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5/11 제10호

인간답게 일하자! 우리도 좀 쉬자!

집배원들의 노동현실과 요구

  • 이현상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집배원들은 화요일이 무섭다

화요병! 월요일 저녁과 화요일 아침은 집배원에게 긴장되는 순간이다. 왜냐면 집배원에겐 화요일이 가장 많은 물량이 몰려드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주5~6일을 일하지만, 일요일엔 우편 접수가 없기 때문에 월요일에 우편, 택배 접수가 몰리고 그 물량이 화요일에 집중된다. 그래서 화요일은 정말로 눈뜨기 무섭다.

나는 아침 6시 기상하여 7시 30분에 출근한다. 오전 9시를 전후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우체국을 나서면 배달이 시작된다. 배달하는 시간에는 그야말로 물량과의 사투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뛰다시피 해야 요즘처럼 해가 짧아지는 시기에 야간 배달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점심식사는 제 때 못 먹는 경우도 많고, 대충 김밥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바쁘게 움직이지만, 우편물은 정확하게 배달되어야 한다. 우체국 입장에서도 경쟁력을 위하여 하루에 배달하는 수천 통의 우편물과 택배 물량을 고객의 요구에 맞게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편물 분실 위험에도 집배원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고객의 민원이나 우편물의 분실은 집배원에게 금전적인 손실이나 징계의 사유가 될 수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 달 중에 고지서나 우편 물량이 몰리는 시기를 ‘폭주기’라 한다. 보통 10일 정도 되는데 말 그대로 우편물이 폭주하는 시기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과 총선과 대선, 지자체 선거, 보궐선거가 있어 선거 우편물을 배달해야하는 시기는 ‘특별소통기간’이라 한다. 특별소통기간은 보통 2~3주 지속되는데 집배원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은 기간이다. 
 

부족한 집배원 인력에 가해지는 살인적 노동강도

집배원들의 과중한 업무부담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 2013)에서 드러났다. 집배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 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인 42.7시간에 비해 20시간이나 웃도는 64.6시간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였다. 집배원들은 특히 설, 추석, 선거 기간 등엔 하루 15.3시간, 주 85.9시간이나 근무하는 등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 

근골격계 증상을 가진 자가 74.6퍼센트,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심자’가 43.3퍼센트나 되었다. 이러한 노동환경으로 2012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노동재해율 0.59퍼센트와 비교했을 때, 집배원의 재해율은 2.54퍼센트로 전체 노동자 평균의 4.3배에 달했다. 사망률은 전체노동자 평균보다 무려 6배가 높았다. 2010~14년 3년간 사망한 집배원 노동자는 26명에 달했다.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의 원인은 우정사업본부의 극단적인 인건비 절감 정책과 절대 인력 부족에 기인한다. 2014년 현재 한국의 인구수는 5000만 명, 세대수는 2000만인데 집배원은 1만6000명이다. 일본의 경우 1억 2000만 명, 4900만 세대에 집배원은 18만 명이다. 일본과 비교해서 집배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인구나 세대가 대략 5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집배원들의 노동환경이 어느 정도 열악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우정사업본부 관리자는 인터뷰를 통해 “노동강도로 보면 일본이 우리보다 1.5배 정도 노동강도가 심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정사업본부는 국가 기관이지만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4위로 선정될 정도로 부끄러움을 모르며, 책임감도 없으며, 공생을 외면하는 조직이다. 올해 초에는 경영상의 이유로 하위직 1023명을 감축하면서도, 5급 이상 관리직 정원은 133명 늘려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국정감사는 매년 우정사업본부의 벌거숭이 모습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올 9월 국정감사에서 우정사업본부가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관리 규정을 위반, 최근 3년간 비정규직 8500명에게 정액 급식비, 밥값 33억 5231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우편적자라는 이유로 집배원에게는 시간 외 수당, 연가보상비 등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지 오래된 상황인데 “우편적자 4년 동안 무려 6000억 원 이상을 기금 목적으로 정부에게 바친 것”이 밝혀져 허탈감을 주었다. 


뒤집어진 토요휴무, 투쟁의 고삐를 잡다

2013년 겨울, 우체국 내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우체국에는 관리자노조인 공무원노조와 이전에 기능직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우정직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정노조가 존재한다. 한국노총 산하의 우정노조가 집배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별도의 운동본부를 결성했는데, 여기에 3000명이 넘는 밴드(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장시간노동으로 집배원들의 사망사고가 유난이 많았던 2013년 겨울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노사합의를 통해 집배원의 업무경감을 위하여 ‘토요휴무’를 합의했다. 그리고 2014년 8월부터 집배원들도 공식적으로 주5일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9월 일방적인 노사합의를 통해서 집배원에겐 생명수와 같았던 토요휴무를 없애고 아무런 대책 없이 토요근무를 다시 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로서 집배원이 누렸던 주말의 휴식이 1년 2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우정노조는 간선제 조직이다.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지만, 우정노조는 분명 노동3권이 있는 노조이다. 임금협상도 매년 진행하지만 허울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정노조를 내세워 지부장과 조합원에게 ‘토요근무 재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지부장은 80퍼센트가 반대하였고, 조합원들은 관리자들의 온갖 설득에도 불구하고 70퍼센트의 압도적인 반대가 나왔다. 그러나 우정노조는 이를 외면하였다.

 
집배원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일방적인 노사합의 이후, 토요근무 반대와 위원장 퇴진 운동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토요근무 반대와 우정노조 지도부 퇴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성공적으로 출범하였다. 10월 3일 집배원노동자총력투쟁을 막기 위해 숨 막히게 탄압을 자행하였던 우정사업본부, 우정노조와 싸우면서 집배원들은 단련되기 시작했다. 

10월 3일, 600명 전국의 집배원이 참가하여 집회가 성사된 걸 확인하고 우리는 서로를 더욱더 강고하게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정당함을 확인해주는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연대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더욱더 불어넣어 주었다. 어용노조와 극악한 우정사업본부 체제에서 대항해 시작된 용솟음.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우정노조는 토요근무 반대를 위한 집배원들의 집회를 보호하지 못할 망정,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조합원을 철저히 짓밟았다. 그리고 아직도 우정노조는 정신을 못 차리고 집회 이후 “집회참가자 색출 및 징계절차”라는 방침을 통해 우리의 투쟁을 흔들려 하지만, 이 또한 집배원들의 분노와 민주노조의 열망을 드높이는 효과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하루 11~16시간 일하는 집배원들에게 토요휴무는 인권과도 같다. 집배원들의 투쟁은 비단 우정노조와 우정사업본부의 일방적인 협정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참아왔던 차별, 인내의 한계가 폭발한 것이다. 또한 집배원들의 투쟁은 이제까지 멸시받았던 숭고한 노동의 대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제 집배원들은 우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안전한 근무 환경 속에서 일할 때까지 투쟁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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