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사회운동
  • 2015/09 제8호

노동격차 청년실업 재벌이 책임져라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박근혜의 꽃놀이패

박근혜 대통령은 8월 5일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담화를 전후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관련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민주노총 총파업과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로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정부는 취업규칙 개정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행정지침을 통해 우회적으로 추진했고, 하반기에 들어서는 태도를 바꿔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노동개혁은 집권 여당의 선거 전략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정부의 업적을 내세우는 데 노동개혁만큼 적절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 때문에 청년실업이 발생하고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가 확대된다는 주장은 암울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노동자 내부로 돌려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면하게 해준다. 

또 기득권 노동자를 손봐준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보호정책이라 포장해 임금과 시간에 대한 유연화를 꾀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정부는 공기업 노동자들이 혜택은 과도하게 누리면서 양보하지 않는다고 공격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9월 정기국회에는 기간제법, 파견법, 노동시간 연장 및 유연화를 초래할 근로기준법 개악 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총선 전까지 노동법 개악에 성공한다면 기업들의 환호 속에서 경제 활성화 기반을 다졌다고 선전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 하더라도 귀족노동자의 이기심을 탓하며 책임을 떠넘길 수 있어 불리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꽃놀이패인 셈이다. 정부와 여당이 연일 강하게 공세를 퍼붓는 이유다. 
 

재벌 혼자 잘 나가는 세상

그러나 노동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에 대한 책임, 만연한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책임은 재벌에게 있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출재벌 주도의 성장으로 막대한 무역 흑자를 축적해 왔다. 그 결과 재벌들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불안한 고용,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수출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30대 그룹은 2001년 매출액 510조 원, 순이익 3조 원을 기록했는데 2014년에는 매출액 1500조 원, 순이익 55조 원으로 실적이 껑충 뛰었다. 재벌들의 매출액과 수익이 각각 300퍼센트, 1800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은 140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재벌들은 수직적 하청구조를 통해 하청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수탈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 2위의 재벌인 삼성과 현대차다.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할 수 있던 비결은 요동치는 시장 상황에 따른 유연한 생산과 저렴한 생산비용에 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들은 마치 삼성전자와 한 몸을 이룬 것처럼 유연하게 부품을 공급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고무줄처럼 탄력적이었고 물량 증감에 따라 해고와 고용이 반복됐다. 하청업체들은 기술력보다 얼마나 싼 단가에 물량을 잘 맞추는가, 즉 노무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자동차도 다르지 않다. 현대차가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도약하게 된 비결 중 하나는 매출과 수익이 부진하더라도 그 비용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또한 현대차는 매출이 증가해도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사내하청을 통해 외주화하고 국내 생산보다 해외 생산을 늘렸다. 생산의 중심을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 생산은 시장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기조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했음에도 현대차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내하청을 포기하지 않는다.  
재벌부터 하청업체까지 유연하고 값싸게 생산하기 위한 비용을 하위 하청업체에 체계적으로 전가한 결과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재벌에 납품하는 다단계의 하청업체들이 밀집된 공단은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불법파견이 만연하고 최저임금도 위반한다. 대기업도 준수하지 않는 법을 하청업체가 준수할리 만무하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임금, 고용이 하청업체가 물량을 상위 업체나 재벌로부터 얼마나 따내는가에 따라 늘고 줄어든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경직되어서 문제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유연해서 문제다. 세계경제위기 속에서도 재벌은 성장하고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실업 유발자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재벌에게도 책임이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2000년대 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며 매출 규모도 급증했는데 고용은 늘지 않았다.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휴대폰은 20퍼센트 이하만 국내에서 생산되고 대부분은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현대차 역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가 전체 생산에서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단지 재벌의 생산시설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들 역시 해외로 동반 진출하기 때문에 재벌의 매출이 상승해도 국내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 규모가 증가함에도 직접고용을 늘리기보다 외주화해 간접고용을 확대하여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국에서 그나마 고용창출 여력이 있는 재벌들조차 일자리를 확대하지 않고 해외로 이전하거나 외주화한 결과 청년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재벌은 노동유연화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정부는 그것을 용인해줬다. 재벌이야말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청년실업의 유발자인 것이다. 결국 노동개혁이란 심화될 경제위기에 대비해 노동시간과 임금을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데 있다. 한마디로 값싸게 쓰고 버릴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노동시장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재벌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과 무관한 개정안을 포장해서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재벌들은 광복절 특사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청년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빤하게도 청년일자리로 포장된 협력업체 인턴 일자리나 직업훈련이 태반이지만, 기업들도 희생을 감수하고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여론몰이를 하는 상황이다.
 


프레임 자체를 바꾸는 운동을!

정부의 귀족노동자 프레임에 대항하여 재벌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이 필요하다. 한국사회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조건 악화와 청년 일자리 부족을 초래한 주범이 정규직의 기득권 때문이 아니라 재벌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극단적인 노동유연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의 귀족노조 프레임이 부당하지만 대중적으로 수용되는 이유는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운동이 앞장서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과 같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폭넓은 수준의 여론전을 수행해야 한다. 최저임금 및 근로기준법 준수 캠페인을 벌이며 위반사업장 신고를 받고 상담하는 활동을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민주노총이 하반기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요구가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미조직 노동자들과 함께 재벌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을 전 사회적으로 확장해야 재벌만 배불리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의 진실을 폭로하고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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