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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 제12호

언제까지 그들의 막말에 놀아나야 할까

막말의 위기관리와 노동자 운동의 태세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최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연이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4월 김무성은 민주노총의 4.24 총파업에 대해 “정말 옳지 않은 일”이라며 “민생회복에 온 힘을 모아야 할 때 벌이는 파업은 매국적 행위”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약과다.

9월 22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끝난 직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들이 전부 “강성 기득권 노조, 민주노총”이라고, 몰아붙였다. 김무성은 “매년 불법파업을 하고 공권력이 투입되면 그 공권력을 쇠파이프로 두드려 팼다”며, 사실을 과장해서 늘어놓으며 비난했다. 그는 “불법 무단행위에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2만 불대에서 10년을 고생하고 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3만 불 넘어갔다”며 “CNN에 연일, 매시간 쇠파이프로 경찰 두드려 패는 장면이 보도되는데 어느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투자하겠는가. 그들이 우리 사회발전에, 경제발전에 끼치는 패악은 엄청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2만불대 이후 10년 정체는 일반적이며, CNN엔 민주노총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장면이 보도된 바 없다.

청년세대의 반감과 불만에 대한 질타도 있다.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김무성은 “학교에서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켰으면 청년들이 지금 ‘헬조선’을 외치고 다니느냐”며 “패배주의적으로 (역사관이) 가면 우리나라 미래는 없다”고 주장해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다.

인종주의도 고개를 내민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성동 의원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싼 맛에 외국인 근로자를 쓴다”면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근로자한테는 임금을 많이 안준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인 근로자를 이렇게 잘 보호하는 나라가 없다”며, 최저임금 대상에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해야한다고 말했다. 12월 18일엔 김무성 대표가 ‘사랑의 연탄배달’ 이벤트에 참석하던 중 함께 봉사를 하던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에게 “니는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가벼운 농담으로 볼 수 없는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반공과 질서

보수주의자들에 의한 막말 정치는 주로 반대 정치세력이나 노동자운동을 향해 이뤄져왔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노동자운동을 ‘북의 사주를 받은 용공세력’ 취급했고, 사회를 뒤흔든 주요한 투쟁마다 반공주의적 공세를 퍼부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고양되고 사기가 높을 때는 막말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지만, 상당수의 경우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군부정권의 탄압에 대한 공포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대열에서 이탈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정치인들로서는 꽤 효과적인 억압 기제인 셈이다.

1990년대 이후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을 즈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위기 책임론을 등에 업고 당선된 김대중 정부는 전무후무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실시 등 재벌에게는 책임을 면해주고 노동자들에겐 손실을 전가시키며 막대한 규모의 국부를 초국적 자본에 팔아치웠다.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직후 투쟁에 있어서 여러 오판으로 극심한 위축과 부침을 겪었다. 민주노총의 좌충우돌 속에서도 노동자운동 기층 곳곳에선 구조조정에 맞서 강고하게 투쟁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법질서를 엄중히 지키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하게 탄압했다. 한국통신 계약직, 롯데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았고, 2000년 9월 일본에 가서는 “강성노조가 힘을 잃고 있으니 안심하고 투자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련된 학살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엔 부마항쟁에 함께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변호해주기도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는 자유주의 정당의 대통령이 된 후에는 여느 역대 정권들과 다르지 않았다.

정권이 출범한 2003년 새해 벽두부터 두산중공업에선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두산자본과 정부는 수백억 원 규모의 손배가압류, 식칼을 든 구사대를 동원한 노동자 습격 등 양날의 탄압을 통해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노동자들은 임금은 물론 집 안의 가전제품, 가구까지 압류 당해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적이고 신사적으로’ 노동자들의 피를 말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탄압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세원테크 이현중, 이해남 열사 등 노동자들의 자결이 이어졌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도 광범위 하게 이뤄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막말의 행렬을 이어갔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격의 양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 방식을 비난하며, 합리적이고 평화롭지 못한, 시대에 뒤떨어진 세력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귀족노조’라는 비난도 이때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수해나가는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능동적으로 거듭났어야 하는 민주노총의 변화는 너무 더뎠다.

