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5/08 제7호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야기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에 지친 분들에게 《지금은 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심각하게 재밌다’는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이 쓴 우화집이다. 아직 《송곳》이 완결되지 않았으니 섣부른 평가는 이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어디선가 한 번쯤 본 것 같지만, 기존과는 다른 울림을 주는 그런 스무 가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중 두 가지 이야기만 간단히 소개해하면 이렇다.
<가위바위보> 뭐든지 오른손 가위바위보로만 결정하는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을 다친 후 주먹을 펼 수 없는 사람이 생겼고, 서서히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채고는 그와의 대결에서는 모두가 보자기를 내었다. 순식간에 그는 마을의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았고, 나쁜 집과 안 좋은 음식만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다음에 왼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이 때, 마을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규칙을 고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규칙을 걸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마을 사람들 모두를 이기면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라는 것이다.
<늑대와 염소> 언젠가부터 염소들이 저항을 시작하여 늑대들은 사냥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때 늙고 경험 많은 잿빛 늑대가 ‘흰 염소만 골라서 사냥하라’고 조언을 하고, 늑대들은 그대로 따른다. 그러자 검은 염소들은 숨어 있는 흰 염소들을 늑대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한다. 마침내 흰 염소가 모두 잡아먹히자 잿빛 늑대는 말한다. ‘이제 검은 염소들은 한 마리가 잡아먹히면 그놈이 왜 잡아 먹혔는지 알아내느라 대항을 못할 거야. 스스로 잡아먹힐 만한 이유가 있어 잡아먹히는 거라고 여기는 놈들을 사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안타깝게도 스무 가지 이야기는 모두 책의 제목과는 정반대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라도 다른 우화들처럼 세상에 떠돌며 적절히 쓰이기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언젠가 정말로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되기를.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얻은 단단한 깨달음 하나, 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 단순한 구조의,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우화들과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미담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기억되고 매우 넓게 적용되며 아주 그럴싸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것이 내가 가끔이지만 꾸준히 우화를 창작하는 이유이다.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우화들처럼 작자 미상의 이야기로 세상에 떠돌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이기를, 그리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작가의 말 중에서)●
- 덧붙이는 말
'책 이어달리기'는 《오늘보다》의 독자들이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가지고 짧은 글을 쓰는 코너입니다. 글을 쓴 사람이 다음 호에 책을 소개할 사람을 지목하는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음 주자는 이상욱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