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5/10 제9호
외투자동차기업의 끝나지 않은 수난
한국 자동차기업 매각사: 재벌의 과잉투자가 빚어낸 생채기
한국 외국인투자기업 1만 5000개 중 87퍼센트인 1만 3000개 기업이 1998년 이후 설립되었다. 그중 상당수가 부도난 국내 회사를 인수한 경우다. 대우차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하다가 그룹이 함께 실패한 사례다. 대우차가 세계 각지에 건설한 완성차 조립공장과 엔진 공장은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인도, 베트남 7개에 이르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97년 쌍용차까지 인수했다가 결국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쌍용자동차는 1986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를 쌍용그룹이 인수한 이후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져 성장한 회사다. 그러나 이는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려 심각한 경영난을 불러와 쌍용그룹을 해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쌍용차는 1998년 1월 대우그룹에 매각되었으나 대우그룹은 1999년 12월 워크아웃을 당한다. 삼성차는 1995년 후발주자로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으나 재무구조 악화로 1998년 SM5를 출시한 지 2년 만에 르노에 매각된다.
싼 값에 팔려 알토란이 된 대우차
대우차가 GM에 매각될 당시 김대중 정부는 대우차의 해외매각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대우차가 채권단에 진 빚은 자그마치 16조 원에 달했는데, 해외에 매각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우차는 3년이나 끌어온 매각 협상의 결과로서는 매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GM이 현금으로 낸 돈은 4억 달러뿐이었고, 인수하기로 한 자산 12억 달러와 부채 8억 달러는 새로 만들어지는 회사의 주식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 16조 원에 달하는 대우차의 부채 중 GM이 책임진 부채는 정상적인 영업부채 1조 원 남짓에 불과했다.
대우차는 매각되어 GM의 유일무이한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2008년까지 한국은 GM에서 150만 대 이상을 수출하는 유일한 공장이 되었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시기 중·소형차 시장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금융사업으로 큰 손실을 입은 GM의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경제위기 이후 GM이 중·소형차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생산지를 확대하자 한국GM이 가지고 있던 중·소형차 생산 독점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쉐보레 브랜드 차의 40퍼센트 가까이가 한국공장에서 생산될 정도로 GM 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한국GM의 불안한 미래
현재 GM은 대대적으로 새 플랫폼 기반의 신차를 출시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GM 수익의 핵심 지역인 미국과 중국에서는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유럽은 쉐보레 철수를 통해 오펠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하고 있다. 또, 시장 성장세가 큰 신흥시장(인도, 러시아, 동유럽)에서는 현지 생산을 늘리고 큰 투자 없이 그럭저럭 시장을 유지할만한 나라(태국, 베트남, 동남아시아, 남미)에서는 현 체제를 유지한다. 반면 시장 정체 및 거래조건이 악화된 곳(호주, 한국)에서는 생산량을 줄인다.
유럽에서 쉐보레의 철수는 한국지엠 유럽 수출 물량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왔다. 완성차 기준으로 보면 80만 대 중 30만 대 가까이가 영향을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량만이 아니다. 위의 구상에 따르면 한국GM이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중·소형차 개발과 신차 생산에서 유럽, 인도, 러시아 비중이 늘어난다. 그 대신 한국에서는 중후진국과 선진국 저가 시장에 판매할 구형 차 부분변경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2013년 한국지엠이 발표한 장기 계획 GMK20XX에 따르면 부분변경 모델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인센터, 중저가 차들을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CKD(반조립제품) 공급능력 확대, 저가 차종에서 수익을 뽑아내기 위한 생산성 향상이 주요 내용이다. 지엠 내에서 한국지엠의 위상이 크게 약화되는 것이다.
독자적인 모델 개발과 수출 생산기지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리는 순간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만이 수익 창출의 주요 수단이 된다.
특히, 위 계획에 의하면 준·대형차를 생산하는 군산공장과 부평2공장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부평 1·2공장 통합이 추진되다가 봉합되었으나, 부평 2공장에서 생산하는 준대형세단 알페온은 3분기까지만 생산하고 임팔라를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말리부 후속 차종인 엡실론을 부평 2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불안의 불씨는 남아있다. 유럽의 쉐보레 철수로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500여 명이 공장을 떠났고, 주간연속 2교대제에서 1교대제로의 전환을 합의하기도 했다.
