배당으로 빼가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상시적 구조조정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구조조정이 원활하려면 노동자를 해고하기 쉬워야 하고, 해고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노동자 보호 조치는 뒷전
원샷법의 핵심은 세제 혜택도 있지만 무엇보다 구조조정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서 시뮬레이션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분할의 경우 기존에는 최고 빨라도 79일이 걸리던 게 원샷법이 시행되면 51일로 줄어든다. 별게 아닌 것 같아도 기업 재편에 대응해야 하는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고용 및 노동조건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기간이다.
몇 년 전까지 장기투쟁을 했던 대우자동차판매는 회사가 2006년 8월 승용차판매부분 사업분할 발표를 하기 전에 3개월 가까이 10차례 이상의 교섭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입장차가 컸고, 회사는 일방적으로 사업 분할을 시작했다. 노조가 9월에 분할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법적 대응을 했지만, 그해 10월 회사가 일방적으로 대상 노동자들을 발령했고, 11월 법원이 사측 손을 들어줬었다. 이후 과정은 알려져 있다시피 사측이 사업 분할 대상 노동자들을 해고하며 10년 가까운 장기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 법으로도 이 지경인데 기업(사업) 분할이나 합병 매각을 최소한의 법률적 규제로 지원하는 원샷법이 시행되면 노동자가 겪게 될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원샷법처럼 회사가 공개 절차도 제대로 없이 사업 분할을 일방적으로 빠르게 하게 되면 법적 대응은 고사하고 관련 교섭을 할 시간도 없게 될 것이다.
사업 분할시 고용 및 노동조건 변화를 연구한 보고서(임상훈 박용철, 《사업분할시 노동자보호의 문제점 및 정책적 시사점》, 2014)에 따르면 “기업의 조직변경에 관한 규정은 현재 민법과 상법에서만 규율하고 있는데다 물적재산에 대한 규정만 있는 실정이라 노동자 보호 문제는 당사자 간의 특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노사 간에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고,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근로조건저하에 직면하게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원샷법은 이런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임금 강탈 수천억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리한 법인지는 이미 많은 구조조정을 통해 증명된 바다. 가장 최근에 기촉법을 이용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금호그룹 사례를 보자.
금호그룹은 박삼구, 박찬구 전 회장들의 무리한 인수합병과 경영권 다툼으로 2010년 해체되었다. 두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해 계열사를 동원해 무리하게 빚을 가져다 썼고, 2009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자 금호석유화학,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의 주요 계열사들 모두가 워크아웃 상태에 빠졌었다. 그런데 현재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 손에,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 손에 있다. 그리고 금호산업과 그 계열사들(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금호터미널)은 곧 박삼구 회장 손에 다시 되돌아갈 예정이다.
워크아웃 기간 이해관계자들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결국 노동자만 손해를 봤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워크아웃 5년간 실질임금 삭감으로 6000~8000억 원 수준의 인건비를 기업 회생을 위해 내놨다. 하지만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은 순환출자 구조의 그룹에서 자신이 직접 소유한 주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도 별로 크지 않았다. 채권단 역시 크게 손해 없이 대부분의 채권을 회수해 갔다. 요컨대 워크아웃 기간 재벌 총수와 금융 채권단이 노동자를 족쳐서 빚을 받아내고 경영권을 지켰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워크아웃은 결론이 비슷하다.
이렇듯 자본과 정부는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제위기의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에 나섰다. 넋놓고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노동운동은 손실을 떠넘기려는 재벌에 맞선 투쟁으로 전선을 전면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