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고임금과 하남공단의 저임금의 제3지대에 새로운 ‘광주모델’ 개념을 도입, 노동자에게는 국민평균 소득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고, 사용자에게는 고임금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자동차 공장 증설의 메리트를 제시하고, 광주시민들에게는 1만 여개의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 광주광역시 윤장현 시장의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은 2020년까지 클린디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부품 전용 국가산업단지(자동차산업밸리)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 절반 수준인 4000만 원 정도를 받는 1만 여개의 일자리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와 광주광역시, 국회의원, 현대기아차 노사 등 노사민정 ‘대타협’을 만들자는 것이다. 

윤 시장은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을 역임한 박병규 전 지회장을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추진단’ 단장으로 임명하여 현대기아차 노동조합과 회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또 자동차산업에서 노동조합과 회사, 지자체가 협약을 통해 고용을 유지했던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모델을 연구하고,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를 센터장으로 임명했다.

나름대로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의 체계는 잡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와 지역 언론의 보도와는 별개로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의 현실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이견들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를 조성해 1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

우선 박광태, 강운태 전임 시장들의 일자리 정책과 별반 차별성 없는 ‘정치적 공약’이라는 지적이 있다. 광주광역시는 ‘소비도시’라는 말처럼 제조업 산업기반이 열악하다. 2014년 사업연도 ‘법인 지방소득세’ 납부액수를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가 1~2위를 하였고, 금호타이어가 6위를 하였다. 자동차 협력사인 중견기업 동희하이테크와 연호엠에스가 금호타이어에 이어 7~8위에 위치하였다. 광주신세계와 롯데백화점 등 유통업체와 한국은행과 KT&G의 공기업이 10위안에 들었다. 광주광역시 경제를 선도할 변변한 제조업 기업 자체가 양적으로 적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백색가전 생산공장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대 다수가 고용되어 있다. 기아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산업 침체로, 금호타이어는 올해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상황이다. 핵심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 보다 기업 경영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역대 광주광역시 시장들은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광태 전 시장은 자동차·가전과 광(光)산업을 3대 주력산업으로 하여, 2010년까지 일자리 13만 개 창출해서 ‘1등 광주를 건설’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박 전 시장은 기아차 스포티지 신차발표회를 시청에서 열고, 기아차 사주기운동, 기아로(路)지정, 삼성 백색가전 이전을 위한 ‘지원전담반’ 구성, ‘삼성의 날’을 만들어 삼성을 ‘향토기업’ 이미지로 바꾸겠다고 하였다. 

강운태 전 시장도 ‘일자리 10만 개 창출’로 ‘풍요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사실 윤장현 시장의 자동차부품 산업 육성은 강 전 시장의 공약이기도 하였는데, 강 전 시장은 ‘클린디젤차’ 부품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였으나 국비지원계획이 축소되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다. 

역대 시장들의 공약은 대부분 국비 지원을 통해 지역 주력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었고 제대된 검증도 안 된 상태에서 ‘정치적 공약’에 머물렀다. 윤장현 시장의 ‘광주형 일자리’ 창출도 역대 시장들과 별반 차별성이 없다.

 

윤장현 시장의 ‘광주형 일자리’ 창출도 역대 시장들과 차별성이 없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염두에 둔 기업이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기아차)다. 현재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62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자본이 광주에 신규 설비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현재 세계 자동차 산업은 침체 국면에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도 해외실적 부진이 두드러진다. 유럽시장에서는 전체 자동자 점유율이 5퍼센트 중반으로 떨어져 올해 최저를 기록했으며, 중국시장에서도 판매량이 전년대비 7.8퍼센트나 떨어졌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원인은 현지 자동차브랜드들의 저가자동차 출시, 장기화되는 세계경제 침체 등으로 점쳐지며 이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해외 실적 부진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결국 현재 자본은 신규 설비투자를 할 수 없다고 본다.  

기업 입지 경쟁력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정책은 광주광역시가 참조하는 독일 모델을 봐도 결국 ‘좋은 일자리 감소’와 ‘나쁜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윤장현 시장은 1990년 초반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과 2000년대 초반 볼프스부르크 지역 사회협약을 거론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모델은 1991~93년 독일 경제위기 시기 ‘노사대타협’으로 실업률을 높이지 않고 위기를 극복했다는 사례다. 

하지만 ‘노사대타협’의 핵심 내용은 노동조합이 노동시간 유연화와 노동 강도 강화를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고용을 보장받은 것이다. 통상 ‘양보교섭’이라고 불리는데,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기업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독일 사례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를 기업 차원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타결한 것이다.

볼프스부르크 모델도 기본 내용은 비슷하다. 2001년 독일 금속노조는 폴크스바겐이 신규 공장 설립을 포르투갈과 독일 볼프스부르크 지역을 두고 저울질하자 대규모 양보교섭을 진행했다. 사측 역시 금속노조의 양보에 화답해 소위 아우토5000이라 불리는 5000×5000 프로젝트(5000마르크 임금으로 5000명을 신규고용)를 제시했다. 광주광역시가 벤치마킹하는 독일 모델은 노동조합의 양보교섭을 전제하고, 양보교섭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 돼 신규 채용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독일 모델은 결국 ‘좋은 일자리 감소’와 ‘나쁜 일자리 확대’로 이어졌다

또한 제조업 대기업 유치가 광주시 일자리 창출의 핵심일 순 없다. 광주 전남권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지만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는 ‘광주의 일반적 저임금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미 광주는 제조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제조 대기업 위주로 다시 한 번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광주시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다. 경제활동참가율 등 고용지표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나쁜 이유는 제조업 대기업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중소기업이나 비제조업 산업의 나쁜 일자리가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광주형 일자리 정책에서 노동권이 실종되었다. 노사민정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합의의 주체인 노동자의 권리는 공백 상태다.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4000만 원 정도의 연봉이면 ‘좋은 일자리’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존 일자리를 좋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공단의 대다수 영세, 중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개선은 뒷전이고 신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오히려 노동자들 간의 차별 간극만 벌어지게 될 뿐이다. 

 

 

영세, 중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개선은 뒷전이고 신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를 노동자 입장에서 감시하고 보완할 주체가 없다는 점도 치명적 약점이다. 광주·전남권은 노동조합 과잉이 아니라 과소 지역으로 광주전남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 내외에 불과하다. 

사회적 타협 모델로 참조하는 독일의 금속노조는 700만 명의 제조업 노동자 중 200만 명, 즉 약 산업 내 30퍼센트 노동자를 포괄하며 특히 슈투트가르트나 볼프스부르크 지역의 금속노조는 과반 이상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고,  금속노조에서도 가장 강한 지부들로 유명하다. 아우토 5000프로젝트는 약속한 8년의 기간이 끝난 다음 간접고용 된 4000여 명의 노동자 모두를 폴크스바겐이 직고용했지만 이는 금속노조의 강력한 협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민과 노동자들은 공허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개선하기를 원한다. 정치인들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4년에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광주와 공단에서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의 최우선 과제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개선하는 것이다. 광주시가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권장할 수 있고, 광주시가 앞장서서 초기업적 교섭의 모범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제조 대기업 외에는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광주시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것도 노동조합이 있어야 가능하다. 높은 노조 조직률과 초기업적 권한이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한다. 

광주시가 지향해야하는 도시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도시’가 되어야 가능하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의 첫 번째 기조로 ‘광주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광주시 노동정책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