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5/09 제8호
공모자들
최근 ‘아파트 갑질’이 화제가 됐다. 한 아파트에서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시켜 반송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은 택배상자 사진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택배 기사가 짐꾼인줄 아냐’며 아파트의 갑질을 질타했고, 일부는 아파트 추적에 나섰다. 보안을 이유로 길을 막아 짧은 길을 빙 둘러가야 하고, 심지어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까지 막는 요새화된 고급아파트들의 행태는 익히 알려진 바다.
집화·배송을 담당하는 택배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4시간 일한다. 오전 6시반 출근해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까대기’(배송지 별로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를 하고, 오후 들어 배송을 시작해 하루 200건 정도를 처리한다. 쉬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2분에 하나 꼴이다. 이런 현실에서 택배차량 진입을 막고 아파트단지 밖에서부터 걸어서 배송하라는 것은 분명 공분을 살만 하다.
그러나 아파트의 갑질이 없다고 택배노동자의 현실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파트 배송은 편한 편이다. 밀집된 지역에 진입이 편하고,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택배 조합원들의 카톡방에는 배송 관련한 사연들이 넘친다. 한 조합원은 큰 생수통 8개 들이 포장 4개를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5층에 배달한 사진을 올렸다. 2리터짜리 8통이면 물 무게만 16kg, 포장 4개면 64kg이다. 천만 애견인 시대인 요즘, 반려동물 동호회에서 동물 목욕물로 생수를 공동구매해 배송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엄연히 별도 포장 물품인데도 배송비를 줄이기 위해 4개를 한건으로 등록해 2500원짜리, 이걸 배송하고 택배노동자가 받는 돈은 750원이다. 정해진 무게나 규격을 벗어난 화물을 나르다 허리를 다치거나 시야를 가려 계단에서 구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전체 화물노동자 중 97퍼센트가 특수고용노동자로, 택배사의 유니폼을 입고 택배사 로고가 찍힌 화물차를 이용해 배송을 하지만 대부분 개인사업자다. 차량 운행과 유지에 필요한 경비는 물론 배송에 필요한 경비도 택배노동자의 몫이다. 오죽했으면 2013년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요구안 중 하나가 ‘박스테이프, 운송장, 취급주의 라벨 등 택배 운송에 필요한 소모품은 무상 지급하라’였겠나. 배달 수수료에 포함된 것이라며 매일 3~4시간씩 진행하는 까대기에 대한 대가도 없다. 고객 항의가 있으면 회사는 택배노동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고, 제품이 파손이라도 되면 책임을 따지기 전에 원물대(제품의 원래 판매가)를 배상시킨다. 지난 10여 년간 택배비가 계속 내려 2500원이라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택배노동자들을 쥐어짠 덕이다.
동북아 물류중심 국가라는 지난 정권의 구상은 낮은 물류비를 전제로 한 것이었고, 이는 화물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의미한다. 갑질하는 고급아파트만이 아니라 3초면 끝나는 모바일 결제와 총알 배송 시스템에 길들여져 하루에도 열두번씩 ‘배송추적’ 버튼을 터치하는 우리 역시 수탈의 공모자들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고충을 생각해 친절하게 주문하면 음료를 할인해주겠다던 엔젤리너스의 이벤트가 비웃음을 샀듯 택배노동자에게 갑질을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닐 게다. 택배노동자가 짐꾼이 아니라면 그들이 행한 노동의 대가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며, 결국 ‘비용’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 노동자의 권리와 공동체의 안전이 우선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이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