 

막말의 위기관리

민주당(현 새민련)의 10년 집권 이후 등장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현 새누리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노동운동 탄압 기조를 유지해나가면서도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통해 기획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공중전에선 ‘귀족노조’ 꼬리표를 덮어씌웠고, 창조컨설팅을 앞세워 노조 파괴를 도모했다. 실제로 다수의 노조가 깨지거나, 민주노조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몇몇 사업장에선 고군분투 끝에 노조를 지켰으나,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88년 현대건설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 노조 파괴 공작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이명박은 서울시장과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자신의 본색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시장 시절 틈만 나면 노동조합 폄훼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대통령 재직 중이던 2012년 여름 “귀족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며 4년 만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했다. 이런 기조는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위해 노쇠하고 허약해진 노동자운동을 향한 강공 드라이브에 한껏 이용되고 있다. 낮에는 귀족노조론을 꺼내들어 공중전을 수행하고 밤에는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차례차례 깨나가는 식이다. 

이처럼 반공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통적인(?) 막말 비난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구태에 빠진 귀족노조론으로 선회하더니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시점에서 계급투쟁을 가로막고 선제공격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배계급으로선 노동자운동을 최대한 짓밟고 위축시키는 것만이 이후 지속될 불안정한 정세에서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지킬 보험이자 위기관리의 한 축인 셈이다.
 

더 뻔뻔하고 더 천연덕스럽게

근대 이래 자유주의 정치가들은 자신을 계급 간 이해관계의 충돌에 대비되는 사회의 이상, 합리적인 규범을 내세웠고, 그럼으로 인해 자신의 위엄을 옹호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유주의의 이런 이데올로기가 무색할 정도로 모조리 무시되고 있다. 집권여당 정치인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국가권력을 거침없이 이용하고, 유치한 리얼리티쇼에서처럼 막무가내로 굴며 권력을 행사한다. 강력한 정치인일수록 과감하고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거침없이 조작을 감행하는가 하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추궁들을 모른 척하며 무력화시킴으로써 기본적인 상식조차 훼손한다. 더 이상 '교양있는 부르주아'의 상식 따위는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을 향한 막말 정치는 자신의 입장을 정하지 못한 냉소적인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의지를 저하시키고, 더 강한 냉소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미디어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말이 내뱉어지는 순간 재빠르게 유통되고 또 휘발시키는 매개로서 작용한다. 정치모리배들로선 자신의 이름값만 높일 수 있다면 손해 볼 게 없다고 여기는 이유도 여기 있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자신의 막말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해 귀족노조나 386 등 “특권세력의 위선”이라고 비꼬고 조롱하며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염증을 더욱 부추긴다.
 
 

막말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따라서 정치인들의 막말에 그때 그때 반응하며 분노를 토해내는 것도, 저들의 통치의 이면에 무언가 대단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지레 겁먹는 것도, 혹은 반대로 어리석은 수구꼴통의 자살골에 불과하다고 폄훼하는 것도 현명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조롱하건 겁먹건 막말에 대응함으로써 연루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그들이 원하는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사회 정의니, 민주주의 따위의 이데올로기가 부패해버렸다고 의심하지만, 그러한 외양을 띄고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온갖 악다구니와 막말들이 지닌 지저분한 추문들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지향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운동을 재건할 길을 찾을지 떠올려야 한다.

노동자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막말에 대처하는 세련된 임기응변과 관성적인 반격이 아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세에 걸맞은 운동의 발전전략을 구성하고, 단기적으로는 정세적 조건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활동가, 조직된 노동자들 전반의 통일적인 인식, 현 정세에 대한 분석과 판단, 우리가 처한 구체적 조건이 어떠하며, 우리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냉정히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뜨거운 정의감과 활활 타오르는 분노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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