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할 권리
- 2016/01 제12호
우린 송곳 아닌 압정! 작지만 밟으면 아프지롱
인천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 남기석 사무국장 인터뷰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 딱딱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는 이름의 노동조합이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 업종 구성이 다양하다. 2003년 6월 설립된 인천 남동구도시관리공단은 주민체육센터, 공영주차장 관리, 관공서 건물 청소, 자전거 대여 서비스, 종량제 봉투 판매 등 각종 업무를 구청으로부터 위수탁 받으며 몸집을 불려온 지방공기업이다. 남동구 주민들과 직접 연결되는 공공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도시관리공단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이력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행정·기술직으로 구성된 정규직과 현장직으로 구성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점, 그리고 57일간의 전면 파업으로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뿔뿔이 흩어져 일하던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식구처럼 끈끈한 관계가 되었고, 투쟁의 승리는 가슴 깊이 노동조합에 대한 자부심을 남겼다. 그래서 조합원 100여 명의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는 공공운수노조 인천지역본부 내에서 ‘작지만 강한 노조’로 통한다.
이왕 할 거, 기세 좋게 싸워야지!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가 출범하던 때부터 각종 투쟁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이가 바로 남기석 사무국장이다. 지금은 종일 노동조합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그의 원래 직업은 체육센터의 ‘헬스 강사’다. 체육 전공으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는 2006년에 남동구도시관리공단에 입사했다. 인생 첫 직장이었고, 남동국민체육센터도 처음으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체육센터 개관을 앞두고 사업 준비단 같은 걸 뽑았어요. 저는 헬스장 전반을 담당하는 행정 업무와 회원들을 지도하는 업무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취업한 거예요. 프로그램도 만들고, 강사들을 어떻게 뽑고 운영할 건지 전반적인 것들을 결정했죠.”
행정직은 아니지만 행정직에 준하는 조건으로 채용된 전문직이었다. 그런데 2년 후 회사의 말이 바뀌어 계약직이 되었다. 그는 왜 채용할 때랑 얘기가 다르냐고 항의했다.
“겁이 났는지 다음날 바로 체육행정직으로 처리해주겠다는 거예요. 근데 그러려면 퇴직금을 정산하고 다시 입사하는 형식으로 하래요. 직장을 잃을 순 없으니 하자는 대로 했지만, 기분이 나빴죠.”
남 사무국장은 정규직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체육강사, 안내원, 센터 건물 환경미화 노동자 등은 비정규직이었다. 얼마 뒤 안내 직원 한 명이 음해성 민원 때문에 해고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스로도 회사에 불만이 있던 상황이었고, 회사가 이렇게 횡포를 부리는 건 아니란 생각에 남기석 사무국장은 노조를 만들려고 이것저것 찾아봤다고 한다. 체육센터 소장이자 현 지부장도 함께였다.
살면서 노동조합이니 투쟁이니 하는 걸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는 그가 민주노총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했다. ‘할 거면 힘 센 데로 하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언론에서 민주노총 하면 강성 뭐 그렇게 나오는 거 봤으니까요. 지부장님이랑 우스갯소리로 ‘이왕 하는 거 막 붉은 거 걸어놓고 그러자’고 했어요. 지부장님이나 저나 추진할 땐 거침없이 하는 편이거든요.”
회사의 실수로 빠르게 오른 임금
노조 설립을 위해 민주노총 상담을 받자 ‘더 많은 사람을 모아 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처음엔 체육센터 직원들만 생각했는데 그때부턴 다른 곳에서 일하는 남동구도시관리공단 소속 주차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까지 만나서 노동조합을 권했다. 그렇게 2009년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지역본부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가 출범했다.
