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6/02 제13호

노조탄압의 백화점 한복판에서

매서운 한파 뚫고 투쟁하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장이전 저지 농성장에서의 하루

  • 이규철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사무장
2016년 1월 19일 새벽 1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농성장 침낭에 몸을 구겨 넣었다. 춥다. 영하 15도. 근래 만나지 못했던 추위다. 바로 위 철탑의 두 노동자는 얼마나 추울까 걱정이다. 발전기가 윙윙 돌아가고 침낭 밖으로 입김이 허옇게 나오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잠이 든다. 

공장에 전기가 끊긴 건 지난 1월 8일이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전기가 그냥 ‘뚝’ 끊겼다. 철탑에 올려둔 전기장판도 식었고, 노동조합 사무실 전기온돌은 차가운 쇳덩이가 돼버렸다. 오후 4시만 되면 농성장 모든 공간이 깜깜해진다. 밥도 못해먹고 설거지도 힘들어졌다. 

젠장할. 욕 나오는 겨울이다. 한전은 회사 측에서 이사를 가며 단전하라 해서 끊었다는 말뿐이다. 스위치 하나 내리면 그만이니까. 요샌 동절기에 단전·단수도 안 한다는데 노동자에겐 적용되는 일이 아닌가보다. 사람 사는 거 빤히 알면서 전기를 끊어버린 한전이 밉고, 그걸 사주한 하이텍 자본에게 새삼 분노가 치민다.

새벽 4시, 규찰을 섰다. 공장 안팎을 한 바퀴 둘러보고 모닥불을 살린다. 드럽게 춥다. 쉼 없이 나무를 태운다. 철탑에서는 바람에 비닐 날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온다. 바람 막으려 쳐놨던 비닐이 넝마가 되어버렸다. 침낭에 꽁꽁 들어가 있긴 하겠지만 어깨를 파고드는 찬바람이 많이 힘겨울 게다.

오전 6시. 노동조합 사무실에 전기가 나갔다. 발전기로 겨우 돌리고 있었는데 선이 끊겼나보다. 가보니 화목난로는 식어있고 어두운 사무실에 조합원 1명이 자고 있다. 깜깜한 밤이라 전기를 살릴 순 없고, 연대 온 노동자 한 명이 화목난로를 다시 피운다. 불은 안 붙고 연기만 자욱해진다. 사무실을 너구리굴로 만든 후에야 불이 제대로 붙었다.

농성장에 돌아와 침낭에 누웠다가 이내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에 자고 있던 조합원이 걱정이다. 연탄가스처럼 질식하는 건 아닐까? 후다닥 사무실로 와 상태를 보고 환기를 시키고서야 다시 잠에 든다.

오전 10시. 아무래도 철탑 위에 친 비닐을 보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하우스용 두꺼운 비닐을 사왔다. 막상 사오긴 했는데 어떻게 할지가 막막하다. 철탑 위 두 노동자가 직접 하기엔 만만치 않은 대공사니 말이다.

간밤에 수도마저 다 얼어버렸다. 단전은 회사가 시켰고 단수는 날씨가 시켰다. 물이 안 나오니 밥을 못한다. 철탑에 오른 노동자를 굶길 수 없어 없는 살림에 도시락을 사서 올렸다. 뜨끈한 국물이 없는 게 못내 미안하다. 어쩌랴. 하늘에 대고 농성을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불 땔 장작이나 패는 거다.

대체 엄동설한에 왜 이런 싸움을 하고 있을까? 설명하자면 매우 길다. 18년의 시간이 길고, 그동안의 노조탄압이 호화찬란했다. 정리해고, 징계해고, 직장폐쇄, 무급휴업, 단협해지, 구사대와 용역의 투입, 야반도주, 법인분리-강제전적-폐업, 조합원 왕따, CCTV감시, 식당 폐쇄, 임단협 지지부진 등. 이 나라에 존재하는 노조탄압 수단은 모두 발휘됐다. 노조탄압의 백화점인 셈이다.

조합원들은 당연히 회사를 믿을 수 없었다. 회사는 작년 9월 현 공장부지를 부동산업자에게 매각했다고 통보하고 근처 아파트형 공장에 조그만 공장을 차려놨으니 그리로 출근하라 했다. 언제 팔아먹고 폐쇄해도 문제 없는 조그만 공장으로 갈 수는 없었다.

이미 경험도 있었다. 2008년 회사는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새로 만든 법인으로 강제전적을 시키고는 딱 1년 만에 법인을 폐쇄하고 죄다 해고했다. 조합원들이 이 공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철탑에 오른 지 오늘(1월 21일 현재)로 43일. 회사는 아직 반응이 없다. 공장 땅을 샀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고 판결을 앞두고 있다. 파업 중인 조합원들은 넉 달째 월급을 못 받았다. 무엇보다 너무 춥다!

그러나 견뎌내고 싸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이번에는 이 지긋지긋한 하이텍 자본을 꺾어야 한다. 농성을 하는 조합원들과 활동가들 모두 같은 생각이다. 18년을 이어온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10억이 들든 20억이 들든 노동조합을 없애겠다는 박천서 회장의 오만을 반드시 꺾을 것이다.

시그네틱스도 그렇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도 그렇고, 자본은 정말 징글맞게 탄압을 가해왔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단단하고 꿋꿋하게 싸워왔다. 가진 것 좀 있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작시럽게 밀어붙이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하이텍 박천서 회장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줘야 한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솟는 시민들은 언제든 이곳에 와서 함께 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집중문화제를 진행하고 평일엔 6시 반 약식 문화제를 진행한다. 

필요한 물품도 많다. 바로 먹기 좋은 음식, 전기가 필요 없는 난방용품(특히 화목난로)도 좋다. 발전기로 기름을 때다 보니 요새는 돈도 많이 들어간다.

우리의 연대가 18년 세월 민주노조를 지켜온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에게 든든한 힘이 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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