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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 제9호

9.19 공동성명 10년 한반도의 핵 위험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지난 8월 24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은 6개 항의 합의를 발표했다. 첫 번째 항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당국회담을 개최한다는 합의다. 하지만 9월 14일과 15일 북한은 국가우주개발국장과 원자력연구원장의 입을 빌어 인공위성(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 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직접 협상이 무용하다는 미국의 회의론에는 변화 기미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 핵전쟁을 향한 한미일 군사동맹의 준비태세가 강화되고 있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으나 한반도는 과거보다 훨씬 격렬한 핵무기 경쟁의 장으로 변화했다.  
 

 

6자회담 전망

올 9월 19일은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6자회담은 200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북한과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한 회담이었다. 북한은 1985년에 NPT에 가입한 후 1993년에 NPT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가 1994년 북미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NPT에 복귀했다.

9·19 공동성명은 핵무기에 관해 북한, 미국, 남한의 의무를 명시했다. ▲북한은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고 조속히 NPT에 복귀하며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침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며 ▲남한은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와 함께 ▲북한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지닌다고 인정하여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며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며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며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개최하기로 했다. 

9·19 공동성명 발표 후에도 6자회담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5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계좌를 동결시키고 북한이 2006년에 1차 핵실험을 단행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6자회담은 최종적으로 2008년 12월, 북한 핵에 관한 검증의정서 채택에 실패한 후 중단되었다. 북한은 2008년 6월, 핵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했으나, 실무회의에서 구체적인 검증조치, 특히 시료채취 여부를 두고 첨예한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출범한 오바마 정부는 9·19 공동성명을 존중하면서 6자회담을 진행하고 북한과 고위급대화로 이를 보강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2월에는 보스워스를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북한은 로켓발사(2009년 4월 5일)와 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을 단행했다.
 

미국의 회의주의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근본적 회의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진정 원하는 바는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경제지원이 아니라 핵-미사일의 실제 보유라는 것이다. 북한이 2002년 10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거나 2006년 핵실험을 단행했을 때도 이는 미국을 양자협상에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미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해 양자협상 의지를 충분히 제시했음에도 북한이 핵, 로켓 실험을 강행하자 북한의 의도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발생했다. 이때 이러한 회의론을 반영하여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것만으로 북한에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 원칙도 수립되었다. 2012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다는 2·29 합의도 있었으나 그해 북한이 로켓발사를 재개함으로써 비핵화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미국 측 입장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6자회담에서 미국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최근 대담에서 북한과 직접적인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감을 표명했다. (2015년 6월 12일 미국 외교관계협의회 대담록, ‘What to do about North Korea’) 과거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비핵화 협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를 보였지만, 현재 김정은 정권은 전혀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은 거의 무의미하고, 중국과 정책공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힐은 원래 미국이 북한을 협상에 끌어들일 지렛대가 없었고, 6자회담이라는 발상 자체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미국과 이란과 핵 협상 타결도 북한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이란은 최소한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공식정책을 채택했으나, 북한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하여 전문에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 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켰다”고 명시한 만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를 위한 협상을 하자는 입장이고 (또한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추가적 인센티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입장이라면 빠른 시일 내에 어떤 테이블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미국으로서는 비핵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북한과 협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과거 ‘협상파’ 중에서도 어떤 새로운 입장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 계획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정부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핵 보유국의 핵무기 정책은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합의했다. 새로운 협정의 목표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고, 추가 조약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새 협정에서 미국은 실전 배치된 핵탄두를 감축하자고 제한했을 뿐 비축분은 제외했다. 미국은 언제라도 비축분에서 4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배치할 수 있다. 전술핵무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당시 핵무기의 규모와 역할을 축소하여 핵무기 없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단계를 취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오히려 핵무기 현대화에 대한 기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수립했고, 새로운 핵무기 운반체계 개발했으며, 모든 유형의 핵탄두와 핵무기 생산시설의 수명 연장과 현대화를 추진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전술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다. 전술핵무기의 정밀성이 높아지면 과거에 더 큰 파괴력을 요구했던 목표물에 더 작은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고 방사성 낙진도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핵무기의 ‘사용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2010년 핵정책보고서(NPR)는 "핵무기를 추구하는 정권을 다루는 방식으로 핵 군비 경쟁은 부적절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핵무기 정책이 그런 선언에 부합하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  

한편 목함지뢰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휴전선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인 2015년 8월 24일, 국방부는 “북한이 감히 도발할 수 없도록 한국과 미국이 계속 협조를 하고 있다”며 “한미는 현재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면서 미군의 전략자산의 전개시점을 탄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전략자산은 사실상 핵무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핵무기를 탑재한 B-2, B-52H 폭격기는 2004년에 개시된 ‘확장 억지력’ 임무를 위해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지속적으로 순환 배치되고 있다. 미국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을 14대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8대가 태평양에 배치되어 있다. 잠수함들의  활동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결국 국방부의 발표는 북한의 대응 상황에 따라 핵무기 공격 위협을 가하고, 나아가 핵무기 공격을 개시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핵전쟁 시나리오가 가동될 수 있다는 의미가 언론을 통해 한국인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나? 한국 언론은 국지적 무장충돌이 핵전쟁 태세로 비화되는 한반도의 가공할 현실에 아무런 경고도 던지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남한 내 여론이 일치단결하여 북한의 굴복을 받아냈다고 격앙했을 뿐이다.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 태세는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사드는 과거 1980년대 전략방위구상 프로그램에 기원을 둔다. 사드는 충돌파괴무기이며 이는 곧 핵미사일 요격체계다. 즉 사드는 핵전쟁용 무기체계다. 또한 미국은 대중국 공해전 계획에 따라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한반도 핵전쟁에서 일본의 해공군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요격미사일도 충돌파괴무기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재개될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진척시키고 한미일 군사동맹은 대북 핵전쟁 계획을 착착 진척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인은 한편으로는 정부 군사정책의 의미나 핵 위험에 거의 무감각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핵 숭배에 맹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감각하거나 숭배하거나, 양자를 타파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분발이 요구된다. ●
 

6자 회담 일지

* 2003년 1월 10일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재선언  
* 2003년 8월27-29일 6자회담 1차 회의 개최 
*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4차 2단계회의, <9·19 공동성명> 채택
* 2006년 7월 5일 북한 로켓 발사 (은하1호) 
* 2006년 10월 9일 북한 1차 핵실험 
* 2007년 2월 13일 6자회담 5차 3단계회의, <2.13 합의문> 채택
* 2007년 10월 3일, 6자회담 6차 2단계회의, <10·3 합의문> 채택
* 2008년 12월 11일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서 핵 검증의정서 채택이 합의에 실패
* 2009년 4월 5일 북한의 로켓 발사 (은하2호) 
* 2009년 5월 25일 북한 2차 핵실험
* 2010년 1월 11일 북한 외무성 성명,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실시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게 정중히 제안한다.” 
* 2012년 4월 13일 로켓 발사 (은하3호) 
* 2012년 12월 12일 로켓 발사 (은하3호) 
* 2013년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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