원래 도시관리공단은 지방공무원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라 ‘총액인건비제도’가 있어 임금 인상이 쉽지 않다. 그런데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는 운 좋게도 노조가 만들어지자마자 2년 연속 높은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우습게도 회사가 여러 조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멋모르고 단체협약(이하 ‘단협’)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노조 만들고 4개월 만에 체결했거든요. 저희가 민주노총의 모범 단협안을 가지고 와서, 회사가 절대 안 된다는 것만 몇 개 빼고는 그대로 도장을 찍었어요.”
이 단협안은 회사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그 첫 번째 항목은 토요 유급 휴일이었다. 1년 뒤 임금 협상이 시작되자 근로감독관이 찾아와 ‘전국적으로 토요일을 유급 휴일로 하는 경우가 없는데, 이게 정말 맞는지’ 물어왔다. 노조 지부장이 ‘관공서는 문서주의 아니냐. 우리가 사기 치거나 협박해서 도장 찍은 거 아니지 않냐’고 나오자 회사도 근로감독관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결국 중재를 통해 노사는 월 30만 원 정도 임금을 인상하는 것에 합의했다.
두 번째 항목은 통상임금(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연장근무 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임금으로 기능한다)에 가족 수당, 연장근무 수당 등 모든 수당을 포함하도록 한 것이었다. 연장근무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연장근무 수당까지 포함시켰으니 계산도 어렵고, 그 규모도 너무 커져 한 사람 앞에 몇 천만 원의 임금을 추가 지급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결국 이번에도 몇 가지 조항을 조정하는 조건으로 월 30만 원 임금을 인상하는 것으로 합의되었고, 통상임금으로도 개인당 500~600만 원씩을 받았다.
공단의 이사장은 애초 단협의 구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법적 효력을 가진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이 구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야 노조에 ‘회사 말아먹을 놈들’이라는 저주를 퍼부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 인상안에 서명했다. 반대로 조합원들에게는 ‘노조가 하면 되는구나!’하는 낙관적 믿음이 생겼다.
정규직화를 위한 무모한 도전
임금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자 조합원들의 요구는 정규직화로 모아졌다. 2012년 2월,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는 공공운수노조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라 얘기하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무기한 전면 파업이 바로 그것이다. 남기석 사무국장은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기세가 좋았고, 아무 것도 몰라서 더 무모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때까지 지방 공기업에서 파업한 사례는 거의 없었고, 특히나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센터 강사들의 동참은 처음이었다.
그는 아직도 파업 첫날의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하던 일을 접고 모인 지부 조합원들은 파업 중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육청에 항의 방문하는 투쟁에 연대를 갔다.
“조합원 중에 나이 드신 분들,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던 분들이 많아요. 회사 관리자만 봐도 늘 주눅 들며 살았는데 갑자기 단체로 관공서에 쳐들어간 거잖아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발언하고, 울고 하는 걸 보며 ‘우리와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낀 거죠.”
그때부터 조합원들은 이 싸움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꿈도 꾸지 않고 신나게 투쟁하기 시작했다. 거리 행진을 할 때면 지부 조합원 숫자보다 더 많은 인천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찾아와 함께 걸어주는 데에 감동 받았고, 노래와 몸짓으로 집회의 흥을 돋우는 이들을 보며 자체적인 몸짓패도 만들었다. 평소에 못 하던 교육을 하며 조합원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파업 조는 업종을 골고루 섞어서 구성되었다. 도시관리공단에 고용되어 있을 뿐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았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체육센터 강사들과 주차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함께 먹고 자고, 권력에 저항한 경험은 이들 사이의 선입견이나 벽을 모두 무너뜨렸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프로그램이 없어서 찜질방 간 적도 있고, 영화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정말 온갖 경험을 같이 해본 사이가 된 거죠. 총선 기간에는 전 구청장이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는데, 몇 백 명이 그 사무실 앞 길바닥에 앉아 짜장면 시켜 먹기도 했어요. ‘당신이 임명한 이사장이 이렇게 노동조합 얘기 안 들으니 책임지라!’고요.”
