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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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 제8호

보따리장수처럼 떠도는 방과후강사들

방과후강사의 노동실태와 권리 찾기

  • 배일훈 전국방과후학교강사연합회 사무국장
 
오후가 되어서야 학교에 나타나는 선생님이 있다. 이름도 생소한 가죽공예, 로봇과학, 교육마술, 음악줄넘기, 우쿨렐레, 방송댄스 등 과목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이들은 바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3만 명의 ‘방과후강사’다. 이들이 있기에 부모들은 퇴근시간까지 마음 놓고 직장에 다니고,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방과후강사에게 권리란 없다. 그 이유는 이들의 처우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방과후강사는 학교 강사직종 중 유일하게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 영어회화전문강사와 스포츠강사는 학교장과, 예술강사는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근로계약을 맺는 노동자인 반면 방과후강사는 일종의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다. 학교장과 ‘방과후 프로그램 위수탁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노동법,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방법이 없다. 교육청·시도교육청의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과 학교장의 재량권만이 방과후강사의 처우를 결정한다. 이처럼 학교 외부자원 활용 차원에서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지난 20년간 아이들의 오후를 책임져 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방과후강사는 스스로를 ‘보따리장수’라 부른다. 이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불안한 미래

방과후강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한 해 계약을 마치면 다음 해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매년 계약서만 다시 쓰는 게 아니라 공모절차를 다시 밟기 때문에 누구에 의해 자리에서 밀려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같은 과목의 강사는 경쟁자가 된다.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 평가에 따라 재계약될 수도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학교장에게 있다. 학교장의 미움을 사거나 내정자가 있다면 만족도 평가와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총 계약기간이 2년 이상인 경우에는 공모절차를 다시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즉 1년차에는 만족도 평가가 재계약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면, 2년차에는 그것조차 무의미하다. 모순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해 방과후강사들은, 왜 실력을 인정받은 강사들이 3년, 4년 계속해서 일할 수 없는지 묻는다.

학교장의 절대적 권한과 가이드라인의 문제점이 결합되면서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재계약이 확정되었지만 가이드라인 때문에 형식적으로 채용공고를 내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지원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성심성의껏 준비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다. 이것을 ‘들러리 면접’이라 부른다.


무심한 행정절차

방과후학교에는 수강료 대납 관행이 있다. 만약 수강생 1명이라도 수강료가 입금되지 않으면 학교 전체 강사의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으며, 연체기간이 3개월을 넘기기도 한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행정실 출납원의 업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당사자인 강사들이 학부모에게 수강료 납부를 부탁하는 연락을 하거나 자신이 수강료를 대납하고 있다. 급식비 미납과 무관하게 급식업체에는 비용을 선지급하는 데 반해 수강료 미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강사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마다 공모 지원서류 양식이 제각각이고, 인터넷 우편접수는 불가능하여 무조건 방문접수만 해야 한다. 면접 시간과 수업시간이 겹치지만 휴강이나 대체강사 활용도 쉽지 않다.
 

위탁업체의 갑질

방과후 위탁업체 소속 강사는 고율의 수수료에 시달린다. 업체들은 강사들로부터 수강료의 9.1~45.6퍼센트를 명의대여료, 기타관리비 명목으로 챙기고 있다. 

일명 ‘노예계약’도 있다. 출강 중인 학교와 계약해지 시 월 수익 12배의 위약금 부과, 계약 파기 시 훈련수당 200만 원 환불, 계약해지 후 1년간 계약기간 중 출강한 학교에 근무 금지와 같은 비상식적 계약내용이 있는가 하면, 업체가 강사들 명의의 월급통장을 대신 관리하거나 업체의 교재, 재료 사용을 강요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위탁계약과 업체에 대한 규제, 관리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권장과 방조 속에 방과후학교를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는 사례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오해와 편견

방과후강사 처우개선 요구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편견이 있다.
방과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방과후강사들

첫째, 방과후강사는 고소득자라고 많이 오해한다. 그러나 교육청 통계(2015년 4월 기준)에 의하면 방과후강사가 받는 수강료의 평균이 경남은 월 80만 원, 광주는 91만 원에 불과하다. 여러 곳에서 수업을 맡아 월강사료가 400만 원이 넘는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고, 대다수 방과후강사의 소득은 근로자 평균 소득보다 적다.

둘째, 일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오해다. 주당 2~3일간 5시간 정도의 수업을 한다는 점에서 방과후강사를 전일제 일자리와 직접 비교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모든 방과후강사들이 계약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무료노동’하고 있다. 수업 20분 전 출근부 체크, 수업자료 및 재료 준비, 학생들을 돌보느라 실제로 쉬지 못하는 쉬는 시간 10분 그리고 수업 후 교실 청소, 뒷정리, 문단속 등까지 합하면 수업 1시수와 맞먹는 약 30~40분이 든다. 여기에 차시별 운영계획 작성, 수업준비 시간까지 포함하면 강사료에 포함되지 않은 노동시간이 상당하다.

셋째, 방과후강사는 선생님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호도하며 방과후강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방과후학교의 양적 팽창만을 목표로 한 교육당국은 방과후강사의 양성, 연수 및 지원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만 끌어다 쓰는 식으로 20년이 흘러온 것이다. 강사의 자질과 능력을 탓하기 전에 현재 방과후강사들이 어떤 교육과 지원책이 필요한지 의견을 듣고 해법을 마련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이들은 ‘특수한 사례를 가지고 문제를 과장시킨다’고 말한다. 문제는 교육부, 교육청에도 방과후강사의 현황과 실태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는 데 있다. 지난 20년간 책임을 방기해왔던 교육부는 여론에 떠밀려 이제야 현황 파악과 대책 수립 중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알아서 좋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도 뭉치자!

방과후강사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체 ‘전국방과후학교강사연합회’가 만들어졌다. 방과후강사의 고용과 노동조건 특성 상 흩어져있는 이들을 한 공간에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방과후강사들 간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지 않은 데서 오는 만남 자체의 곤란함, ‘블랙리스트’가 돌아 이후 생계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 오랜 기간 개선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방과후강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서울, 경기, 대전, 충북, 경북, 대구, 경남, 부산에서 적게는 10명, 많게는 60명이 넘는 이들이 모였다. 8월 22일 방과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는 400여 명이 모여 개선방안과 대책을 촉구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 뿐이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는 진리를 되새겼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합회로 뭉치고 노동조합을 건설하면서 학교의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었던 역사를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방과후강사들은 지금 ‘달라질 미래’를 함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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