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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평화
  • 2015/12 제11호

비극의 악순환을 부르는 테러와의 전쟁

파리 테러 이후, 시리아 해법을 비판한다

  • 이준혁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
 
11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처참한 테러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목표로 한 서구 강대국들의 시리아 공습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시리아 내전의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는 러시아와 반정부군을 지지하는 미국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의 참혹한 테러 사건 뒤 ‘IS 파괴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IS 파괴 국제 공조 강화

당초 프랑스는 미국 주도의 시리아 공습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러시아가 지원하는 아사드 정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시리아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올해 9월부터 공습에 참가했다. 그리고 파리 테러 사건 직후 프랑스는 공습을 강화하는 한편, IS 파괴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1월 24일에 미국을, 26일에 러시아를 방문해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랑스 함대와 동맹국으로서 협력할 것”이라 밝혔고, 영국과 유럽연합도 IS에 대한 군사작전 참여 및 지원을 결정했다.

시리아 내전 해법에 대해서도 국제적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파리 테러 사건 직후인 11월 14일 미국과 러시아 등 17개국 외무장관과 유럽연합(EU), UN이 참여한 ‘시리아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은 “논쟁은 일단 제쳐두고” 파리 테러를 규탄하며 시리아 정권 이양을 향한 일정을 합의했다. 내년 1월 1일까지 내전 당사자들이 잠시 전쟁을 멈추는 협약을 체결하게 하고 ‘신뢰성 있고 포괄적이며 초당적인 과도정부’를 6개월 안에 구성한 뒤 새 헌법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 합의의 내용이다. 또 18개월 안에 UN 감시 아래 선거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처럼 당분간은 어느 정도 국제 공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수준은 제한적일 수 있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 국제회의 합의안 이행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지상군 투입 논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IS의 테러를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하면서도, 대규모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만 진행하는 현재의 개입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 밝혔다. 집권 말기에 접어든 오바마로서는 지상군 투입은 전사자 발생할 시 내부 비판에 휩싸일 수 있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따라서 파리 테러의 주범인 IS에 비난의 초점을 맞추는 한편, 시리아 국제회의에서 합의된 ‘평화 구축안’이 원활하게 시행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테러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부에서는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수사적 발언은 둘째치더라도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이러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관해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연구하는 브루킹스연구소는 “IS는 시리아 내전의 병폐가 만든 증상일 뿐이고, 따라서 시리아 내전을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시리아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IS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바마 정부의 접근법은 너무 단편적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시리아 내전을 해결할 방법으로 3단계 정책을 시행할 것을 제시한다. 첫 번째, 시리아 상황을 안정시킬 지상군이 필요한데, 이 지상군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되 타 세력을 압도할 만큼 강력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 직접 점령해 아사드 정부군에 맞서는 군대를 육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리아 전역을 장악한 뒤 각 내전 세력들이 정전 협정을 맺을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 세 번째는 시리아 상황에 알맞은 새 헌법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구상의 문제는 우선 미국이 원하는대로 시리아 상황을 장악하고 새 정부를 구성할만한 세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시리아 내 반정부군의 세력은 10퍼센트 수준이며, 상당수의 반정부군이 IS에 가담하거나 아사드 정부군과 러시아의 공세에 밀려나는 등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반정부군의 세력이 줄어들수록 새로운 반군을 육성하거나 미 육군이 직접 파병되는 등 더 적극적인 개입을 바라는 목소리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군사 개입이 테러를 근절할 수 있는가?

공습이 됐든 지상군 파견이 됐든 군사 개입을 통해 테러를 근절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시리아 내전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강대국이 특정 세력을 지지해 군사적 개입을 할 경우 다른 당사자의 반발과 증오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사드 정권은 인구의 13퍼센트에 불과한 알라위파와 시아파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족벌 체제를 형성해왔다. 인구로는 소수지만 40년간 부와 권력을 독점해 온 만큼 굳건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정부군의 경우, 2011년 민중 봉기 직후 시민운동, 야당 등 민간 세력이 중심이었으나 점차 자유시리아군(FSA)을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힘을 얻으면서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 내전의 틈을 파고들어 세력을 키운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IS다. 민중봉기가 소수의 알라위-시아파에 대한 다수 수니파의 분노라는 측면도 있었던 만큼, IS는 자신들이 수니파라는 점을 활용해 반군 세력의 상당수를 흡수하거나 지지를 얻어냈다. 여기에 한때 IS와 협력관계였으나 지금은 갈라선 알 누스라 전선(알카에다의 시리아지부)과 시리아 북부 터키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쿠르드 반군까지, 시리아 내부의 갈등선은 매우 복잡하다.

