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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5/11 제10호

불평등 원인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라고?

수출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와 반노조정책이 문제

  •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국장

‘양극화’에서 ‘이중구조’로

박근혜 정부는 소위 ‘노동개혁’을 통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기존의 ‘양극화’ 담론과 같이 단순히 노동시장의 불평등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중구조 담론은 양극화 담론에 비해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되어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이중구조 자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부각하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채택한 개념이자, 프레임이다. 

 

노동시장이 두 개의 분절적 시장으로 구분된다는 이중노동시장이론은 주로 미국의 1950~60년대 거대 법인기업의 생산방식-노동조직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출발했다. 기업이 숙련노동 보유의 필요성, 노동력 통제와 조직노동자의 힘을 제한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인해 승진사다리, 현장훈련과 같은 숙련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전략을 개발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양호한 노동조건, 다양한 승진기회,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는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중노동시장이론은 이후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1980년대에는 비자발적 실업의 원인을 이중노동시장으로 설명하는 ‘내부자-외부자 가설’이 제기된다. 내부노동시장의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시장기제를 왜곡하여 실업과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비정규직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고용보호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논리로 활용되어 왔다. 현재 한국의 노동개혁을 지지하는 담론도 바로 이 ‘내부자-외부자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노동시장 불평등의 현실과 추이

한국의 노동시장은 심각하게 불평등하다. 대표적인 불평등 지표인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과 상위10퍼센트와 하위10퍼센트의 임금 격차 모두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간 불평등이 모두 심각하다. OECD 국가 중 남녀의 임금격차가 가장 크며, 1997년 이후 임금 불평등이 크게 증가해 왔다.

 

한국의 300인 이상 사업체(이하 대사업체)와 300인 미만 사업체(이하 중소사업체)의 임금격차는 1987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증가한다. 1987년의 격차 확대는 민주노조 운동의 성장과 3저 호황이라는 우호적 경제조건에 따른 것으로, 1997년은 경제위기 충격과 신자유주의 본격화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1987년의 대사업체와 중소사업체의 임금격차는 중소사업체의 임금이 꾸준히 증가하며 1990년대 중반에는 격차가 크게 축소된다. 반면 1997년 이후에는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1997년 이후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확대되어 왔다. 

 

고용불안이라는 측면에서도 대기업-중소기업의 차이가 크다. 2013년 대사업체의 평균 근속년수는 9.8년이고 중소사업체의 평균 근속년수는 5.6년에 불과하다.(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결과, 상용직기준이며 상용직 5인 이상 업체기준이며 공공기관 일부와 공무원 제외) 국제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정이환(2014)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 규모에 따른 근속년수 차이가 거의 없고 일본도 100인 미만 9.1년, 1,000인 이상 11.5년으로 한국에 비해 기업규모별 근속년수 차이가 미비하다. 한편, 대사업체와 중소사업체의 근속년수 격차는 1993년 이후로는 큰 차이가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임금분배와 고용불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성별 불평등은 매우 심각하며 1997년 이후 악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업규모별 격차는 고용형태별 격차 못지않게 심각하며 임금격차의 경우 다른 변수(학력, 노동시장 경력, 성별)를 통제했을 때 고용형태별 격차보다 크다는 연구결과도 상당하다.

 

내부노동시장의 과보호가 불평등의 원인인가?

정부와 노동개혁 지지자들은 한국 노동시장 불평등의 원인을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찾는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고임금고용안정이 보장되는 1차 부문(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과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차 부문(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고 두 부문이 분절되어 있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1차 부문은 고용보호법제도, 연공형 임금체계로 가격기능이 미흡한 비경쟁시장이고 높은 노동조합 조직률로 보호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이로 인해 기업은 1차 부문에서의 고용을 줄이고 노동자는 2차 부문으로 포화되어 2차 부문의 경쟁 강화 → 저임금의 질낮은 고용 확대의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해고 규제를 완화하고, 성과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하여 1차 부문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사 간 교섭력을 균등화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과보호를 폐지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부문간 노동이동을 활발하게 해 이중구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인재 외, 2010)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면 첫째, 과연 비시장적 기제가 지배하고 노동조합이 강력한 내부노동시장이 존재하는지, 둘째, 이러한 내부노동시장이 불평등의 원인인지가 검증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1987년을 거치며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식 내부노동시장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60~7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본식 인사제도가 수입되었으나 대단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가 1987년 노동조합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고용안정과 근속년수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며 내부노동시장이 확대, 강화되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한국의 내부노동시장은 고용안정의 정도가 약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연공임금이 지배적인데 근속년수가 낮다는 것은 한국의 연공임금이 생계비보장을 통한 숙련노동력의 장기근속효과보다 보상을 지연하여 현재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기업 노동시장은 경직적인가?

그런데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며 내부노동시장의 약화가 시작된다. 우선 연공급이 약화되고 성과중심 임금체계가 확대되어 근속년수 뿐 아니라 성과평가가 임금결정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도입 비율은 1999년 15.1퍼센트에서 2008년 57.4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흔히 한국에서 연공급이 지배적이라는 논거로 노동시장 내에서 근속년수 1년차 임금 대비 30년차의 임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난다는 통계가 제시된다. 하지만 이는 기업규모나 학력, 성별, 승진과 같은 다른 요인이 중첩된 결과다. 근속년수가 긴 노동자일수록 기업의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아 고위직으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근속과 승진효과가 중첩되어 있어 차이가 과장된다. 승진사다리라는 내부노동시장의 인사원리가 경쟁 원리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안정도 약화된다. 한국 기업의 근속년수는 고령화와 고용안정의 효과로 97년 이전에는 증가하다가 그 이후에는 고령화효과를 제외하면 정체상태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500인 이상 사업체의 평균연령과 근속년수는 2002~04년에 정점을 찍고 정체상태다. 

