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6/03 제14호
노동운동은 더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는가?
더민주당, 착시 효과
반노동자 정당인 새누리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분열되어 있는데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제1야당인 더민주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오히려 새누리당을 당선시키게 될 것이라는, 협박조의 논리가 작동한다.
최근에는 안철수가 신당을 만들어 새누리당은 ‘수구 보수’, 더민주당은 ‘낡은 진보’라 부르고 자신은 ‘합리적 개혁’이라고 주장하면서, 더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다. 안철수가 중도를 사칭하면서 새누리당-국민의당-더민주당이 각각 보수-중도-진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더민주당은 역사적 경험으로 봐도 새누리당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시기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은 심화하는 한국 사회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도 없다. 기업특혜법인 원샷법을 새누리당과 함께 통과시켰고,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를 위한 정책에는 무관심하다. 한미FTA를 추진하고, 삼성그룹 사장도 한 김현종을 영입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을 비판하며 반사이익을 누리려고 하나, 더민주당의 정책 노선은 신자유주의이고 지배계급의 한쪽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바뀌지 않았다.
을지로위원회는 한계가 분명
더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건 을지로위원회나 몇몇 국회의원들의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조합과 민주당이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거나, 투쟁 현장에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찾아오는 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을지로(을을 지키는 길)위원회’를 만들고 ‘불공정사례에 대한 협상타결 및 정리’에 나섰다. 이 위원회는 46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되었고 전담 사무국을 두었다.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이 투쟁 현장에 찾아가 지지발언으로 조합원들의 사기를 높이기도 하고, 교섭 통로가 막혔을 때 돌파구를 만들기도 한다. 과거 진보정당이 해오던 역할을 제1야당이 하면서 실용적 측면에서 노동조합에 더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인권마저 무시하고 탄압하는 자본에 맞서 고공농성, 단식, 노숙농성 등 극단적 투쟁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에게는 을지로위원회의 역할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을지로위원회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개별 사안의 중재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사용자 측의 입장에 서거나, 노동조합의 요구를 사전에 통제하기도 한다. 또한 갈등 중재 역할에 비해 입법 성과는 적다. 을지로위원회가 더민주당 지도부와 당 전체를 움직이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몇 의원들이 개별적으로는 노동운동에 애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더민주당 안에서 이들은 결국 당의 논리에 따라 생존한다. 더민주당은 그 속성상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나, 호남에 근거지를 둔 지역 의원들 등 더민주당 주류는 노동조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도 종종 보인다.
현안 투쟁에서 맺는 관계를 넘어서, 노동조합이 돈과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더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들의 세계관에 노동운동은 부차적일 뿐이다. 더민주당에게 민주노총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 이상일 수 없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부가 더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물망에 오른다든지, 노동조합 내에서 공공연하게 더민주당 국회의원 후원을 조직하는 등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데 매우 위험한 일이다.
참여연대 출신인 김기식 더민주당 국회의원은 진보세력이 자유주의 정당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빅텐트론’을 펴기도 했다. 미국의 민주당처럼 이념과 노선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정당이라는 큰 우산 아래 다양한 세력이 결집해 보수정당의 집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과 미국 노동조합(AFL-CIO)의 결합은 미국 노동운동의 몰락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 노동운동과 민주당의 잘못된 만남
미국 노동운동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산별노조를 건설하고 작업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통제권을 요구했고, 강력한 총파업을 조직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1933년 300만 규모인 조합원이 6년 만에 3배인 900만으로 늘었다. 그러나 미국 노동조합은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들거나 지지하지 못했다. 대신 보수 세력의 위협을 막기 위해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과 연합했다. 그 대가는 형편없을 뿐 아니라 파괴적이었다.
1947년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한 노동법 개악으로 파업권이 축소되고 정치활동이 제약되었다. 1950년대 초반 반공 매카시즘에 자유주의자들이 동조하며 노조 내에 급진주의, 사회주의 세력이 제거되었다. 노동조합이 투쟁성을 잃고 체제에 포섭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1960년대 미국 경제의 성장기에, 노동조합은 자본가의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 대신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 인상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 경제의 불황이 시작되자 그런 혜택이 모두 사라졌다. 이후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대대적 공세에 노동조합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교섭력, 조직력, 정치력이 모두 약화되었다.
한국에서, 특히나 경제의 위기가 심각해지는 이 시기에 자유주의와의 연합은 노동운동에 파괴적인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운동이 성장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정치의 혁신
노동운동의 혁신과 강화는 진보정치가 혼란을 벗어나 사회운동을 강화하고 독자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것이야 말로 진보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분열과 일부 세력의 패권, 우경화 등으로 지난 역사는 실패로 이어졌다. 이번 총선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혼란과 현실적 무력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과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우리의 투쟁까지 무기력해질 수는 없다. 오늘날 노동정치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전망이 만들어져야 한다. 총선 결과에 갇히지 않고 총선 이후에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의 방향을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밝혀나가자. ●
김석기 지지와 사과문 두 장
공공운수노조 산하 한국공항공사노조 간부가 1월 27일 새누리당 김석기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해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국공항공사 낙하산 사장을 하다가 총선에 뛰어든 김석기는 누구인가? 5명의 철거민을 희생시킨 용삼참사의 책임자, 전 서울경찰청장이다. 이 일로 민주노총은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냈다.
그런데 사과문이 발표된 다음 날인 1월 31일,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기계지부 경주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김석기 사무실을 찾아가서 일부가 지지발언을 했다. 건설노조는 2월 4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가맹 노조의 간부들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고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새누리당을 지지한 것이다.
김석기는 ‘진보 보수를 떠나 경주 발전으로 뭉치자’고 외치고 있다. 이런 지역주의는 해당 지역 노동자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 발전으로 뭉치는 건 노동자들의 단결과 대립된다. 새누리당과도 협조할 수도 있다는 태도는, 노동자들이 각자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반면 노동정치는 단순히 기존 정치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증진시키고, 어떤 노동자 민중도 배제되는 일 없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철거민 또한 노동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억압받는 민중이다.
이번 사건은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다. 노동정치의 원칙이 훼손되었고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상실된 현실이 매우 뼈아프게 다가온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지적처럼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스스로 다그치고 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