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5/11 제10호

머나먼 베트남

  • 주연 다큐멘터리 감독
 
카메라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약 30분 만이었다. 집 안에 마땅한 의자가 없으니 집 앞 대로변 평상에서 하자며 시작한 야외 인터뷰였다. 

  그녀는 8살 때의 기억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1968년 12월 12일, 마을로 들어온 한국군은 마을 사람들을 줄 세워놓고 총을 쏘았다. 그날, 한국군은 8살 소녀의 배에도 총을 겨누었다. 피와 함께 창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소녀는 미군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이제 55살이 된 소녀는 한 손으로는 세 살배기 손자를 부둥켜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에게 전쟁 기억을 묻는 한국인들 앞에 앉아있었다. 때마침 손자는 할머니보다 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올해 8월 ‘나와 우리’라는 NGO단체와 함께 베트남 중부지방을 찾았다. 우리가 중부지방에서 만나기로 한 전쟁 피해자들은 총 8명이었다.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는 일은 베트남 정부의 사전허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전쟁의 시간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이번 일정은 지난 10년간 전쟁 피해자들의 생활비 지원과 베트남 전쟁연구비 지원 등을 해왔던 ‘나와 우리’의 활동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이번 베트남 답사 프로젝트에서 영상기록을 맡았다. 호이안 숙소에서 맞은 첫날 밤, 카메라로 피해자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잠이 안 왔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일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인터뷰는 편안하게 진행됐다. 8명의 피해자들은 모두 한국에게 우호적이었다. 피해자들 중에서 한국에게 우호적인 피해자들만 선별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피해자들이 전반적으로 한국에게 우호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말이 통하지 않는 피해자들과 눈빛과 느낌으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내가 죽으면 그때 와줄 수 있나요?” 전쟁으로 두 아들을 모두 잃은 87세의 피해자 한 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위령제 때 한국인들이 와줬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건넸다. 관리될 수 없는 피해자 각자의 시간과 감정들이 불현듯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럴 때면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잠시 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다음에 오겠다는 어떠한 약속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각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으리라.

1946년 시작된 프랑스와의 전쟁부터 30년이란 전쟁의 시간을 알아가기에 8일의 답사 일정은 너무도 부족했다. 거기에 피해자를 만나는 일정마다 따라다니던 베트남 인민위원회 직원들을 보며 한국인에게 알려진 피해자보다 알려지지 못한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베트남 전쟁 종전 40주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베트남은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다. ‘과거는 닫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베트남의 정책 기조 속에서 점점 더 베트남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문득 터져 나오는 울음, 말 한마디, 어떤 표정들 속에서 전쟁의 시간은 진행 중이다. 닫힐 수 없는 과거를 함께 기억하는 일, 이번 8일간의 답사가 머나먼 베트남으로 가는 평화의 길을 만드는 작은 시작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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