 

외환위기 이후 급등했던 이직률은 다시 낮아졌지만 비자발적 해고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형태의 비자발적 이직이 상당하다. 2013년 임금근로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1년 동안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는 일자리 비율이 300인 이상 대기업도 22.3퍼센트(300인 미만 기업 32.3퍼센트)나 되어 대기업도 전체 일자리의 5분의 1이 바뀌고 있어 노동이동이 활발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대기업의 고용인원이 축소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의하면 30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이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13.3퍼센트에서 2000년대에는 10퍼센트대로 하락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내부노동시장은 1990년대 들어 연공임금, 내부승진이라는 원리들이 해체되며 경쟁적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고, 고용안정도 약화되고 내부와 외부의 이동도 비교적 활발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상대적인 안정성과 고임금은 유지가 되고 있으나 구조적인 분절성은 약화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따라서 1997년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을 내부노동시장의 강화 때문으로 볼 순 없다. 당시는 내부노동시장이 약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확대와 불평등의 확대, 기업별 격차 확대의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97년 이후 형성된 신자유주의 수출-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가 문제다. 한국경제의 이중구조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쳐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불평등을 확대하는가?

박근혜식 노동개혁의 지지자들은 고용보호제도의 경직성과 함께 대기업 노동조합의 우월적 교섭력이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획재정부 용역보고서는 대기업의 유노조 사업체에 고용된 정규직과 중소기업의 무노조 사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의 임금노동조건을 비교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고용인원의 6.7퍼센트만 소속되어 있는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 부문이 고용보호법제 및 노조 단체협약을 통한 중층적인 고용보호 등으로 인한 우월적 교섭력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여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동조합) 부문에 비해 평균임금이 3배가량 높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경력, 기업규모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한 후 노동조합 변수의 설명력을 측정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아주 약한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노동조합이 임금불평등을 확대하는가에 대한 어떠한 인과관계도 제시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이 임금격차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황덕순(2004)의 연구는 노동조합 가입률 및 조직률이 높은 산업일수록 500인 이상 사업체와 미만 사업체간의 임금격차가 줄어드는 관계가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강승복박칠성(2014)은 제조업에서 2000년대 들어 임금격차가 확대된 것은 비노조부문에서 사업체 간 임금격차가 급격히 확대되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노조가 있는 부문에서는 임금격차가 거의 확대되지 않았으며, 노조부문의 임금을 평준화하는 ‘부문 내 효과’가 노조와 비노조부문의 임금평균의 차이로 발생하는 ‘부문 간 효과’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도 노조의 임금불평등 완화 효과가 확인된다. 한국에서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를 포함한 임금불평등은 1990년대 가장 낮았다. 앞서 보았듯이 1987년 이후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소기업의 임금이 인상되며 격차가 좁혀진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은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조합 조직률의 성장은 둔화되고 10~299인 사업체의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확대되며 정점을 찍었던 시점이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임금불평등의 확대에 대한 노동조합 측면의 설명은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확대가 아니라, 중소기업의 노조 조직률 하락, 기업별 노조와 산별노조 건설의 답보, 기업 중심의 노사관계 법제도의 한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노동시장 불평등 해결, 노동조합 확대로부터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은 낮은 편이지만 취업준비생이나 교육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은폐된 실업은 엄청나다. 통계청 추산 잠재적 실업자와 불안전 취업자를 포함하면 청년의 유사실업지표는 22.7퍼센트나 된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는 대기업의 신규 채용 축소, 비정규직 확대, 중소영세기업 노동조건의 상대적 후퇴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비경제활동인구가 크게 늘었으며 소위 청년무업자(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규모도 70만 명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제시하는 보수적 해결책은 청년층의 분노와 좌절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유연안정성 전략을 노동시장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의 유연화와 복지 확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맞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한국의 정규직 노동이 충분히 유연할 뿐 아니라 복지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정치적, 제도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서 유연성만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일자리 증가는 둔화될 수밖에 없고 경제정책의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진보적 해결책은 고용안정성과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 정책과 고용-분배 친화적인 경제 정책을 결합시키는 방향에서 찾아져야 한다. 특히 한국은 노동법의 실질적 규제도 취약하고 단체협약과 사회보장 모두가 취약한 사회다. 모든 부문에서 안정성을 높이는 전략을 추구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노조의 확대는 다른 부문에서의 개혁을 밀고 나갈 정치적사회적 주체 형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

 

강승복박철성. 2014. “임금분포에 대한 노동조합 효과 :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국노동경제학회, <노동경제논집> 37권 3호. 2014 pp.45-73.

이인재안종범최형재. 2010.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한국적 모델 연구: 고용해고제도를 중심으로”, 한국노동경제학회(기획재정부 연구용역보고서)

정이환. 2014. 『한국의 고용체제론』, 후마니타스.

황덕순. 2004. “노동조합이 임금격차에 미치는 효과와 연대임금정책”,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16주년기념토론회 - 한국의 임금, 무엇이 문제인가?> 발표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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