구청을 압박하는 주민들의 반응
파업은 남동국민체육센터 옥상에 천막을 치고 진행됐다. 체육센터 곳곳에 파업에 관한 안내문이 붙었다. 강습은 모두 중단되었지만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은 개방해두었다. 수영, 헬스, 댄스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던 체육센터 회원들의 불만은 없었을까? 남기석 사무국장에 따르면 오히려 수강생들이 적극적으로 ‘선생님의 파업’을 지지했다고 한다.
“꾸준히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과는 그냥 회원과 직원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친밀한 관계가 많이 생기거든요. 파업을 준비하면서 체육센터 회원 분들에게 설명을 많이 했어요. 파업 때는 그 분들이 직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해서, 회원들이 직접 팀장한테 항의도 하고, 파업 지지 기자회견도 해 주시고, 집회에도 참석하고 그랬죠.”
수강생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치며 신뢰를 쌓았던 것이 파업 기간에 큰 힘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남기석 사무국장은 “제 생각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파업도 더 잘 하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처음에 체육센터나 주차장처럼, 파업 때문에 당장 ‘돈을 벌 수 없는’ 부분에서 도시관리공단이 압박감을 느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파업으로 인한 가장 큰 불편은 청소노동자들의 업무가 마비됨으로써 발생했다.
“주차장이나 체육센터를 돈 받지 않고 개방하니 주민들은 (파업에) 불만이 별로 없더라고요. 거기다 여긴 사기업이 아니라 그런지, 회사는 ‘돈이야 안 벌면 되지’ 하는 식이었어요. 반면 청소는 즉각적인 반응이 오더라고요. 도시관리공단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주로 구청,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 건물을 청소하시거든요. 쓰레기가 쌓이니까 공무원들로부터 ‘빨리 해결 좀 하라’는 압박도 들어오고, 이용하는 주민들도 계속 불편하다고 했대요.”
길어지는 파업
열흘 정도를 예상했던 파업이 30일 가까이 이어졌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파업으로 인해 한 달 치 월급이 안 나오면서 세 명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고 일터로 복귀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남기석 사무국장은 준비한 카드를 꺼냈다.
“남동구에 여기(남동국민체육센터) 말고 다른 체육센터가 하나 더 있는데 그곳 조합원들은 아직 파업을 못 하고 있었어요. 파업 장기화 조짐이 보이면서 제가 저녁마다 그 센터에 가서 조합원들을 만났어요. 원래 술을 못 마시는데도 매일같이 만나서 술 마시며 ‘언젠가 그쪽이 나와서 2차 타격을 해야 된다’고 얘기했죠. 결국 그 분들이 파업 35일쯤에 결단을 하고 파업하고 나왔어요. 탈퇴한 사람이 있었는데도 파업이 더 커지니까 회사가 충격을 받았어요. 조합원들도 다시 기세가 올라갔고요.”
도시관리공단의 ‘사장’은 기본적으로 공단의 이사장이지만, 한편으로는 구청장이기도 하다. 도시관리공단이 위탁받아 하는 사업이 애초에 구청에서 해왔던, 혹은 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남기석 사무국장은 “어떻게 보면 저희는 일종의 편법적인 간접고용이라 봐요. 원청은 구청인데, 구청 공무원을 더 뽑으면 정원 이런 데에 걸리니까 출자해서 공기업을 만들어 위탁을 준 거거든요”라고 설명했다.
40일 가까운 시간 조합원들이 겁내지 않고 즐겁게 투쟁을 지속하자 구청에서도 더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중재안을 들고 나왔다. 구청, 공단, 노조가 한 자리에 모여 협상을 했다. 그런데 이사장이 문제였다. 당시 공단 이사장은 매우 깐깐하고 권위적인 인물이었다. 시에서 감사관을 했던 이력 때문인지 직원들을 ‘잠재적 횡령자’로 취급하며 감시했다. 주차요금 2500원을 횡령했다며 주차관리 직원을 해고시킨 일도 있었다. 파업이 이렇게 길게 이어진 것 역시 정규직화가 불가능해서라기보다는 이사장의 스타일에 많은 부분 기인했다.
