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등
  • 2015/09 제8호

아직도 빈활을 가냐구요?

2015년 반빈곤권리장전 가든파이브연대기

  • 고준우 고려대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빈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연대의 기쁨을 알려주었던 빈활(반빈곤연대활동)이 올해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반빈곤 연대활동’에서 ‘반빈곤 권리장전’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활동 역시 다양한 투쟁 현안에 대한 포괄적 연대에서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집중 연대로 바뀌었다. 게다가 올해는 청계천 상인 문제에 연대해 나는 두 번째 빈활임에도 처음 참가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청계천 상인 이주대책으로 세운 가든파이브

청계천 상인들과 연대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배움과 깨달음, 그리고 충격의 연속이었다. 가든파이브가 청계천 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이주대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은 내게 생소한 사실이었다.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서울시는 상인들을 몰아내면서 새로 지어질 이주단지(현 가든파이브)에 건설원가 수준의 분양가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상인들도 서울시가 하는 말만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상인들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분양가가 형성될 줄 알았으면 저희 상인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동의를 안 해줬을 거예요. 이건 사기고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발 상자와 먼지로 가득 찬 청계천신발상가 C동의 복도 한 구석에서 전우진 씨는 그렇게 분노를 토해냈다. 막상 이주단지가 지어지고 나니 상인들에게 당초 약속했던 7000만 원보다 두 배 높게 분양가가 형성된 것이었다. 경매에 입찰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건설 규모를 무작정 확대함에 따라 서울시의 당초 계획보다 훨씬 높은 건설원가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그대로 이주상인들에게 전가되었다.

“내가 피디수첩이랑 인터뷰만 두 번을 했는데도 바뀌는 게 없더라고. 하도 답답해서 공무원이랑 SH공사 사람들을 찾아갔는데 그 사람들은 또 권한이 없다고 하고. 그때부터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빚이나 줄었음 하고 바랬지.”

청계천 골동품상가 한 구석에 자리 잡은 CCTV 판매점 ‘홍’에서도 한숨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청계천에서 카메라를 팔며 자식들을 길러낸 조경남 씨는 노후를 준비하러 가든파이브에 이주했다가 되려 감당하지도 못할 빚만 늘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면담 내내 전우진씨와 조경남씨의 얼굴에선 체념과 분노, 슬픔이 뒤섞인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서울시가 서울시민인 청계천 상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니 분노가 차올랐다. 하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막막함이었다.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긴 시간동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긴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 당사자들이 별 수 없이 각자 생존을 위해 흩어져버렸다는 사실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가든파이브 답사는 무력감을 남겼다. 가든파이브의 넓고 텅 빈 공간이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에게 매각된 공간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SH공사가 가든파이브 운영을 포기하고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은 주변 신도시만 완성되면 다시 청계천 상인들을 위한 이주대책이 현실화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청계천 주변에 땅을 가지고 있었던 부동산 소유자, 대규모 사업에 입찰할 수 있었던 대형 건설자본, 투자처를 만들 수 있었던 금융자본, 대선주자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상권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분양가를 헐값으로 내놓은 덕에 맘놓고 가든파이브의 빈 공간들을 사들일 수 있었던 투기꾼들과 대형 임차업자들까지. 이들이 견고하게 쌓아놓은 이윤의 탑 그 어디에도 청계천 상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답사를 마쳤지만 청계천 상인들과 연대하고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딘지 종잡을 수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선 “연대가 주는 기쁨과 감동을 경험하기는커녕 깊은 절망감만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마저 움트고 있었다. 그렇게 무기력함에 젖어들고 있을 쯤 오랫동안 저항해 온 활동가들과의 만남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가든파이브에서 오랫동안 투쟁을 이끌어온 유산화 위원장은 반빈곤권리장전 실천단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학생들의 관심과 연대가 큰 힘이 된다”던 유산화 위원장의 말은 우리의 활동이 단순한 ‘관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연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가든파이브에 연대해온 노동당 서울시당 김상철 위원장과의 간담회는 참가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단비였다. 상황이 어렵지만 서울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상철 위원장에 따르면 서울시가 이주대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대책마련의 책임 역시 서울시에 물을 수 있다. 견고한 벽을 넘어설 대안의 활로가 열린 것은 우리에겐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두 활동가의 모습이 빛나 보였다.
 
 

반빈곤 권리장전: 선언과 약속

조사활동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청계천 상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닥친 불행에 분노를 느끼며 가장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은 빈곤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청계천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에 의해 갑작스레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또 그렇게 쫓겨나 이주하게 된 가든파이브에서도 제대로 된 상권은 없었고 SH공사가 상권을 조성한다며 들여온 대형 임차업자들은 그나마 있던 손님들조차 빼앗아 버렸다. 청계천 상인들 어느 누구의 뜻도 반영되지 않았던 가든파이브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청계천 상인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이윤을 쌓을 수 있었던 자본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이윤 증식을 삶보다 중시하는 구조에 의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문제였다. 40여 년 전 청계천 고가도로로 만들 때 판잣촌 빈민들이 강제로 쫓겨났다는 사실이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두고 도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것을 볼 때, 빈곤 문제의 핵심은 그저 당장의 결핍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반빈곤 권리장전’의 두 가지 의의

앞서 밝혔듯 빈곤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그 해결도 개인이 아닌 공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공공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빈곤하게 살지 않을 권리를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반빈곤 권리장전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또한 빈곤이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동적인 과정이라는 깨달음은 반빈곤 투쟁 역시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런 고민으로 빈곤에 맞서 싸우는 주체들에게 지속적으로 연대하겠다는 다짐이 반빈곤 권리장전 안에 담겼다. 인간이면 누구나 빈곤 속에서 처참하게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선언’과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대하고 투쟁하자는 ‘약속’으로서 반빈곤 권리장전이 완성되었고, 7월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실천단과 반빈곤운동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반빈곤 권리장전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5 반빈곤 권리장전 활동은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문화제로 막을 내렸다. 빈곤 문제에 맞서 투쟁해온 이들과 대화도 나누고 실천단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공연과 영상도 보며 그간 활동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실천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자리였음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에서 이후의 관계와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빈활이 끝나고 동아리에선 앞으로 가든파이브 의제에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졌다. 작년 빈활을 통해 편견을 넘어 사람들과 연대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듯, 올해 함께 참가한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한여름의 반빈곤 현장활동이 행복한 기억이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노래 가사처럼 “이 얼음 같은 세상을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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