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09 제8호

그리스 위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보수언론의 복지병 비난이 노리는 것

  • 이상욱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

위기는 복지병 때문인가?

보수언론은 그리스 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7월 2일자 신문에서 일제히 그리스 공무원 월급 총액이 GDP의 50퍼센트를 넘고, ‘철밥통’에다 ‘황제복지’를 누리고 사회보장 지출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또 긴축재정안이 부결된 직후(7월 7일)에는 “빚내 복지 잔치 파산한 그리스”, “복지 금단 증상에 빠져있는 그리스 국민”이란 표현을 쓰며 과도한 복지 혜택이 “그리스를 망쳤다”고 선동했다. 한국 역시 이대로 가면 그리스처럼 국가 파산에 처한다며 복지재정 지출을 재검토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 추진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이와 같은 그리스 비난은 사실과 다르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6년 그리스의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18퍼센트로 OECD 평균 15.2퍼센트보다 조금 높았으며, 전체 정부지출 현황은 GDP 대비 42.4퍼센트로 OECD 평균 43.5퍼센트보다 오히려 낮았다. 즉, 그리스는 복지천국도 아니었고 흥청망청 돈을 쏟아붓지도 않았다. 공무원 임금의 GDP 비율은 유로 평균보다 높긴 하지만 11~12퍼센트 수준이었고, 더욱이 그들이 말한 ‘흥청망청, 게으른, 그리스인’들은 OECD 국가 중 멕시코·한국 다음으로 최장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잘못된 근거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복지를 비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복지 확대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리스 재벌의 책임과 소득격차 문제를 부차화 시키는 효과도 있다.
 
일러스트 Petar Pismestrovic

그렇다면 재정위기는 왜 폭발했을까. 우선 유럽통화동맹과 역내 불균형이 직접적 원인이다.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만이 발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일국의 정부가 화폐량을 조절할 수 없고, 독자적 통화가치 변동이 불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경쟁력이 낮았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유로화 도입 이후 실질환율이 높게 평가되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채발행으로 재정적자를 늘리면서 유로화를 유입시키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독일은 저평가된 실질환율로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갔고 유로존 내 불균형은 보다 심화되었다. 결국 그리스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로 인해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스의 지배세력, 올리가르히는 누구인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대기업 재벌이라면, 그리스 사회는 올리가르히가 지배한다. 올리가르히는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소수자에 의한 정치 지배’를 뜻하는 말이었고, 오늘날에는 그리스의 산업·금융재벌을 뜻한다. 올리가르히는 그리스의 대표 산업인 해운업을 필두로 부동산·금융·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그리스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히는 탈세와 조세회피·정경유착의 장본인이다. 한국의 재벌처럼 가족 경영 체제로 기업을 지배하며, 50년 넘게 갖가지 특별법과 특혜의 수혜자였다.

올리가르히는 대표적으로 톤(t)세 제도(영업이익이 아니라, 선박의 무게를 기준으로 법인세 산출)로 세금 부담을 줄였고, 선박을 해외에 등록해 과세를 피해갔다. 이렇게 정부와 정치권의 철저한 비호 아래 축적한 부는 2001년 이후 주택투기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더욱이 유로화 도입 이후 저금리 차입이 가능해졌고, 부동산 가격이 통화가치 상승으로 저절로 오르며 금융투기가 경제를 이끌었다. 그리스가 수출 중가 없이 2001~07년간 연평균 4퍼센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올리가르히는 그리스가 구제 금융을 받고 있음에도 승승장구하여, 2014년 세계 해운시장 1위를 탈환했다.

조세 회피, 각종 특혜로 인한 세금 절감, GDP의 8퍼센트로 추정되는 탈세와 부패가 그리스 경제를 좀먹었고, 여기에 금융투기 거품 10년의 세월까지. 이것이 그리스 위기의 내막이자 올리가르히의 실체다.

시리자가 집권 후 ‘올리가르히 척결’을 선포한 것은 그리스 재벌의 심각한 부의 독점과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혜택을 줄이고 세금을 부과할 경우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리스 경제를 망가뜨려온 대가를 민중들에게 전가해온 산업·금융재벌에 대한 통제 없이는 그리스 민중의 고통을 끝낼 수 없음이 분명하다.

 


구조개혁으로 그리스 구출이 가능할까?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유럽연합으로 구성된 채권단)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요구했다. 이를 이행해야 그리스가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5년 혹독한 긴축을 겪은 그리스 경제는 올해 8월 3차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부도(디폴트)를 면할 수 있는 실정이었다. 시리자 정부가 긴축 반대를 내걸고 당선되었고, 그리스 민중들은 7월 국민투표에서 트로이카의 요구에 반대했지만, 결국 치프라스는 3차 구제금융안을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제로 5년 동안 그리스는 위기에서 얼마만큼 벗어났을까. 그리스는 트로이카의 구조개혁 요구에 따라 강도 높은 긴축을 실행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구조개혁 성과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상황은 조사대상 21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구제금융 직전인 2008년과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은 2014년을 비교해보자.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그리스의 실업률은 7퍼센트→25.5퍼센트로, 국내총생산(GDP, 2008년 기준)은 0퍼센트→-26.3퍼센트로, GDP대비 국가부채는 113퍼센트→177퍼센트로, GDP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10퍼센트→2.5퍼센트로 변했다. 실업률은 치솟고, 부채는 증가했으며, 경제규모와 재정적자는 현저히 축소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는 트로이카의 요구를 충실히 받아들였지만 과거보다 더 궁핍해졌다. 2400억 유로의 채무원금은 한 푼도 갚지 못한 채 3차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상황에 직면했으며, 부채를 ‘돌려막기’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삭감, 해고, 소비침체는 심화되었다. 심지어 이번 긴축재정안 역시 재정의 흑자전환을 위한다는 구실로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긴 어둠의 터널에 갇힌 그리스 민중이 갈 수 있는 길은 트로이카에 맞선 싸움밖에 없다.
 

그리스 노동자들의 선택

보수언론은 강도 높게 그리스 노동자들을 비난해왔다. “나라 망칠 투표결과에 환호하는 그리스 국민을 보며”, “복지 포퓰리즘이 타락시킨 그리스의 자포자기”같은 자극적인 사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국가가 부도나게 생겼는데 파업을 한다며 제정신이 아니란다. 

나아가 이들은 한국의 IMF 극복 사례를 배우라는 훈계까지 덧붙인다. ‘금모으기 운동’으로 보여준 국민성과 구조개혁 프로그램의 이행을 통한 조기졸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시 대규모 구조조정과 민영화, 자본시장 완전개방 등은 당시 노동자 투쟁에 대한 폭력과 탄압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노동운동의 대응마저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불평등 국가가 되었고, 국가부도의 책임자인 재벌과 자산가들은 다시 부활했다.

그리스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은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비용 절감에 더해 화폐(원화)의 평가절하로 수출을 늘려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세계경제가 금융화에 따른 일시적인 경기상승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는 통화가치 조절이 어렵고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있기에 빚을 갚기 위해선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5년간 지속된 임금·연금 삭감과 해고 압박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스 위기로 유럽통화동맹의 모순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트로이카의 비열함과 유럽 금융자본, 그리스 산업·금융재벌의 책임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 트로이카의 요구를 실행하고자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긴축에 맞선 그리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족쇄에서 벗어겠다는 선언이다. 이 투쟁은 유럽 전역으로, 한국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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