“꽹과리 치며 이사장 따라다녔죠.”
남기석 사무국장은 이사장을 괴롭히기 위해 이사장이 싫어할 만한 일이 무엇일지 고민 또 고민했다.
“권위적인 사람이라 권위를 뭉개는 행동을 굉장히 싫어해요. 이사장을 자극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 이사장이 사는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나오면 꽹과리를 치면서 따라 다녔어요.”
아파트 정문 또는 후문에서 기다리다 출근하는 이사장 얼굴에 대고 꽹과리를 쳐 대는 탓에 이사장의 횡포가 동네방네 소문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난생 처음 보는 우스꽝스런 광경에 이웃들은 깔깔대며 웃었다고 한다. 어떤 날에는 이사장이 잘못한 것들을 구구절절 적은 종이를 이사장의 자가용 앞 유리에 꽂아놓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그 내용을 녹음하여 방송차로 튼 채 이사장의 차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 이사장이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센터 셔틀버스도 폐지하고, 직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내용을 녹음해서 방송차로 계속 틀고 가는 거예요. 신호 걸리면 이사장 차 옆이나 앞으로 가서 알짱거리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사장이 고집을 굽히지 않자 조합원들은 남동구 곳곳을 돌며 ‘이사장 퇴진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3일 만에 7000명의 서명이 모였다. 결국 구청 통해 이사회에 이사장 해임안이 올라갔다. 해임안이 이사회에 상정된 것 자체가 이사장에겐 견딜 수 없이 굴욕적인 일이었다. 이사회에서 해임안은 부결되었지만 투쟁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결국 57일 만에 이사장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정규직화에 도장을 찍었다. 남기석 사무국장은 “다들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말도 안 되게 전부 다 정규직이 됐어요”라며 웃었다.
‘송곳’의 시트콤 버전
남기석 사무국장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처음엔 노조 조끼 입고 다니는 것도 쑥스러웠어요. 노동자, 동지, 이런 용어들도 생소했고. 그런데 하다 보니까 우리랑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걸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노조 활동에는 주민들의 공감과 지지도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구청장이 기존에 해오던 서비스를 폐지하거나 노동자들을 탄압할 때마다 주민들과 교감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2012년 파업 직전, 어용노조가 생기고 조합원들이 지부를 탈퇴하던 때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자 상대적으로 불만이 있던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회사가 회유에 나섰던 것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탈퇴했던 분들이 거의 다 다시 돌아왔어요. 파업 때나 지금이나 저희 지부가 굳건하게 제1노조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그런데 2014년 7월에 당선된 장석현 구청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장석현 구청장은 청와대 줄을 타고 남구에 등장한 정치 신인이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공무원노조, 공공기관지부 등 구청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도시관리공단 노무관리에는 직접 관여할 수 없으니 사업을 회수하거나 주차관리를 무인으로 돌려 인력 감축을 지시하거나 하는 식으로 탄압하고 있다.
“현 공단 이사장 임기는 2016년 2월 말까지인데 구청장 임기는 4년이니 아직 한참 남았어요. 지금 이사장은 노조를 인정하고 상의하면서 일을 하지만, 아마 장석현 구청장이 임명하는 새 이사장이 들어오면 엄청난 싸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남동구도시관리공단 지부를 길들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송곳>을 다 챙겨봤다는 남기석 사무국장은 <송곳>이 그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 진지해서 아쉽다 했다. 어려운 투쟁일수록 너무 심각하지 않게, 재미있게 겪어내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의 힘이다. 그는 “제가 훅훅 들어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심각하게 보면 범죄인데 재밌게 보면 시트콤 같이 행동한 게 많아요”, “우리 지부는 송곳이 아닌 압정이에요. 작지만 밟으면 엄청 아프죠”라며 하하 웃었다.
“작은 압정”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처럼, 웃으면서 꼿꼿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