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5/12 제11호
'보편성'을 포기한 페미니즘?
윤보라 외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분석을 위한 노력이 활동가의 기본이지만, 현실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반쯤은 나의 게으름에, 반쯤은 이런 작업 없이도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지금의 운동 현실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세상 돌아가는 게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거나 특별히 관심이 가는 사안이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속성으로라도 공부 좀 해야겠다 싶어 부랴부랴 관련된 책을 찾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베’를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 된 각종 극우담론, 여성혐오담론에 대한 분석을 기다려왔다. 이 현상의 뿌리와 원인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진화해 갈 것인지 궁금했다. 일베 현상이 온라인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세력화할 가능성이 있는지, 한국정치와 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의미한 변수로 진화될 것인지, 극우주의와 여성혐오가 결합되는 원리가 무엇인지, 왜 일베가 재생산되는데 여성혐오가 강력한 매개체가 되는지, 더욱 심화될 경제위기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전전해야 할 젊은이들의 불만이 그러한 담론과 어떻게 결합될지 등이 질문의 목록이다.
이런 질문들 전반에 대해 분석하는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읽게 된 《여성혐오가 어쨌다구?》는 여성학 연구자,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공동집필한 책으로, 여성혐오를 통해 우리사회의 혐오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일부 글은 일베 현상,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고, 일부 글은 언어, 권력, 혐오 일반, 주체화 전략 등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여성혐오 현상이 ‘높은 실업률이나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의한 남성의 좌절’ 같은 경제적 분석으로만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부 글들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들은 나에게는 선뜻 동의되기 어려운 시각과 접근법 아래서 쓰였다. 예를 들어 애초 여성과 남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생물학적 성별(sex) 개념을 아예 기각하고 사회적 성별(gender)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관점, 여성혐오를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등과 병렬적으로 다루는 접근법, 트렌스젠더가 여성상품화에 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페미니즘의 트랜스혐오로 비판하는 글 등이 그렇다. 이 모든 분석이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일반적인 취지의 서평은 아니다. 여성혐오를 다루는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접근법과 그 바탕에 깔린 ‘페미니즘의 개인화’라 할 만한 최근 페미니즘의 경향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과연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보편적 주체, 집단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는 이론이 현실의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고민해 보는 질문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