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지역
- 2015/09 제8호
공단 불법파견과의 싸움, 작지만 소중한 승리
모베이스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부품사다. 전기전자 업종 특성상 물량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모베이스 역시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파견노동자들을 채용하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했지만 상여금은 절반을 받았고, 6개월에 한 번씩 사직서와 근로계약서를 반복적으로 써가며 파견회사를 옮겨 다녀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몇 년을 일해도 퇴직금은 고사하고 연차수당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원청과 파견회사들은 제조업 파견이 불법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베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왜 그럴까? 파견법 제6조 [파견기간] 4항에 ‘일시적 간헐적 사유에 한하여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을 경우 최장 6개월까지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 점을 악용하여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파견노동자 돌려 막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에서 극찬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첨단 산업’ 갑을관계의 추악한 현실이다.
중노위 차별시정 판정
원청에게도 책임을 묻다
지난 6월 말 중앙지방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서는 모베이스 파견노동자들이 제기한 차별시정 재심이 있었고, 재심 결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의 초심 판정을 취소하고 파견노동자들의 주장이 전부 인정되었다. 재심 판정의 주요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제척기간(차별시정 신청기한)은 파견업체 근로계약 종료가 아닌 사용업체 기준으로 파견 종료 후 6개월이다. 둘째,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가 연대하여 불합리한 차별(상여금 차등 지급, 연차수당 미지급)에 대해 책임져라. 셋째, 원청·파견 사업주들은 반복·고의적 차별에 대해서 2배로 보상하라.
이 판정은 그 동안 지노위나 중노위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제척기간, 당사자 적격, 연차수당의 차별시정 대상 여부 등에서 파견노동자들의 주장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특히 파견노동자의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원청)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 제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에 조금이나마 제동을 걸 수 있게 된 점이 고무적이라 하겠다.
공단 조직화 변화구가 필요하다
차별시정 판결을 이끌어 낸 파견노동자 중 현재 모베이스에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6개월에 한 번씩 도래하는 파견계약 갱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존 파견회사들은 모두 폐업했고 다른 파견회사들로 채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조직화 방식인 사업장 단위의 노조 설립이나 임단협 교섭 요구는 사실 엄두 내기 어렵다. 그 대신 모베이스 파견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개별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가입과 동시에 불법파견과 차별시정을 매개로 싸움을 시작했다. 현재 불법파견 고소 건은 일시·간헐적 사유가 아니라는 점이 인정되어 모베이스에 직접고용 명령이 내려졌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상황이다.
올 1월 시작한 모베이스 개별 조합원 모임은 지난 광복절에 13차 모임까지 진행했다. 모임은 주로 현안 대응 논의와 함께 교육(여성의 날, 임금·퇴직금 계산, 국민연금 등), 영화보기(〈카트〉 〈소수의견〉), 산행 등을 병행하면서 부담감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노동조합의 기존 관행에 비추어 보면 낯설고 익숙지 않은 방법 일수도 있겠으나 공단 정보 파악, 동료 상담 소개, 사업장 인적 망 구성 등에서 의외로 큰 수확도 얻을 수 있었다.
작년 11월 파견노동자 3명이 시작한 투쟁(《오늘보다》 2015년 1월호 ‘파견노동자 김건희 씨 이야기’ 참조)을 평가해 본다면 현재 모베이스의 투쟁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교훈이고 작은 결실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공단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에 주목하여 노동자들이 스스로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작지만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 공단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