이 때문에 반정부군을 지지하는 미국-프랑스의 공습이나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의 공습은 반발을 불러일으켜,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IS를 목표로 삼는다지만 실제로는 민간인과 IS 조직원을 구분해서 타격하기 쉽지 않고, 이러한 무차별적인 도시에 대한 공습은 시리아 민중들에게 이슬람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비춰지기 쉽다. 시리아 공습은 되려 IS나 다른 무장 세력 지지층의 단결을 고취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상군 투입 역시 대안이 되기는커녕 더 큰 분노를 야기할 것이다. 과거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과 그들의 지지를 받는 시아파 정부에 대한 분노가 수니파들을 급진화시켜 IS를 만들게 한 원동력임을 잊어선 안 된다. 요컨대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에 대한 해결책이 되기보다는 테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는 10년 전 미국의 대테러전쟁의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프랑스 내부의 테러와의 전쟁

프랑스 정부는 테러를 계기로 ‘국민적 단결’을 외치며 이주민·난민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모든 집회 및 시위를 불허하고 자국의 국경을 봉쇄했다. 테러 혐의가 있는 이중국적자의 국적을 박탈하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한 외국인을 추방할 수 있게 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그는 테러 직후 EU의 난민 수용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의 탓을 이민자, 무슬림 일반으로 돌리는 건 또 다른 테러리스트를 잉태할 뿐이다. 중동 민중을 착취해온 서구 강대국에 대한 박탈감, 증오가 IS의 자산 아니던가.


프랑스 좌파의 입장

프랑스의 노동자운동, 좌파는 테러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면서도, 올랑드 정부가 수행하려는 전쟁에는 반대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테러 직후 성명에서 “정부가 중동 지역에서 경제적 독점과 다국적 군수산업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 민중의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투쟁을 외면하고 군사적 개입을 해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테러와의 전쟁’은 “민주주의 복원은 커녕 분쟁 지역 주민들을 난민으로 몰아넣고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확산”시킨다고 비판했다. CGT는 정부가 기획했던 이주민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규탄하는 집회를 불허했다며 테러를 빌미로 민중들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국민적 단결’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제국주의 전쟁의 잔혹함이 테러의 잔혹함을 야기했다>는 성명을 통해 “파리 중심부에서 벌어진 경멸적인 테러는 시리아에서 올랑드 정부가 자행한 폭격에 대한 답변”이라며 테러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전쟁과 테러리즘 해결을 위한 해답으로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민족적 기원과 피부색, 종교, 국경을 넘은 연대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려고 잔혹함을 만들어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제안했다. 

시리아의 좌파들도 국제 연대만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알레포 시에 근거를 두고 ‘민주적, 세속적, 사회주의적, 반제국주의적인 시리아의 건설’을 표방하는 좌파 단체 ‘시리아 자유여 영원하라(Syria Freedom Forever)’는 “프랑스나 다른 모든 나라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면서 “프랑스 민중들과 평화와 자유를 바라는 모든 민중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신들의 전쟁, 우리의 죽음

NPA 지도부이자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연대를 지속해온 줄리엔 샐린지(Julien Salingue)는 현 상황을 ‘당신들의 전쟁, 우리의 죽음’(Vos guerres, nos morts)이라 표현했다. 테러 직후 파리의 시민들, 11월 13일 IS의 테러로 죽어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시민들, 2주 전 이집트에서 일어난 항공기 테러로 죽은 러시아 시민들 모두 그들 자신과는 무관한 전쟁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샐린지의 말대로 “지배권력이 기획하는 전쟁으로 인해 더 많은 민중들이 죽음을 당할 것”이며 테러와 내전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군사적 개입으로 테러를 뿌리 뽑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강대국의 군사적 개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전 세계가 테러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지금,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에게 필요한 유일한 행동은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중운동뿐이다. 국제적인 반전평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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