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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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 제8호

이중의 투쟁

  • 구준모 편집실장
트로이카의 굴욕적인 구제금융안을 수용한 시리자가 분열했다. 치프라스의 총리 사퇴로 그리스 인은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새 정부는 긴축에다 수많은 민영화 추진의 압박에 몰려있다.

이번 구제금융안에 따르면 그리스는 국가자산을 팔아 500억 유로(약 67조 원)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핵심 국가자산인 에너지의 민영화도 포함된다. 지난 15년 동안 유럽연합은 전력 시장에 ‘경쟁 도입’을 주문해왔다.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그리스전력공사 지분 49퍼센트가 매각되었으나 정부가 여전히 51퍼센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의 민영화가 주요 타깃이다.

하지만 그리스 민중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 사마라스 정부(신민주당)가 추진한 테살로니키(그리스 제2의 도시)의 물 민영화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민영화 반대 운동이 주도한 주민투표에 21만 명이 참가해 98퍼센트가 반대에 투표했다. 에너지 민영화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 

지난 정부의 사례를 보면 트로이카의 목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마라스 정부는 2012년까지 150억 유로,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민영화시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4년 간 35억 유로의 민영화만 성사시킬 수 있었다. 낙후한 설비, 막대한 체납 요금 규모 등으로 그리스전력공사가 별로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는 점도 민영화 전망을 어둡게 한다.
물론 전력 민영화를 막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기존의 시스템을 지키는 것으로는 그리스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력의 70퍼센트가 질이 나쁜 그리스산 갈탄으로 생산되어 큰 환경오염을 낳고 있다. 그 결과 그리스는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유럽 상위의 온실가스 배출국(1인당 또는 에너지단위당)이 되었다.

그리스가 에너지 위기와 민영화 압력을 공히 떨쳐나가기 위해선 갈탄의 사용을 줄이고 풍부한 태양광을 이용한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꾀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고 공정한 방식은 그리스전력공사의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좌파 정당들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필수적이다.

민영화의 저지와 더불어 에너지 전환과 재구조화는 그리스 경제의 재건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새롭게 부과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옥죄는 사회적 관계를 바꾸는 것 말이다.

오늘 그리스 정세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를 통해 반추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오늘보다》 9월호는 그리스의 위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리스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시리자의 성공과 한계는 무엇을 보여주는지 살펴보고 우리에 비추어 따져보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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