쌍용차의 비극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이후, 쌍용차는 2000년 대우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2002년 전후로 정부의 지원 속에 회생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에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호전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2004년 중국의 상하이차로 매각된다.
상하이차는 1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쌍용차를 인수했지만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영업 축소행위에 나섰다. 대신 상하이차가 집중한 것은 2005년 출시된 신규차량 카이런과 체어맨W, C200의 기술이전 계약을 터무니없이 싼값에 체결한 것이었다.
또한 산업자원부가 관장하는 국책사업이었던 디젤하이브리드 기술도 유출되었다. 그리고 완성차 생산 능력 취득이 완료되자 고의적으로 현금 흐름을 줄인 다음, 세계경제 혼란을 틈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먹튀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회계법인에 의한 의도적인 회계조작이 수반되었다. 그리고 3000명이 해고되었고, 28명이 죽었으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직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상하이차에서 인도의 마힌드라로 매각된 이후에도 장기적인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쌍용차는 티볼리 이후 신차 계획이 없고, 대부분 부분변경 모델만 생산 중이다. 현재 마힌드라는 티볼리와 렉스턴, 카이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데 인도에서 이 차들이 제대로 생산이 되기 시작한다면 인도 공장과 한국 공장이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쌍용차의 미래는 또 다시 위태로워 지고 있다.
본사의 호구가 된 르노삼성
르노삼성은 2000년대에 꾸준히 성장해 왔다. 2003년 10만 대 수준이었던 판매는 2010년 27만 대까지 증가했고, 매출액은 2010년 5조 원을 넘어서며 2003년에 비해 3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006년 2200억 원을 정점으로 2008년부터 급격하게 하락해 2012년에는 2000억 원 적자가 났다.
이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르노닛산 본사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의도적인 자본유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르노삼성은 2003년 249억 원에 불과했던 르노닛산에 대한 각종 비용 지불을 2009년에는 2100억 원까지 늘렸다. 이 뿐만이 아니라 르노닛산에서 매입하는 엔진, 트랜스미션 등의 부품비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올라 2010년에는 르노닛산으로부터 매입하는 부품비 비중이 매출액의 20퍼센트를 넘어섰다.
현재 르노삼성은 2009년 이후 르노에 플랫폼을 통합당하고, 북미에 수출하는 차인 로그 위탁생산이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신차 계획도 없다. 수년간 이루어진 구조조정과 위탁생산 물량 때문에 2013년 이후 다시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공장 운영의 지속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떨어진 상태다. 내수 시장에서 두각을 보였던 르노삼성은 2008년 이후 신차가 나오지 않으면서 내수 물량도 폭락했다. 노동강도는 자동차 기업 중 최고이며 구조조정은 상시화 되었다.
외투자동차 3사의 지속가능한 미래?
자동차 기업 3사의 해외 매각은 외자유치라는 명분하에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대우차 매각 당시에는 굴지의 자동차 기업인 GM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며, 쌍용차 매각은 쌍용차의 대중국 수출 통로를 확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외투 자동차 3사는 중장기적 발전 전망을 세우지 않았고, 생산과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국 공장은 글로벌 생산기지 내의 하청생산기지가 되었고, 기술유출, 자본유출에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자동차 산업은 각종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국가적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부도 과정에서 산업은행 등을 통해 기업에 지원된 세금 등 국민의 혈세가 엄청나게 투여되었다. 자동차 기업이 각종 혜택을 받으며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하다 해외에 매각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국부유출이다.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등 노동자들의 희생이 컸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태에는 외투자본에 대한 규제방안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매각을 추진한 정부에게 큰 책임이 있다. 정부는 해외자본에 대한 기술유출과 자본유출을 방어하고 고용친화적인 경영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외투3사의 노동조합은 내수확대와 물량확보, 고용안정을 걸고 각개전투중이다. 물량과 공장철수를 가지고 언제든지 노조를 협박할 수 있는 것이 외투기업인 만큼 투쟁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 특히 노동조합이 내수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 간 경쟁에 동참하는 것으로, 노동자 모두가 승리하는 전략일 수 없고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의 빌미가 될 뿐이다. 노동조합의 투쟁 또한 개별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을 넘어 국가 정책의 전환을 위한 공동의 투쟁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