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6/02 제13호

흔들리는 사람에게

  • 김유미 편집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유능한 이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 빛나는 젊은 시절을 바쳤건만, 오늘의 운동은 내가 활동을 시작하던 때에 비해 초라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집회에서 만나는 이들의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외치는 구호들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진다.

그러나 적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다. 적의 세력은 의기양양하여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뻔뻔한 말들을 쏟아낸다. 몇 번의 선거가 지난다 해도 승리는 오로지 저들의 몫일 것만 같다. 세계는 나빠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모든 것이 이미 자명하여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어 보인다. 

반면 우리는 혼란을 반복하고 있다.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총파업은 옳았나? 옳음 이전에 가능한 전술이긴 했나?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다른 수가 있었을까? 무엇을 어떻게 더 했어야 국정교과서를, 한일 위안부 협상을 뒤집을 수 있었을까? 아니 당장 그것들을 뒤집지 못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편이 승리할 가능성이, 또는 우리 운동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범한 오류는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오류를 정정할 시간은 남아있는가? 어쩌면 우리의 행동은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나에겐 이 난관을 헤쳐 나갈 능력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 시대에 운동을 한다는 것은 조직에 충성스럽고 스스로의 몫에 치열하며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나는 부디 이 지지부진하고, 피로하며,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하는, 운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어떠한 희망이 더 남아 있겠는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흔들리는 사람에게’를 패러디해보았다. 같은 꿈을 꿔왔던 이들이 시대의 암담함이나 우리들의 미숙함, 또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흔들릴 때, 어떤 말이 필요할까. 좋은 정세전망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함께 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그걸 가능하게 하는 애정이 아닐까. 

브레히트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당신은 묻고 있네. 기대하지 말게! 당신 자신의 답변 외에 누구의 답변도.”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그 질문은, 답이 없는 시대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 없이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의 대답이 곧 나의 대답이며, 나의 대답이 곧 당신의 대답이다. 나의 대답 안에는 언제나 당신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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